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골짜기, 푸른 .. 으로 시작하는 교가가 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일 것이다. 한 소절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적에는 나이가 들면 이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그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어릴 것 같았고 세상은 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날 때마다 어렴풋하게 퍼지는 기억들을 간직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어린 시절을 다 즐기지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 끝이 나 접힐 줄은 몰랐다.
세상은 여전히 크고 넓었다. 하지만 어릴 때 보던 시선은 아니다. 가끔 찾아오는 그 시선이 내게 덧씌워질 때면 멈춰있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여운이 길기는 하나 그 생생한 것에서는 멀어져 있다. 아쉽고 다시 붙잡고 싶지만 이런 게 모두가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평범한 물결에 휩싸이는 것 같다. 그 물결은 나를 가두고 세상에 미련으로 가득 붙잡히게 한다.
앞으로 먼 미래에는 이 순간마저도 너무 그리워질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기억들이 나중에 좋은 것으로 남았으면 싶다. 물론 싸우고 치기어리게 굴던 생각들마저 부끄럽고 귀여워질 때가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지금 이 순간에 너무 큰 것들이 작아지고 옅어지는 것도 알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행복했을까? 하루하루가 행복해서, 지나가는 게 아쉬웠을까. 아니면 힘이 들고 무거워서 지쳐있었을까. 가끔 즐거웠을까. 이 순간 기억나는 것들은 왜 괴로운 것도 아니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평범한 장면들뿐일까. 당시에 어떤 감정을 느꼈길래 기억에 남아버린 걸까. 잊은 건 이렇게도 많은데 음악시간에 리코더 불던 기억과, 선생님과 환경활동 하던 것과, 공기놀이 하던 것이 떠오른다. 좀 더 잘 하고 싶다, 리코더를 음에 맞춰 부르자, 휴지를 많이 줍자, 공기놀이에서 이기고 싶다 이런 감정만 있었을 텐데, 아니면 어떤 복잡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길래 내 기억에 남고, 어떤 것들은 사라져버린 걸까.
감정이란 건 계속 변화하고 이제는 그런 감정들이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있는 언어가 나를 자꾸만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안다. 오랫동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에서야 예전의 나에게 안쓰럽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고등학교 때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너무 어린 아이였는데 혼자 감당했다. 걱정은 눈덩이 같은데 어떻게 그걸 다 이겨낸 걸까. 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어떻게 하루 더, 한 번 더 힘내서 끝까지 갔을까.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조각 났을 때, 대체 어떻게 버텨냈을까. 아주 오랜 시간을 생각한 게 잘 안되었을 때, 나보다 어린 내가 어떻게 그렇게 굳세게 다시 달려갔을까. 무슨 희망이 있다고, 무슨 미래가 있다고, 뭘 그렇게 미래의 나한테 해주고 싶다고 그토록 힘겹게 하루 하루를 보내봤을까. 오직 나만 위한 것이었을까?
다시 산산이 무너졌을 때는 아무 희망도 없을 때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다시 살아나서 힘을 내서 살고 있을까. 더 이상 나는 바라는 게 없는데, 지금처럼만 지내고 싶은데 나는 미래의 나에게 왜 이렇게 잘 해주고 있을까.
내가 읽은 책들이 나에게 힘을 주고 있는 걸까. 수없이 많이 읽은 책들이 나를 지키고 만들고, 더 굳세게 하는 걸까. 책을 많이 읽어서 세상이 책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다시 책과 같이 살려고 한다.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삶 그래도 나아가는 게 이제는 좀 더 자유롭다.
아주 험난했는데도 이제 참 행복하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