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블레이드 러너는 죽음과 사랑을 다루며 인간성에 다가가는 SF 영화이다.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복제인간을 통해서 말한다.
영화의 배경은 미래이며, 복제인간들이 살고 있다. 영화는 복제인간들이 탈출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위험한 복제인간을 죽이는 존재이다. 릭 데커드는 블레이드 러너로서 은퇴했지만 다시 고용된다. 그는 탈출할 복제인간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닌다.
그중 리더인 로이는 4년으로 정해진 복제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타이렐 회장을 찾아가지만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이렐 회장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 정해져 있으니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후 로이에게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자조차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제인간을 창조한 타이렐 회장은 마치 인간을 창조한 신과 같다. 그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창조자가 죽는 것이고, 따라서 죽음이란 건 그 누구에게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음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그가 죽음으로써, 우리는 로이와 함께 허무한 공포를 경험한다.
로이는 사랑하는 프리스를 위해서 생명의 비밀을 풀고 싶었던 것인데, 프리스마저도 죽는다. 죽음의 비밀을 풀지 못하는 인간은 지속적으로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은 슬프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겪고 싶지 않지만, 그런 감정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필연적이다. 사람은 항상 행복 속에서 살아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고 슬픔에 휩싸인다.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다. 모두가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허무에 빠질 수도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최선을 다해 부딪치고 살아야 하는 게 태어난 목적이 된다. 그것이 목적인 이유는, 그것이 목적이 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고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들이 살아갈 힘을 상실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세상에는 친구도 없고 문명도 없고 대화를 나누고 사상과 생각을 나눌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다 던지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해도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하나의 궤적으로서 아무런 의미와 흔적이 없더라도 눈앞의 것만 급급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해도, 정말 괴롭고 모두의 비난을 받더라도, 사실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죽음이 두려울 것이고 그 두려움은 살고 싶다는 희망에서 나온다. 완전한 절망에 빠지고 싶지 않은 우리 인간의 한 줄기 빛은 생명력에서 나온다. 괴롭고 우울하고 비참할지라도 그런 무가치해 보이는 삶이라도 살고 싶은 것은, 인간에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은 숨을 쉬는 것으로부터 나오고, 음식을 먹는 것으로부터 나오고 그 다음에는 친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애정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이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다 해도, 비참한 삶을 살고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봐도 조금도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살았으면 좋겠다.
생명을 쉽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주 끈질기게 모두가 살아남았으면 좋곘다. 이건 나의 소망에 불과할 수도 있다. 모두가 쉽게 죽음을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면 많이 슬퍼하는 게 아닐까. 슬퍼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력이 끊어져서 다시는 웃는 모습을 볼 수 없고 말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파하는 마음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모두가 죽임을 당하고 슬픔에 빠지는데도 살고 싶은 것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삶의 이야기를 펼쳐내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찬란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동안 행복을 누리고 햇빛을 받으며 밝게 거리를 거닐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하는 인생의 이야기를 누려볼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든 이런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 행복에 닿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 뿐이다. 결말이 똑같다고 해도 모든 과정이 같지는 않다. 우리는 그 다른 과정을 위해 애써서 다채롭게 삶을 펼쳐내고 죽음이 올 때가 되면 겸허하게 인생을 덮으면 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도 그렇게 하였다. 사랑하는 프리스가 죽고, 살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그렇지만 적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로이는 그를 살려주고 그의 좀 더 긴 생명력을 존중하였다. 그 후 죽음을 맞이할 때 로이의 손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흰 비둘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그의 생명은 끝이 났지만, 그의 손으로부터 릭 데커드가 살아남고 세상을 더 살아갈 것이다.
여기까지 블레이드 러너의 죽음을 다뤄 보았다. 다음으로 사랑 이야기를 잠시 해보겠다. 릭 데커드는 복제인간인 레이첼을 사랑한다. 복제인간은 인간처럼 슬픔, 분노, 감동, 사랑을 느낀다. 기억도 가지고 있다. 바닷물이 빛으로 물드는 기억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복제인간들은 인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가지고 있고, 인간성의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일부는 감정과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창조물들을 죽여서 진짜 인간성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통제력을 벗어난 복제인간들을 죽이는 행위가 어떻게 인간성을 지키는 것일 수 있을까.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누가 진짜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릭 데커드와 타이렐 회장마저도 복제인간이지는 않을까.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이 복제인간인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도 생겨난다. 영화 밖 우리조차도 복제인간인 걸 알고 눈물을 흘리는 레이첼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임무를 수행하는 게 복제인간의 생성 목적인데, 많은 사람들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살아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결국 산다는 게 무엇인지 묻고, 복제인간을 통해 우리의 진짜 인간성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