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여름이라

by 신하연

장마가 온다. 하늘은 어둡고 비가 보슬보슬 내려온다. 우산을 쓰고 걷다 보면 들풀에 맺힌 물방울이 보인다. 초록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간다. 물방울은 다시 생긴다. 작게 맺힌 물방울에 빗방울이 닿으면 몸집이 커지고, 커진 만큼 무게를 견디기 어렵다. 흘러내린다.


엄마가 부침개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 가족은 비가 오면 부침개, 동지면 팥죽, 대보름이면 호두와 땅콩을 먹었다. 바삭바삭한 부침개를 먹으면 빗소리가 입 속에서 났다. 김치 부침개에는 오징어가 들어갔다. 오징어가 많이 들어간 부분이 짭쪼름하고 맛이 좋았다. 팥죽을 쑬 때, 새알심을 온가족이 빚었다. 새알심을 크게 빚으면 한 입에 먹을 수가 없었다. 찹쌀 새알심을 입에 물고 벤 다음에 넓게 퍼지는 걸 보고 또 먹는다. 그게 좋아서 엄마처럼 작게 빚는 게 아니라 크게 빚었다. 부럼을 하기 위해서 까지 않은 동그란 호두를 아버지가 사오셨다. 그걸 가위 비슷하게 생긴 도구에 끼워 부쉈다. 깨지는 순간 나무 향 비슷한 게 났다. 안에 쭈글쭈글한 호두 알이 들어 있었다. 고소한 냄새와 오독오독 씹는 맛이 좋았다. 어릴 적 그렇게 계절이 바뀌는 걸 기다렸다. 이번 장마에도 부침개에서 배어 나오는 기름기를 보았다. 애호박과 양파, 부추가 들어가 초록과 노랑이 여름에 어울리게 있었다.


여름에는 비가 오고 해가 뜨겁다. 사람들은 힘들어 하는데, 나는 살아있는 냄새가 자욱해지는 여름이 좋다. 여름만 좋은 건 아니다. 지나가는 계절이 다 좋다. 가을이 오면 선선하고 하늘이 높아져, 기분이 탁 트이고 시원하다. 단풍이 지는 산이 아름답다. 겨울이 오면 눈 냄새에 코가 시리고 개운하다. 온 세상이 추워서 실내는 더욱 포근하고 따뜻하다. 몸을 녹이며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봄이 오면 풀이 돋아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한 해를 연다. 지금은 여름에 와 있다. 생명이 활기를 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계절이다. 여름이 빙그르르 돌며 온 세상으로 스며든다. 땀을 줄줄 흘리며 이 계절의 힘을,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살아있는 시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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