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오랜만에 테드 영상을 보았다. 열정적으로 클래식 강연을 해주신 분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이 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에 타고 있던 누나와 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신발을 잃어버리자 누나는 어떻게 이런 거 하나도 잘 챙기지 못하느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그 말이 동생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되어버렸고, 누나는 동생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와 딱 한가지를 다짐하였는데, 그것이 "마지막으로 남길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우리는 얼마나 후회할 말들을 많이 하고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한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해버린 말은 계속해서 괴롭힌다. 내가 내뱉은 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나에게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이 돌아오지 않는 게 더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상대에게 준 상처는 상대가 안고 살아가는 일이 태반이다. 그래도 옆에 있어주는 상대방이라면 언젠가 뉘우치고 용서를 받을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희망이 사라져 버릴 일이 일어나 버린다면 어떨까. 불의의 사고로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상대가 지고 있던 무게가 온전히 내게 돌아와 짓누른다. 말은 슬픈 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이 마지막 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영화 "슬램덩크 더 퍼스트"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송태섭은, 마지막 말을 하고 그 말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농구를 연습하다가 낚시를 하러 가버린 형 송준섭에게 “미워, 동생하고 한 약속도 못 지키면서 형이냐! 다신 돌아오지 마.”라고 외쳤고, 이것은 송태섭이 형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었다. 그는 평생을 이 무게를 지키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형이 가르쳐준 농구를 하며, 형의 그늘에서 최선을 다하는 송태섭에게 농구는 슬픔이자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에는 애써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의 몫까지 다 살아, 라는 슬픈 말처럼 최선을 다할수록 뒤에 남겨진 사람은 더욱 쓸쓸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돌아보며, 송태섭은 살아도 되나 혹은 농구해도 되나란 생각을 되뇌어서 한다. 송태섭의 농구에는 형이 항상 함께 한다. 형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게 농구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송태섭은 슬프기 때문에 농구를 그만두고, 그럼에도 농구가 하고 싶어서 공을 붙잡는다. 경기 중에 되살아나는 형에 대한 기억은 그를 더 빠르고 강하게 만든다. 그와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고 송태섭은 포기하지 않는다. "슬램덩크 더 퍼스트"는 한 농구 경기를 그리면서 송태섭을 중심으로 한 다섯 선수들의 이야기를 교차로 삽입하였다. 이들의 경험과 기억은 농구 경기 자체를 성장시켜 나간다. "포기하는 순간 지는 겁니다."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울림이 강한 것은 모든 선수들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황과 꿈이 섞인 청춘이 농구에 녹아든다. 농구공이 튀기고, 인생이 퍼져나간다. 세상사 모든 것에 답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농구 경기에 몰입해서 점수를 얻어낼수록 우리는 답을 찾아가는 것 같다. 이 순간을 살아라, 카르페디엠에서 기억과 삶이란 결국 한 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때 이뤄진다. 모든 순간을 중요한 경기처럼 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집중하고 포기하지 않는 삶이란 그 자체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된다.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게임은 시작이다. 청춘의 만화 슬램덩크가 아름다운 색채로 영화화 되었다. 송태섭,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강백호 다섯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