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까지 독립서점에 가본 적이 없다. 필요한 책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대형서점에 가서 구해오고는 했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서점을 들락거렸다. 서점 구경을 하기는 했지만, 대형 서점에서일 뿐이었다. 좋은 책의 리스트를 뽑아내거나, 문구류를 훑어보거나, 서점의 공간이 좋아서 있다는 게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여유였다.
독립서점에 가지 않은 이유를 찬찬히 더 생각해보니, 책이 적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형서점에 가야 원하는 책을 찾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가보지 않은 사람의 편견이었다. 책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독립 서점이 가지는 매력이 있는데 내가 몰랐다. 나는 이제 한권 한권을 더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는 독립서점을 좋아한다. 작고 개인적인 독립서점에는 책 읽는 시간을 여유롭게 지켜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간 곳은 해방촌의 인프로그레스라는 독립서점이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서 찾아냈다. 지도에 뜨는 장소가 있었는데 사람이 거주하는 3층짜리 빌라였다. 1층에는 슈퍼가 있었고 인프로그레스 간판은 그 건물에 작게 붙어 있었다. 옆으로 돌아서 문을 열어보니 반지하 계단 아래 잘 꾸며진 현관이 보였다. 내려가서 문을 열어 보았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전화를 걸어보고 SNS 공지를 확인했지만 주인은 오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옷가게를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왔지민 사람은 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마침 주인이 나타났다.
“전화 주셨어요? 죄송해요. 원래 여는 날이 아니라서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낮잠을 자느라…”
검고 긴 곱슬머리를 한 주인은 오후 1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낮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인가보다. 흰 원피스를 입었고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개인 공간을 운영하면서 쉴 수 있는 사람인가보다. 예술가일 수도 있겠다. 자기만의 공간을 꾸려 가면서 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자유롭고 편안한 삶 자체가 독립 서점과 어울렸다.
기대하며 들어가 보니, 인테리어가 상당히 잘 되어 있었다. 흰 벽지를 배경으로 책이 정돈되었다. 테이블 위에도 책이 놓였고, 서가에도 가득 꽂혀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고 SNS에 올라오는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의 책이 많았다. 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관리하고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는 책도 보였다. 유행은 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어서 지나쳤다.
오른쪽 벽에 해방촌의 모습을 담은 엽서가 꽂혀 있었다. 서로 기대어 앉은 연인, 노을이 지는 풍경,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담겼다. 주인이 직접 만든 것 같은 열쇠고리도 있었다. 투명한 가운데 말린 꽃이 들어 있었다. 반려 상품이라고 소개해 놓은 게 귀여웠다. 가운데에는 넓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차를 주문하거나 책을 구매하면 테이블을 이용할 수 있었다. 실뭉텅이가 쌓여 있는 바구니도 보였다. 실을 가져다 뜨개질을 해도 된다고 했다. 식물이 곳곳에 놓여서 시원한 분위기가 났고, 화분과 씨앗도 판매하고 있었다. 개인의 취향이 듬뿍 담긴 공간이었다. 흰 고양이도 천천히 걸어다녔다.
나는 책을 더 구경하다가 보물같은 책 두 권을 찾아냈다. 영화 중경삼림이 표지로 있는 컬러의 세계를 발견했다. 색채에 초점을 두어 여러 영화를 다룬 책이었다. 중경삼림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색깔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았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 반마취 상태까지 발견했다. 나는 작가 중에서 이디스 워튼을 가장 좋아한다. 순수의 시대를 읽고 충격을 받아서, 그녀의 책을 구할 수 있는대로 구했다. 인터넷으로 번역본 책을 구매해서 우리 집에는 여덟 권 정도가 있다. 내가 영어를 잘 하니까 원서도 보이는 대로 다운받았다. 핸드폰에 이디스 워튼의 번역되지 않은 저술이 가득 들어 있다. 그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인데,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번역본을 구한 건 행운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고, 뜨개질도 하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인프로그레스, 좋은 독립서점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