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연극배우 가후쿠의 이야기이다. 연극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연극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차 안에서 연극 대사를 연습하는 게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가후쿠가 연습하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는 때로 그가 느껴야 할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슬픔과 좌절, 절망과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묵혀두기만 하는 가후쿠에게 연극 대사는 유일한 배출구가 된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방치하고, 연기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실어 보낼 뿐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그의 감정은 연극적으로 절제되고, 연기할 때 필요한 만큼만을 내보인다. 커다란 상실을 겪어도, 그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다. 즉 연극은 이 영화에서 감정과 연결된다.
영화 제목인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후쿠라는 인물의 특성을 드러낸다. 가후쿠만이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에게 차는 중요하고 사적인 공간이겠지만, 가후쿠에게 차는 더 내밀한 공간이다. 가후쿠는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대신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인데, 가후쿠는 이 공간에서조차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지 못한다.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끝없이 연극 대사를 연습한다. 이는 마치 계속해서 연습하는 현대인을 그려낸 것 같다. 사회 생활이라는 이름 하에서 속깊은 감정을 꺼내지 못하고 대본처럼 정제된 언어를 주고 받는 우리들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내밀한 공간에 누군가 침입한다. 가후쿠는 숙소에서 연습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우 보호 차원에서 운전수를 고용한다는 말에 불편함을 느낀다. 몇 번 거절하다가 나타난 여자는 젊은 여자 미사키다. 운전을 잘 할 것 같지 않아서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탔더니, 놀랍게도 편안하다. 어머니에게 맞으면서 운전을 배웠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녀가 그런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왠지 가후쿠는 자신과 비슷한 것 같다.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떠안기만 하는 게 그와 닮았다.
가후쿠는 미사키와 함께 눈이 많이 쌓인 공간에서 뒤늦게 상실과 슬픔을 일부 받아들인다. 눈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하얀색으로 덮어버리고 보이지 않게 한다. 그처럼 가후쿠도 온전히 감정을 직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사키가 위로해 준 것처럼 그는 자신의 감정을 안아줄 수 있었다. 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감정을 포근하게 다독인다. 그마저도 그에게는 처음이다. 차갑고 낯설게, 그는 감정을 바라본다.
가후쿠의 차는 미사키에게 넘겨졌다. 15년 동안 운전한 소중한 차를 미사키가 대신 운전한다는 것은, 가후쿠가 변했다는 걸 나타낸다. 그는 이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사적인 영역에 집착하지 않는다. 미사키에게 차를 주고 그는 눈이 덮이지 않은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지 않는 가후쿠가 진짜 감정을 찾아 떠났다는 것을 우리는 암시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밝은 표정의 미사키와 강아지를 통해서.
그리고 이는 남의 차만 운전하던 미사키에게는 사적인 공간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미사키는 이 개인적인 공간에서 편안하다. 슬픔과 상실과 고통도 안고 차를 운전해 나갈 것이다. 바냐 아저씨의 대사처럼,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