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어느 때부터 커피를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어 아마 청산학원 다니던 중학교 때인가 하고 답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생크림 잔뜩 넣은 캬라멜마끼아또에서 고소한 라떼로 그리고 아메리카노로 완전히 다른 취향이 이어져왔다.
그런 내가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한 건 병원생활 2년차 때부터였다.
언제부턴가 커피는 나를 각성시키고 공허하게 했고 갈망craving하게했다. 분명 게임이나 술, 마약과 같이 보상체계의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깨지 않았고, 밤낮 쉬지 않고 보고서를 써야 할 때면 꼭 샷을 추가한 커피를 옆에 비치해놓았으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입에 무언가라도 들어 있어야 하니 카누를 털어 넣곤 했다(프로이트는 정말 훌륭하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는 내게 늘 갈증을 줬다. 계속 공부해, 계속 일해, 계속 마셔, 계속 더 진하게 마셔. 채우고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모순. 스스로를 중독에 취약하다 느끼는 나는 의식적으로 커피를 줄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커피 맛에 길들여진 입맛에 차는 상당히 밍밍하고 지루하고 매력 없었다. 게다가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차를 마시기 위해선 갖춰야 할 도구도 많고, 다구를 조심스레 다뤄야 하며, 한 잔 한 잔 시간 맞춰 집중해 우려야 했다. 이렇게 시간과 장소를 구별해 마셔야만 하고, 또 공을 들여 우려야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으니(우린다는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든다), 빠르게 샷을 내려 훅 마시는 커피와 비교하면 차를 마시는 일은 분명 달랐다.
이것이 내가 차를 선택한 이유다. 여전히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찻집이라는 이름을 심리상담과 접목한 이유. 차를 마신다는 건, 가득가득 채우라는 우리 삶 속에서 잠시 멈추고 비워내는 과정임에 틀림없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말도 할 수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 요즘 시대에 누가 오겠냐마는(정말 사람이 없다), 누군가 스스로 멈춰야겠다 느낄 때 혹은 강제로 멈추어짐을 당했을 때, 조심스레 찾아와 비워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