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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ul 29. 2022

가장 극적인 순간의 배드 엔딩

나는 어차피 될 수 없었다. 4

 과학고등학교 입학시험은 3단계로 되어있다. 1차 서류, 2차 필기, 3차 면접이다. 1차까지 기적적으로 합격을 하게 되자, 해피엔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얻은 값진 합격의 목걸이를 눈앞에 그렸다. 2차 필기도 합격을 했다. 이미 붙은 사람처럼 3차 면접을 향했다. 20명 중에 5명이 떨어지는 마지막 시험, 이번에도 미련 없이 시험을 치르고 나왔다. 시험 결과는 다음날 오후에 바로 나왔다. 이날은 아직도 30년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컴퓨터를 켜고 과학고등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 새로고침을 의미 없이 눌렀다. 그러다 갑자기 화면에 합격자 명단 팝업이 떴다. 무려 1시간이나 빨리 결과가 띄워진 것이었다. 15명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되어 있었다. 찬찬히 왼쪽 위부터 내 이름을 찾아내려 갔다. 김씨가 많았다. 


...김OO, 김xx, 나OO... 김씨가 끝났다. 내 이름은 없었다. 


몇 번이고 읽었다. 그렇다 내 이름은 없었다. 내 이름은 없었다. 내 이름이... 없었다.

충격이 크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현실을 인지만 하고 있었다. 같이 공부하던 친한 친구는 합격을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나는 떨어졌으니 위로라도 듣고 싶었다.

"어 친구야. 결과 봤어?? 너 합격했더라."

"와 진짜?? 대박!" 그리고 수화기 뒤로 이 전화통화를 들은 가족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친구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채 이 극적인 순간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합격했다면, 저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었다. 나는 떨어졌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저렇게 기뻐하는 친구 가족들에게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우리 집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해지는 어둠이 거실을 채웠다. 어머니에게로 갔다. 

 "엄마, 나는 떨어진 것 같아요. oo 이는 붙었네." 울지 않고 이야기했다. 아니 울지 못했다. 내가 합격했더라면 이 기쁨을 나도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날 내 실패를 받아들였다. 최선을 다해서 죽도록 매달려도 결과는 나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갔다. 시험의 결과와 상관없이 수고했다고 해주시는 부모님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질책과 아쉬움을 나눌 수 있었지만, 너무나도 평소와 같은 일상 같았다.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이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 것 같다. 


 철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색이 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가열하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찬물을 시원하게 맞은 나는, 속부터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일반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내 의대를 향한 꿈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 계속. 


#책과강연 #의사가되려고요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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