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과 온탕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지금도 환자들에게 많이 쓰는 말이다. 큰 병이 아니란 것에 안도하는 것은 좋으나 이제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라고 확대 해석하거나, 큰 병이면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시는 분들이 있다.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는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다들 달리고 있었기에, 마라톤을 뛰는 자세로 갔어야 하지만, 하나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두다 보니 금방 지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요새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 단골 멘트이다. 저 멀리 어르신부터 나까지도 많이 해본 말이다. 우리는 왜 계속 참을성이 없어질까. 나는 인생에 대한 고민과 목표가 점점 옅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했던 옛날은, 큰 꿈은 없어도 살아내는 것 자체가 기적의 연속이었던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삼겹살 안 먹어본 사람이 없는 시대에는 목표 설정이 없다면 인간의 초인적인 힘을 끌어낼 기회가 없어지는 것 같다.
목표가 없는 마라톤을 상상해보자. 나는 지옥 그 자체일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를 목마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어질 것 같다. 그 그만둠이 너무나도 많은 모습들로 이 시대에는 나타나는 것 같다. 공부를 안 하는 것에서부터 삶을 포기하는 일까지. 너무나도 안타깝다. 나보다 더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도 절대 편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끄러지고 넘어질수록 단단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긍정적인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전 편에 이이서...
일반고등학교를 진학했다. 7명의 친한 친구들 중 나만 떨어졌다. 내가 사는 세상이 달라졌으나, 목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반 배치고사를 보았다. 생애 처음으로 전교 1등이 했다. 한 순간에 학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 확실히 나는 단단해지고 있었나 보다. 특목고를 진학하기 위해서 미리 선택된 아이들과의 경쟁에 뛰어든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문제들은 다행히 풀기 어렵지 않았었다. 그러나 별로 크게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멀리 보면 지금의 1등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약간 변두리에 있는 고등학교이다 보니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둔산동 근처에 있는 주요 고등학교들과 달랐다. 어머니와 나는 여기에도 스카이캐슬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논술과 같이 명문대 입시에 큰 차이를 낼 수 있는 과목의 선생님들이 대치동에서 대전에 있는 주요 학원으로 내려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비행기 일등석 티켓처럼 느껴지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에게 기회는 없었다. 그들끼리 먼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너무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자고 했다. 나는 당당히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하겠다고 했다. 하늘 주민들은 저대로 살게 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자고.
불안해도 장애물을 보지 말고 길을 보자고.
이번에 대학 합격을 위한 마라톤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시간에는 돌아다니며 공부할 수 없었다. 고지식한 선생님들은 일어서서 공부하는 것에도 나에게 시퍼런 매를 갖다 대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고등학교 공부는 성공한다는 말에 나도 공부하는 시간을 대폭 늘렸었다. 모의고사 성적 향상을 위해서 이번엔 잠을 줄였다. 하루 5시간 이상 자본 날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율학습시간에 너무 졸려서 잠을 자고 싶을 때, 청소도구함에 숨어서 잠을 자던 것이 기억이 난다. 잠깐 쪽잠만 자면 다시 공부할 수 있는데 바르게 앉아서 공부해야 집중력이 나온다는 강제적 획일성에 소심한 반항을 했던 것이다.
찌질하게 계속 공부했다. 새벽 6시 반 아침 단체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할 때, 남들이 모두 졸고 잠을 잘 때에도 꼭 영어 단어장을 들고 단어를 외웠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친구들끼리 웃고 떠들 때 나는 수학 문제집을 펴고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난 내 꿈을 이루고 싶었다.
다음 편에 계속.
학교를 두 개의 파로 나누다. 누가 정답일 것인가. (김민규 v.s. ooo)
#의사가되려고요 #김민규 #책과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