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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뀰사마 May 22. 2020

어딜 가나 빽빽한 직장 내 성비 불균형.

여성으로서 생존해 나가기 정말 힘들지만 살아남아 봅시다 일단은

*본 글은 미디엄에서 2019년 2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재 미디엄에서 브런치로 이전의 글들을 이전 작업 중입니다. 


호주에서 여러 직종을 단기간 알바로 떠돌다 지금은 프리랜서 디자이너 겸 웹 UI개발자로 떠돌고 있다. 이놈의 역마살 이제 슬슬 멈췄음 싶은데.. 여하튼 요 다년간 회자되는 말들과 그에 대한 내 경험과 생각을 비교하는 걸 기록하기 위해 그냥 여기다 씨부려본다. 호주에서 프리랜서로 떠돌다 보니 참 별별 직장을 다 다녀봤다. 공기관, 뱅크, 보험회사, 스타트업, 그리고 미디어 에이전시들. 


큰 회사라도 뭐 사실 딱히 다른 건 없더라고. 내가 속한 팀이 대부분 마케팅 부서이거나 인하우스 스튜디오 팀 혹은 외주로 주로 사는 스튜디오들이었으니까 거기서 거기 고만고만하다. 퍼머넌트 포지션으로는 한 스튜디오에서 1곳만 일해봤고 나머진 다 프리랜서였네.. 요렇게 살다 보니 별별 걸 다 겪었고 그중 몇 썰을 풀고자 한다. 이 경험들은 시드니에서만 겪은 것으로 한정하나 어느 부분엔 공통된 공감 요소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흔히 프로그래머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다 보면 여성 프로그래머에게 으레 ‘디자이너이신가요’라고 묻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니 내 거시기와 슴가에 디자이너 타이틀이라도 달렸나요? 개발자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스펙 사상검증(?)이 들어간다. 이것이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1. 여자는 수학과 공학을 못해(나는 사실 까놓고 말해서 공학적인 두뇌는 없긴 한데 그렇다고 그런 선입견을 가진 사람치고 딱히 잘하는 것도 못 봤다). 2. 자신들이 말하는 번드러진 프로그램(이 기준도 사실 내 입장에선 정말 납득을 못하겠다만)을 못하면 개발자라 부를 수 없어. 두 가지 생각을 은연중에 지니고 시작하는 서두이니까. 참으로 두 직업(코더&디자이너)에게 일타쌍피로 엿을 먹이는 질문 아닌가. 그리고 이런 질문 자체가 디자이너와 코더 사이에 무슨 건널 수 없는 강이라도 있는 듯 여기는 선입견도 느껴 저서 더욱 불편하다. 나는 디자인과 코딩 두 자리 사이에 다리를 걸친 위치라 여기저기서 다 까이는 욕받이 무녀 포지션으로서 두 자리의 고통을 모두 겪어서 더욱 짜증이 난다. 어느 분야든지 프로세싱을 망치는 건 코더든, 디자이너든, 기획자든 다 똑같아! 여기에 매니저마저 수습을 못하고 서로 잘났다고 외치는 사공만 많으면 정말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고 퇴사 욕구가 솟구친다고!


이런 걸 안 겪어 봤다고? 축하한다. 하지만 이건 이런 일을 안 겪어본 소수의 행운아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니 본인이 해당사항이 안된다면 시간 절약을 위해 뒤로 가기를 추천한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테크팀에 들어가면 정말 여성인력이 드물다. 어느 팀을 들어가도 내가 유일하게 여성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요즘 Woman in Code라던가 Girls in Ruby 라던가, Diversity workshop이라던가 STEM에 여성인력이 많이 모자라니 여성들을 가르쳐 필드에 많이 유입하자고 하는 커뮤니티가 많이 늘었다.


뭐 여성 엔지니어가 너무 희박하니 새로 유입 인구를 인플럭스 하는 건 의도는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첫 번째로, 이전과는 달리 STEM 필드로 학사를 이수한 여성의 비율은 현 웹테크 붐 이전부터 능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들이 졸업 후에 직장을 가졌느냐면 아니다. 이미 남초인 필드에 새로운 주니어 인구를 유입해봤자 어차피 유입 인력 문턱에서 경쟁률만 심화될 뿐 그들에게 주어지는 좌석은 한정되어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가장 잔혹하게 반영되는 게 인력시장인데 이미 특정 성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공급이 늘어난다 한들 나오는 결과는 초과 경쟁과 임금 하락일 뿐이라는 거다. 결국 유입인구의 증가는 신 레벨의 베틀 로열을 불러들일 뿐 승자를 위한 왕좌의 수는 그대로일 뿐이다. 유입 인구의 증가보다 기존 인력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좀 더 주도권을 쥐어줘야 하는 방안이 더 시급하다.


두 번째는, 이미 유입 문턱을 지나 살아온 여성 인력에게 자리를 보전할 만큼 지원시스템이 전무한 것이다. 주니어를 거쳐 수년간 경력직으로 묵히면서 그 이상의 자리를 주지 않아 결국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하거나 육아 및 출산으로 잠시 자리를 떠나오면 ‘그간의 테크 트렌드에서 잠시 멀어졌다’는 걸 이유로 책상을 치워버리거나 나보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 인력에게 시니어 및 리드 자리를 쥐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M뱅크에서(여러분들이 주식 투자할 때 상장 목록에도 가끔 뜨는 그 은행이다.) 일할 때 옆팀의 프로덕트 오너가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녀의 프로덕트 오너쉽을 당시 내 보스(남자)가 프로젝트로 낚아가서 새로 프로덕트 오너 자리를 꿰차고 그녀는 새로운 프로덕트를 프로포 절해서 새로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일하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매너에 대해 공감 못하는 점은 많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당시 내 상사인 프로덕트 오너가 그녀에 비해 딱히 능력이 나은 것이 없었다(…). 이 이유로 두 프로덕트 오너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있어서 나는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기분을 계약 기간 내내 맛볼 수 있었다. 계약 연장 안 해줄 때 쾌재를 부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전에 파이썬 여성 유저 걸스 프로그래밍 티칭 그룹에서 같이 모여 식사를 할 때 반 이상의 튜터들이 본인들이 출산 전에는 현업 프로그래머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중 대부분은 교육 자격증을 따서 이공과 교원으로 전환하거나, 가정주부가 되었거나, 데이터 어드민이나 테크팀 어카운트 매니저 등의 옆다리로 빠지는 등… 아이를 배고 출산을 하고 갓난쟁이를 차일드 케어까지 보내는 동안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으니 복귀 시에 당장 실전 투입이 어려운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커뮤니티의 도의적 차원에서 마더후드들의 복직 적응기간 동안 회사에서 인수인계에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데.. 그런 도의적인 시스템이 테크계에는 거의 전무한 것이다. 가뜩이나 러닝 커브가 하루가 다르게 가팔라지는 테크 필드에서. 이건 아예 생리학적으로 불리하게 판도가 처음부터 짜여 있는 거다. 남자들 지들은 애 안 낳고 애 안 키우니까 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여자들이 희생하는 가 전혀 이해도 없고 그걸 자연도태로 여기고는 아무 지원 구축을 안 하는 것이다.


그걸 여자들이 모르겠는가. 끝까지 커리어 안 놓치고 싶어서 독한 맘먹고 비혼 비 출산하면 성격 괴팍하고 꼬장꼬장한 올드 우먼 취급하며 나중엔 ‘오우 당신은 우리 회사의 문화랑 잘 맞을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속내는 너 나이가 너무 많아서 우리 팀 갓 졸업한 후 싸게 들어온 싱싱한 주니어 프로그래머들이랑 분명히 못 어울릴 거다라고 읽는다.)’라는 반지르르한 말을 들으며 인터뷰에서 리젝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비혼 비출산을 하며 업계에서 버티나 결혼과 출산을 하며 경력이 휴지조각이 되거나 모 아니면 도 식의 벼랑 끝 길 밖에 안 남아 있다. 딱히 테크계 스타트업만 이런 것도 아니다. 딱히 이노베이션과 관계없는 디자인 에이전시도 일해보니까 똑같더라ㅋㅋㅋ..(현타 급 씨게 오기 시작한다. 글 쓸 의욕 떨어지네..)


단언컨대 출산으로 인해 잃은 중견급 여성 현업 프로그래머의 수들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수학과 박사 이수 후 파이써니안으로 활동했는데 출산을 겪고 애 키우니 경력이 휴지조각이 되어서 어느 빅 데이터 마이닝 스타트업에 주니어로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이마저도 IT업계에서 일하던 그녀의 파트너의 리퍼런스가 없었으면 진입이 힘들었을 거라고. 이런 일들이 나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호주도 매한가지였다. 살아남아 목소리 큰 사람들만 가시화가 되고 떠나고 소외된 사람들은 안 보이는 법이다.


셋째로, 정말 가장 엿같은 부분인데-딱히 STEM만 여성인력이 전무한 것도 아니라는 거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해봤는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니어 디자인 리드 등 모두가 남자이다. 10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더 나은 등급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결국 여러 자리를 전전하며 프리랜서로 연명하는 여성 디자이너들이 허다하다. 여자니까 디자이너냐고 묻는 냄저들아. 디자이너 직이라도 여자에게 어느 정도 보장해 주놓고 말을 해라, 확 마! 프로젝트 매니저, 에자일 코치, 프로덕트 오너, 기획자도 마찬가지다. 남자, 남자, 남자! 나름대로 PoC와 젠더 편성을 공평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기업이라도 이건 마찬가지였다. 여자들이 몰려있는 부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 파이난스 어카운팅 그리고 주로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하는 어카운트 매니저 혹은 PR. 그마저도 PoC여자를 볼 수 있는 곳은 파이난스와 어카운팅이고 후자는 거의 대부분 백인 여자들로만 빽빽이 채워져 있다.. 뭐 간혹 가다 PoC 여성이 있긴 하지만 뭐 가뭄에 콩나기 식이지.


모 케이블티브이 회사 내 마케팅 캠페인 위주로 디자인 업무가 주인 인하우스 에이전시에서 일할 때를 돌이켜보자. 프리랜서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인 나(외국인 아시안 여성), 동료 프로그래머(오지 아시안 남성), 아트 디렉터(영국계 백인 남성), 크리에이티브 리드(오지 백인 남성), 모션 디자이너(오지 아시안 남성), 프리랜서 디자이너(오지 백인 남성), 프로젝트 프로듀서(영국계 백인 남성), 메인 디자이너(영국계 백인 남성)…아 그만 말하련다.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조차 내가 토큰 역할이라니 진짜 눈물이 나려고 한다.


PS. 일부러 코딩을 주로 하는 직업은 개발자 대신 프로그래머 혹은 코더로 명시를 하였습니다. 저는 개발은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 프로덕트 오너, 어카운트 매니저, 데이터 분석가 등 모든 팀원이 다 참여하면서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 타이틀을 소프트웨어 코더에게만 주는 건 좀 다른 직종의 팀원들을 공적에서 배제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PS. 두 번째 이유에서 좀 더 보충하자면 현재 (2020.5월) 시점 현 회사에 개발팀 5명 중 3명이 여자인데... 우리 셋다 아무런 시니어급 직위가 없다. 남성멤버 1은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팀 리드(근데 이 사람은 존잘이라 솔직히 괜찮아. 난 불만 없어...)이고 남성멤버 2는 경력은 오래됐지만 프런트엔드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에 한참 뒤처진 사람인데 사장님 놈이 크레이티브 코딩 리드직을 줬다... 쪽수가 많으면 뭐해. 아무도 우리 의견에 무게를 안 두는데. 10명 평사원 여성 인력 늘리기보다 1명의 여성 관리자 늘리기가 중요한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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