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산 연기식당

by 신하연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할머니 댁이다. 나는 연차를 받아서 아침 차를 탔다. 흥덕 버스 터미널로 왔다. 아버지가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버스가 오는 시간에 딱 맞춰 나오실 수 없으셨을 거다. 아버지는 일찍 나와서 내가 탄 버스를 한참 기다리셨을 것이다. 나는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도 사가야지요, 하니 아버지가 마트에 가자고 하셨다. 포장되어 있는 딸기 한 상자를 사서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댁으로 걸어갔다. 초록 대문이었다. 우리 집에도 어릴 적에 현관문이 초록색이었다. 아버지가 초록색 페인트를 사서 직접 칠하셨던 것이다. 어릴 적 나는 그 초록색을 보면 신이 났다. 우리 집이 특별한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칠하면 어린 내가 집을 잘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께 여쭈었다. 할머니댁 문도 초록색인데, 우리 집 문도 초록색이었죠. 아버지가 어릴 때 본 것으로 똑같이 한 게 맞지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어릴 때 기억이 남았던 것 같다 하셨다.


할머니를 뵈었다. 예전보다 더 체구가 작고 마르셨다. 할머니께 딸기를 드렸더니 비싼데 사왔냐고 물으셨다. 어디서 샀냐고 하시면서, 트럭에서 사면 더 싼데 하셨다. 아버지는 할머니께 손녀딸인 내가 장어를 사드린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꾸 순대국밥 먹자고 하신다고 네가 말씀드려 보라고 하셨다. 할머니께서 내가 돈 쓰는 걸 아끼시려는 것 같았다. 장어는 비싸니까 나한테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할머니 오랜만에 장어 먹어요, 하고 설득했다. 할머니는 자꾸 거절하시다가, 할머니 제가 오랜만에 장어 먹고 싶어요 하니 그제야 그럴까 하셨다. 택시비도 많이 나오는데, 하시고는 알고 있는 택시기사분을 부르신다고 나가셨다.

할머니가 대문 오른편에서 부르셨다. 나는 인터넷으로 별점이 높은 장어구이 집을 찾았다. 택시기사 아저씨께 알려드렸더니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왠지 동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다 왔을 무렵 할머니께서 냇가 집이냐고 물으셨다. 할머니는 이곳이 아니라며 냇가 집으로 가달라고 택시 기사님께, 멩기식당 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저씨는 알아듣고 연기식당, 아 전통있고 오래된 집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때서야 연기식당이야말로 이 동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식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연기 식당 주인 부부가 30년 전쯤에 할머니 집에 세들어 산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주인 아주머니는 할머니를 바로 알아보셨다.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똑같아, 하셨다. 주인 아주머니가 예전에 할머니 댁에서 살 때 할머니께서 잘해주셨다며 싸고 맛있게 해드린다고 하셨다. 우리는 갯벌 장어 양념 2인분, 소금구이 1인분을 주문했다. 1인분에 41000원이었다. 양식 장어는 더 저렴했다.


옆에 오신 다른 손님이 할머니를 알아보셨다. 아주머니 아저씨였는데, 흥덕 할머니시냐고 하셨다. 할머니도 알아보시고 인사하셨다. 시골 사람들은 먼 데 나와서도 서로를 알아볼 정도로 잘 알고 있나보다. 사투리가 오가고 같이 알고 계신 사람 이야기도 하셨다. 소문도 빨리 퍼지고, 서로 집 사정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곳이 시골이다. 옛말에 남의 집 식탁에 숟가락이 몇 개 놓이는지까지 안다고 했다. 나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삶이 익숙하다. 같은 동네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친척도 알고 누가 결혼했는지 같은 대소사를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장어구이가 나왔다. 양념 장어에는 빨간 고추장 양념이 묻혀 있었다. 도톰한 장어 살과 양념이 어우러져서 먹기 좋았다. 소금구이는 장어 맛을 더 잘 느낄 수는 있었는데 밋밋했다. 그래서 양념을 찍어 먹었다. 양념에 묻혀 먹어도 심심한 맛이었다. 장어 살에서는 특유의 향내가 난다. 다른 생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꿉꿉하고 비린 맛이 있다. 그 맛이 나야 제대로 장어를 먹는 것이다. 큼큼한 맛이 편하지는 않다. 장어 기름이 고소하게 배어 나오고, 두툼한 살집이 씹혔다. 양념에 발라서 상추에 싸 먹었더니, 눅진한 맛이 상큼한 상추에 섞여서 훨씬 먹기 좋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누룽지와 밥, 음료수와 모과차까지 제공해주셨다. 계산하고 나서야 갯벌 장어보다 싼 양식 장어 값으로 결제해 주신 걸 알았다.


냇가가 보이는 정원에서 고양이가 발로 눈을 파고 있었다. 할머니가 냇가 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냇가 바로 옆이라서 냇가 집이라고 부르시는구나. 다른 손님들도 들어오셨다. 할머니와 아들과 며느리가 같이 온 것 같았다. 오래된 집이라더니 이 집의 맛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어제도 술을 하신 듯 해장을 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 손님 할머니께서 술이 생각나시는 듯 막걸리를 주문하셨다. 막걸리가 식당에 없어서, 직원분께서 선운산까지 직접 나가서 사오셨다. 없다고 해도 될텐데, 술이 필요할 것 같아 밖에까지 나가서 사오시는 게 정이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남편분께서 흥덕까지 태워다 주셨다. 그분들께서 할머니댁에 1년 반 정도 살았을 때가 36년 전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갓난아이였던 아들이 자라서 또 아들을 낳았다고 하셨다. 그런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머니댁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에서 느껴지는 군내나는 정이 좋다. 서로 알고 결혼해서 아이낳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가는 사람냄새에 훈훈하다. 등산을 하면 옷에 산 내음이 배어드는데, 시골에서는 사람냄새가 배어든다. 그 다정한 기운은 자연과 어울리고, 아주 보드랍지는 않지만 살갗에 도톨도톨 미끄러진다. 이 까실한 사람 정이 오랜만이었다. 구수한 향이 퍼지고, 구름도 하늘 가득히 퍼져 있다. 아버지께서 흥덕에서는 노을이 아주 아름답게 졌다 하셨다. 이 하늘 아래 오면 마음이 푸근하고 버석거리며 살에 닿는 온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시골에서 사람 틈에서 살던 아버지가, 서울 와서 고생 많으셨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