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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 : 문의 의미 (*스포일러)

영화 리뷰

by 김바다

문은 안전한 집 안으로 나쁜 것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용도를 갖는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며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면 세상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안전한 집 안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스즈메의 문단속”이란 영화에서 문의 의미는 좀 더 확장되었다.


이 영화 속 문은 집의 안과 밖을 차단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일본 나라와 이공간의 경계를 이룬다. 현실 속의 일본이라고 하였지만 관객들은 애니메이션 속의 일본이 영화 밖에 존재하는 일본을 본따 만든 이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영화 내에서 문은 이세계와 이미지 일본의 경계를 이룬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영화 화면은 이미지적 일본과 이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관객이 처해 있는 현실과의 경계를 짓는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문은 최소 두 가지이다. 바로 이세계-이미지 일본-진짜 관객들이 있는 현실, 이 사이 사이를 매개한다.


그렇게 연결점 역할을 하는 문은 서로를 차단함으로써 안전을 유지한다. 문을 닫으면 이세계의 위험한 것들이 이미지 일본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건 마치 영화가 끝이 나면 화면 안에서 상영되던 이야기가 끝이 남으로써 영화 밖 관객이 처해 있던 여러 감정의 동요가 끝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영화 내에서의 문은 화면을 메타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바라보면 지진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에 있고, 우리는 화면 밖에 존재함으로써 영화 안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상관 없이 안전하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미 대지진은 일어났고, 영화는 그것을 모방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의 사건은 언제나 화면 밖으로 뛰어넘어서 우리에게 올 수 있기도 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문이 열려 지진이 이미지 일본에 발생하는 것처럼. 이렇게 두 가지 문, 영화 내부의 문과 화면이라는 다른 차원의 문을 통해 재난이 넘나든다.


그렇다면 그런 문을 닫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토지신 소타는 문을 닫는 것을 업으로 한다. 주인공 스즈메도 그를 도와서 문을 닫는다. 문을 닫으면 이세계의 위험한 것들이 이미지 일본으로 들어오지 않게 막을 수 있다. 결국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안전하게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화면으로 확장하면 영화 내부의 사건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는 걸 뜻하기도 한다.


그러면 문은 왜 열리는가? 주인공 스즈메는 문을 열었다. 그래서 이세계의 것들이 이미지 일본으로 들어와 지진을 일으키고 파괴한다. 이것에 답을 하기 위해서 소타와 스즈메의 관계를 잠시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스즈메는 소타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중에 문을 열지 않으면 그를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세상에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그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소타 앞에 있던 문이 열린다. 스즈메가 연 것이다. 이 문은 잠시만 위에 설명한 이세계-이미지 일본-진짜 관객들이 처해 있는 현실 사이의 문의 의미에서 벗어난다.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의 문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이란 다른 사람들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마음의 문은 타인을 쉽게 신뢰하지 않고 의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그 문이 열린다는 것은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는 일이다. 그게 쉽지 않아서 꿈으로만 남기도 한다. 스즈메는 소타의 문을 열고 그를 구해주었다. 이는 그가 세상과 단절시켜 지키고 있는 개인적인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스즈메의 노력이 소타의 마음을 열었다.

스즈메가 사랑하는 한 개인을 구하기 위해 문을 열었으니 세카이계적 선택의 기로에서 날씨의 아이처럼 다시 한 번 사람 한 명을 구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날씨의 아이보다 발전된 것은 스즈메는 그 후 세상이 파괴되지 않게 다시 한 번 소타와 힘을 합쳐 본디 존재하던 요석으로 문을 한 번 더 굳게 닫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좀 더 발전된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이 마음의 문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 내부의 이세계를 차단하는 문과, 화면이라는 문을 둘 다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세계의 문을 뜻할 수 있는 이유는 신카이 마코토가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기억이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잊지 말고, 그들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마음이 이 영화에 담겼기 때문에 이세계를 차단하는 문은 결국 기억의 문인 것이다. 계속해서 영화 속에서 재난이 발생하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함이다. 큰 고통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위로하기 위해서 재난은 자꾸 발생한다. 그리고 문을 닫을 수 있는 힘은 그 장소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에서 나온다.


마음의 문은 화면도 아우른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뜻하기에, 화면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세상에는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신카이 마코토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사람과 공간을 잊지 말라는 위로였다.


스즈메가 문을 여는 사람이 된 것도, 엄마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만든 나무 의자에 소타가 들어갔다는 것은 그가 스즈메의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영화는 세계적인 재난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기억을 찾아간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적인 메시지가 되어, 지진으로 파괴된 많은 사람들과 공간을 잊지 말자는 감독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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