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일기

by 신하연

나는 엄마와 남동생, 여동생을 데리고 종각역으로 갔다. 나는 가족에게 우육면을 사주기로 약속해두었고, 오늘이 그 날이다. 엄마는 어제 춘천에 갔다 오시느라 조금 피곤한 상태셨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이 서로 바빠서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광복절 휴일인 8월 15일에 우리 가족은 외출을 하였다. 우리가 간 집은 진중 우육면 집이었다.

걸어가는 길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비가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엄마말고는 우산을 챙겨온 사람이 없었다. 나도 챙기는 걸 잊어버렸다. 그래서 여동생이 불꽃 효도를 하겠다면서 엄마 우산을 가져가도 되냐고 말했다. 웃음이 나오는 말이었다. 우리는 가게 앞으로 갔는데 11시 반 오픈이고 10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앞에 6팀이나 웨이팅이 걸려 있었다. 캐치테이블로 우리도 예약을 걸어 놓고 앞에서 기다렸다. 여동생이 이런 식당을 어떻게 안 것이냐고 물었고, 남동생도 미쉐린이 적혀 있는 걸 보더니 신기하다고 했다. 엄마도 대만에서 먹어본 맛과 비슷할까, 하고 기대를 하셨다. 11시 반 오픈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우육면 진 4개와 만두, 사이다를 주문했다. 요리는 금방 나왔고, 진한 국물 맛이 좋았다. 고기가 많이 올라갔다. 나는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어서 처음처럼 큰 감흥은 없었다. 엄마는 대만에서는 고기가 살살 녹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맛있게 드셨다. 남동생은 우육면을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깔끔한 돈코츠 라멘 맛이 난다고 했다. 여동생도 맛있게 먹었지만 양이 많아서 조금 남겼다. 만두도 평범한 맛이었지만, 나는 같이 나와서 식사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엄마랑 여동생, 남동생이 같이 나와서 외식하는 건 오랜만이다. 엄마가 요리를 해주신 적은 많아도, 비싸다는 이유로 밖에 나와서 먹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같이 나와서 식사하는 시간 자체가 소중했다.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대화도 많이 하게 되었다. 집에서보다는 덜 편안하지만, 더 예의를 차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깔끔한 분위기여서 서로가 만족한 것 같다.

보슬비가 살짝 내리는 거리로 나와서 우리는 브라질 초콜릿을 파는 꼬르꼬바두 카페로 갔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고 물을 정도로 후미진 곳으로 내가 길을 안내했다. 네이버 지도를 따라갔는데 나도 반신반의했지만, 정말 까페가 나왔다. 오래된 건물 안으로 쾌적하고 넓은 연두색 인테리어의 카페가 등장했다. 의자도 다양하고 공간 자체가 넓어서 앉을 곳이 많았다. 사람도 많지 않았고 우리는 금세 편안한 4인 좌석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 빙수를 먹고 싶었는데, 일이 있었다. 직원 분께서 빙수를 만들 수 있는 다른 직원이 잠수를 타서 혼자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 빙수 주문이 어렵다고, 꽤나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당황스러울 법했는데도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게 듣는 입장에서도 괜찮았다. 여동생이 음료 4개와 티라미수까지 사주고 나는 브라질 초콜릿을 골랐다. 나는 케익을 사니까 음료는 괜찮다고 했는데 여동생이 일년에 한 번 사주는 거니 고르라고 해서 수박 주스를 골랐다.

우리 가족은 적당히 조용하고 넓은 카페 안에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눴다. 엄마가 어제 문학 모임에서 이야기 나눴던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관련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엄마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프롤로그, 즉 눈 이야기가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엄마만의 견해를 말씀하셨다. 엄마는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작별하지 않는다로 넘어갈 때, 한강 스스로의 살풀이 과정으로 프롤로그 눈 장면을 이해하셨다. 흰 눈 이야기는 흰 천을 쓰고 살풀이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은연중에 한강이 눈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한 것은, 눈 자체로 4.3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시대 속에서 눈으로 덮여가고, 눈이 녹으면서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4.3사건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일 수 있는 어머니 이야기를 오래 해야만 작가가 다시 정치 역사적인 사건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날 테니, 결국 내 생각도 엄마의 견해와 비슷한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작가의 준비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너무 괴롭다고 했는데 엄마는 괴롭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 보셨다. 엄마는 실제 겪고 눈으로 본 일들이라, 너무 많이 듣기도 한 사건이라 힘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대학생 때 운동권으로서 몸소 겪은 엄마셔서,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괴롭지 않았다고. 나도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괴롭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가 이렇게 고문을 당했을까 하며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그 상처에 공감하고 슬펐지만 나도 글 자체로 인해서 괴롭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치고, 여동생은 프로젝트 준비하러 가고 남동생은 집으로 갔다. 엄마와 나는 한티역에 있는 롯데 백화점으로 갔다. 베네통에 가서 검은 치마 하나, 청바지 두 개를 구매했다. 직접 입어보고 어울리는 걸로 사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다비치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췄다. 내가 가본 안경점 중에서 가장 검사를 제대로 하고 규칙이 잘 잡혀 있고 큰 안경점이었다. 여러 안경을 편하게 써보면서 어울리고 가벼운 걸로 골라서 맞췄다. 로즈 골드 색상이라 이전 안경보다 훨씬 얼굴에 잘 맞았고, 가벼워서 좋았다. 오는 길에 검은 티와 핫핑크 셔츠도 구매했다. 엄마가 옷도 사주고 안경도 사주고 하니 감사했다.

집에 와서 책상 앞에서 작업하는 엄마한테 어깨 마사지를 해드렸다. 경락 혈자리 잡아서 해드렸더니 너무 시원하다고 하셨다. 내가 요가를 배워서 그런지, 나는 인체에서 어디를 누르면 혈자리이고 어디를 누르면 시원한지가 잘 보인다. 엄마가 완전히 풀어지고 편안해져서, 시원하고 날아갈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앞다리살을 굴소스, 바베큐소스, 케찹에 버무려서 맛있게 구웠다. 독일에서는 삼겹살보다 앞다리살이 비싸다며, 엄마와 남동생은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 좀 쉬다가 나는 좀이 쑤셔서 러닝을 하러 나갔다. 한강으로 갔는데, 시원하게 밤을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 8.15킬로미터를 달렸고, 이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건 우리 조상님들이 노력하셨고 광복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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