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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뀰사마 Aug 25. 2020

그 많던 동양인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드니 거리에는 많이 보이지만 오피스에는 잘 보이지 않는 유색인종

본 글은 미디엄에서 2019년 2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다소 현재 시점의 저의 입장과 상이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시드니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여러 인종 그 중에서도 극동아시안과 서남아시안이 많아서 깜짝 놀랐었다. 워낙 다이버스한 메트로시티이기도 하지만 거리 어디를 가도 구석구석 한국어나 중국어가 들렸다. 굳어버린 내 혀가 호주에서 잘 굴러갈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 허나 걱정도 잠시 공항에서부터 숙소가 위치한 시티 어딜가든 내 영어로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처음으로 살던 쉐어하우스도 중국,한국,인도계 사람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지역을 잡았어서 정말 호주가 나랑 잘 맞는구나 라고 착각을 다부지게 해버렸지 말이다.(그리고 이 착각은 이후 나중에 힐스지역으로 이사가며 와장창 깨지게 된다. Such a white town -_-)


호주에서의 첫 1년은 ‘첫끗발의 운'의 작용이 꽤나 좋았던 거 같다. 첫 직장은 교육재단이었다. 컨트랙터로 일한 3개월간 내 슈퍼바이저는 pulp 광팬인 초리버럴한 사람이었거든(글리브에 집을 산 힙스터니 말 다했지). 그리고 꽤 큰 규모의 교육재단이라 그런지 인종 및 성별 구성이 다양했다. 그 다음 직장은 공기관에서 데이터 분석하는 거였는데 날 고용한 Boss가 홍콩계 오지이고 다른 동료들도 죄다 타이, 필리핀계 아시안이어서 역시나 회사 다니는 내내 별로 격리되는 느낌을 받진 않았던거 같다. 내 영어발음에 좀 의아해한적은 몇번 있었는데 대부분 자기 부모세대가 1–1.5세대 이민자니까 그러려니 넘어가더라고. 세번째 직장은 카세일즈 스타트업이였는데 개발팀 직장동료의 대부분이 다 화교권이었다. 이렇게나 글로벌하게 여러 인종과 일할 수 있는 도시라니! 신난다! 


어쩌면 시드니는 나에게 엄청 잘 맞는 도시일지도 몰라. 여기서 제 2 인생을 시작하는 거다!


이렇게 처음 1년간의 첫 끗발이 좋았으니 앞으로의 생활이 평탄하리라 착각을 대차게 해도 무리가 아니었던거다…그러나…그 첫 1년을 제외하곤 모든 직장이 다 백인만 좌르륵이었다. 나는 어느 직장을 가든 유색인종 토큰역이었고 간혹가다 나 말고 다른 아시안이 있긴 했는데 대부분 2–3개월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무슨 유색인종 1인 절대법칙도 아니고. 멀리볼 것도 없이 당장 내 현 파트너J의 회사만해도 비백인은 한명도 없이 모든 거쳐온 직원이 다 백인이다. J의 말로는 한창 회사가 클 당시에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인도인 아니면 이라니안이었다지만. 그래도 회사가 다운사이징하면서 추리고 추려 백인만 남아있다는게 또 뭐한점아니냐. 까놓고 말해서 회사의 CEO 전 부인이 베트남계이고 메인 엔지니어리드 J의 파트너인 내가 한국인인데-_- 쎄하다 쎄해.


거짓말 안하고..내가 컨트랙터로서 일하는 에이전시마다 나 혼자 비백인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일해온 대부분 에이전시들의 특성은 1. 일단 어카운터 매니저, 마케팅 매니저, 커스터머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등 운영진들은 프로덕션팀이랑 깊게 교류를 하기 싫어한다. 2. 프로덕션 팀 특히 개발자인 경우 아예 책상을 따로 떼어놓고 격리시킨다. 3. 프로덕션 팀 내에서도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백남이다. 간혹 여자 디자이너가 있긴한데 풀탐이 아니라 계약직이거나 주니어로 짱 박아둔다.


이런 환경이다보니 비백인이면 대부분 아예 개발팀 프로덕션이 우선순위에 두는 스타트업으로 몰린다. 그 와중에도 꼭 비백인 선구자가 있는 팀만 골라간다. 스타트업들 사이도 백남만 우르르 몰린 회사와 타인종이 섞여있는 회사가 훅 갈린다. 이 경우가 아니면 꼭 비백인 Founder가 있는 에이전시를 링크드인에서 샅샅이 뒤지며 간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fair diverse rule을 어느 정도 쿼터할당을 하는 대기업이나 관공서로 간다. 그 마저도 운영팀/마케팅 팀과 거의 교류가 없는 오로지 프로덕트 개발팀안에만 우글우글 몰린다. 나처럼 Customer Feedback을 다루며 프로듀싱을 하는 직군은 이런 옵션을 선택할 겨를이 없다. 이런 상황에 공감이 안 되신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운이 좋으시군요. 앞으로 펼처질 내용에도 공감 못 하실테니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길 바랍니다.


여튼 이런 판도에서 비백인(특히 비백인 여성)들은 소수의 회사들에 대폭 몰리게 되고 그 외 대부분의 회사들은 백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누굴 탓하겠어. 나같아도 내가 홀로 토큰역활하며 은따당할바에는 최소한 나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해주는 곳으로 가지. 이걸 말하면 백인들은 꼭 ‘말도 안돼. 너야말로 인종레이블을 해대는 거 아냐?’라고 말해댄다. 이젠 설명을 포기함. 이걸 내 블랙프렌치 친구에게 말하면 바로 동감하는데 말이지. 자기도 자기가 일하는 에이전시에서 유일한 비백인, 것도 흑인이라고.


이런 상황이 거지같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백인들에게 옵션의 제한을 두는 점이다. 어떤 눈치없는 사람들은 말하더라고. 니가 존잘이 되어서 헤드헌팅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내가 차별당하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야하는게 말이 되냐? 동일한 능력의 백인남자는 그럴 걱정을 하등 할 필요가 없는데? 애초에 좁은 풀에서 같은 비백인들끼리 서로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하는 상황 자체가 어불성설 아니냐고. 남자와 동일임금을 받기 위해 같은 조건의 남자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 닦으란 소리와 뭐가 달라. 그리고 그렇게나 월등한 능력이 있으면 앤간한 큰손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그에 상응하는 돈을 줘가며 데려가지 않는다. 되려 싸게 부려먹으려고 몸 값 후려치기를 시전하지. 그정도의 능력이 필요할 정도로 복잡하고 큰 프로젝트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제발 각 좀 재가며 훈수를 뒀으면.


이전 에이전시 및 프로젝트들에서 겪은 뜨악한 일들은 다른 포스팅에서 썰 풀기로 하고 여튼 의문점은 거리만 나가도 숱하게 보이는 비백인 인구들, 왜 오피스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걸까. 어쩌다 청소기질하러 들어오는 클리너가 유일한 비백인이다. 그게 아니면 어느 정도 백인 패싱이 되는 레바니즈나 터키쉬 계열이나 유라시안(코카시안+아시안 혼혈) 정도랄까. 완전 비백인에 이민자 레이블을 이마에 쾅쾅 붙이고 다니는 건 나 밖에 없다. 실로 외롭고, 스트레스 받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나로서 지탱하고 증명하고 살아갈 자존감마저 다 바스라지는 거 같다. 아주 심플하고 클리어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마저 ‘파라든?’이라고 되묻는 걸 매일 겪노라면 그냥 내 존재의 이유마저 바스스스 흩날려라 천본앵인듯. 이걸 처음 1년간 다닌 직장들에선 겪지 못했지. 그 해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다.


하기사 비단 오피스 뿐이랴. 광고를 봐도 죄다 백인이고 티비를 틀어도 죄다 백인이다. 아주 간혹 비백인이 나오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시안은 거의 전무하다. 시드니 시티만 나가면 행인들 반 가까이가 동양인인데. 이정도면 인비쥬얼함이 정도를 지나치지 않은가? 하기사 광고에이전시 구성원들이 죄다 백인인데 결과물은 백인만으로 구성된 게 나오겠지. 셔터스톡에서 디자인에 쓸 사진을 골라도 알차게 비백인 이미지만 골라낸다. 끊어지지 않는 비백인 비가시화의 악순환이다.


여튼 여러 회사에서 비백인 동료들 좀 만나고 싶습니다. 한명 갖곤 안돼. 최소한 3–4명은 있어야 같이 모여서 밥 먹고 가라오케라도 가지. 외국인 노동자 토큰 역활은 이제 사양입니다. 그나저나 외국인 노동자 토큰이 아니면 잡 옵션이 엄청나게 줄어드는데 대체 앞으로 뭘 해먹고 산다…-_-…나이 및 경력이 중견급으로 갈 수록 백남 매니저수>>>>>>>>>>>백녀 매니저수>>>PoC남성 매니저수>>>>>>>>>PoC 여성 매니저수(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이던데…내 앞날이 정말 걱정된다 -_-;;


PS 1. 뱀부 장벽을 넘어서 뱀부+젠더 글라스+제노포빅 트리플 장벽.


PS 2. 웃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지방러여성이 가지는 지역+인프라+젠더 장벽에 비하면 시드니에서 이민자로서 유입하는 난이도가 더 쉽다는 것. 이것에 대해서도 정말 할말이 너무 많은데 다 쓰다보면 길어지므로 다른 포스팅에 주욱 쓰겠다.


PS 3. 이걸 주우욱 이야기하니 지인이 ‘그럼 너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스타트업팀으로 와서 SASS 프로덕션에서 주니어로 경력 깎고 들어와’ 라고 한다..저기 님..여태 내가 말한 거 뭘로 들은거임…It’s not my point. 그리고 스타트업에 들어오라는 약을 팔다니. 실로 악마가 아닌가.


PS 4. 첫 1년에 3번째로 취업한 그 카세일즈포털 스타트업..결국 당시 친하게 지내던 개발자들(화교계열) 다 떠나고 끝까지 남아 테크리더로 올라간 건 영국계 백남 개발자 C였다…이 분은 실력과 인성이 좋아서 이 사람에게 테클을 거는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떠난 뒤 이 회사의 개발팀의 후속담을 듣자니 씁쓸…유일하게 남아있는 홍콩출신 풀스택 개발자 A는 이후 결혼 후 출산 하고 시니어로 복귀했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맷리브로 휴직했다고. 당시 테크리드이던 인도계 오지매니저도 대형리테일 W사로 떠났고. 이후 새로 테크리드가 된 C는 CSS 밋업에서 새로 입사한 백남 개발자 동료들과 우르르 나타났다.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PS 5. 에이전시 중에 가장 지랄같던 일 갑중갑은 주 고객이 N뱅크이던 에이전시 어카운트 매니저가 ‘다이버시티'에 대한 서베이를 위해 유일하게 동양인/외국인/여성인 나를 빼고 모든 직원에게 단체메일 돌렸을 때 였다. 이 에이전시에 대해서 할말 진짜 많은데..다른 포스팅에 쓰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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