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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Aug 08. 2022

28살의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아버지의 환갑

 내 꿈은 아버지를 통해서 생겼다. 브런치를 모르실 것이기에 조금 더 솔직하게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와 유원지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같이 게임방에 가서 오락기를 만지작하던 중, 옆에 있는 아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으로 보였다. 그런데 생김새가 이상했다. 눈 사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넓었다. '아 장애를 가진 아이구나.' 금방 알 수 있었다. 무서웠다. 조금 피해서 떨어져서 앉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행동은 달랐다. 너무도 익숙하게 그런 아이의 행동에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혹여나 그런 큰 행동을 하며 다칠까 뾰족한 물건을 치워주고 맞장구를 쳐주셨다. 난 많이 놀랐다. 무서워하고 도망친 내가 부끄러웠다. 내가 기억하는 존경하는 아버지의 모습의 시작이었다.


13살 끌어당김을 위해 리스트를 만들었을 때, 나의 목표 나이는 28살이었다. 29살이 되면 아버지 환갑이 돌아오기에, 28살부터 큰 성공을 해서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 나도 28살이면 다를 줄 알았다. 13살에게 28살은 사회의 어엿한 어른으로 보였다. 이제 1인분은 하고 있을 나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가족들을 모시고 크고 좋은 식당에서 당당히 카드를 꺼내 계산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큰 착각인 것을 깨달은 것은 29살 아버지의 환갑이 실제로 다가왔을 때였다.


뉴스에는 온통 나와 관련된 이야기뿐이다. 금리가 올라 대출이자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고, 결혼을 위해 내 집 하나 당당하게 마련하고 싶었지만, 부동산에 떠있는 가격은 무시무시했다. 물가와 기름값은 올라 차로 멀리 가기도 부담스럽다.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싶었는데,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이고, 자리를 잡으려면 한참 먼 것 같다. 13살 어린이가 나이만 먹어서 29살 으른이가 된 것 같다. 좀 더, 멋있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거리가 있다.



 아버지. 크면 클수록, 이젠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가 해오셨던 길이 얼마나 대단했던 일인지 많이 느낍니다. 감당해야 했던 그 무게감은 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키워갔고, 롤모델이 집안에 있다는 행운으로 여기까지 저도 올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던 어렸을 적 제 철없는 말이 생각납니다. 들으시며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영원할 수 없고, 제가 클수록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고 홀로 서서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내다 보니 아버지의 조금은 작아진 등이 어릴 적 거인 같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다시 보입니다.


 의사로서 우리는 같지만 다른 길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바라보는 그 마음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며 제가 의술을 펼치지 못하는 그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아버지와 다른 길도 택하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서 우리의 건강,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 우리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지켜봐 주세요.


 아직 젊지만 몸도 이제는 챙기셔야 합니다. 앞으로도 크게 아픈 일 없이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큰 아들 올림.



#책과강연 #의사가되려고요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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