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조 경향과 극사실회화 :70,80년대 한국회화

by 신하연


“1970 년대 단색조 경향 - 소통의 의미가 제거되었다.

유신 체제에서 민족 전통의 부활과 재건에 대한 정책이 시행되고 한국적 미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975 일본 도쿄 화랑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백색전. 일본적인 시각을 반영한 전시 한민족은 백색을 좋아한다는 생각으로 백색으로 구성된 다섯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일본적인 시각을 통해 오히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담론으로 논의되었다"(박수진)


국내적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유신 체제로 분열된 민중을 하나로 묶고 통합하기 위해서가 있습니다. 미국이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 미군 병력을 감축시키자 전쟁에 불안을 느끼는 민중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정체성과 한국적인 뿌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졌습니다. 부당한 정치 체제 하에서 민중과 소통하는 방법은 그들로부터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달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적인 것에 대한 담론은 타국의 편협한 시선으로부터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한국인은 백색을 좋아한다." 일본인들은 식민지에서 염료로 색을 입힐 돈이 없어 입은 한국인의 백의를 보고, 한국인은 백색을 좋아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들은 도쿄 화랑에서 한국인의 백색전을 열고, 자신들이 생각한 단편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한국의 미를 감상하였습니다.


이런 일본적인 시각이 오히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을 촉진하였는데, 어떤 담론이 오갔을까요. 추측하건대, 왜 수많은 한국인의 모습 중 백색이 타국민족의 눈에 들었는지 백의는 정말 타국과 비교하여 자국의 특이점인지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자국의 것은 타국과의 비교로만 정립되는지 혹은 그런 비교를 통한 정립이 정당한 것인지 생각이 듭니다. 타국과의 비교를 하지 않고 정의할 수 있는 진정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위의 궁금증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가요?


저는 한국적인 것은 눈에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복처럼 눈에 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먹는 것이나 말하는 것, 사는 곳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정신이겠지요. 누누이 들어왔던 대로 한국인에게는 얼과 한이 있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도 많은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뿌리내리고 살아온 작은 나라의 민족은 수많은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민족을 흩어지지 않게 잡고 있던 것은 얼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의 정서가 민족 정신에 단단히 새겨졌습니다.


이 두 가지를 백의에 연결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일본인들은 백의를 보았지만, 가난과 수난을 겪으며 살아온 민족의 내면을 조금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보고 알 수 있었던 것은 한가지입니다. 자신의 고장에서 입지 않는 옷의 색깔을 수도 없이 많이 입은 사람들, 백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표면적인, 이유조차도 알지 못하는 피상적인 접근으로 결론 내린 우리 민족, 우리 것은 상당한 오해에 근거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런 접근을 통해 진정한 우리 것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잘못된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타국에 의한 시선이 자리잡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담론이 일어난 것이 독재 체제하에서 민족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술적인 접근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이해의 목적은 민족 통합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독재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색조 경향은 이런 시대적인 격동을 그대로 기억하는 역사적 상흔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최병소 -무제

신문지의 글자를 연필과 펜으로 지워서 번뜩거리는 찢긴 자국만을 남긴 최병소의 “무제”는 소통의 의미가 제거된 것을 보여줍니다. 최병소 작가는 신문지의 글을 모두 연필과 펜으로 덧칠했습니다. 연필 자국만 가득차고 그것이 빛을 발할 때까지 계속하였습니다. 신문지가 너덜거리고 찢길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든 글자를 지우고 나서야, 그의 작품은 완성되었습니다.


단색조 경향이 두드러진 시기는 우리 문화의 고유한 것을 알고자 했던 때입니다. 일본은 한국에 단색 특성이 있다고 간주했습니다. 한국 고유의 것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실제 단색조 경향의 화풍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촉발된 단색조 경향은 다시 우리 것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최병소 작가의 <무제>가 시사하는 점은, 진정한 우리의 것을 표현함에 있어 잘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소통을 차단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너덜거리는 단색으로 표현된 작품은, 마치 소통하지 않고 규정지으려는 한국의 고유함이란 것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 주체가 자국인지 타국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메시지와 맥락을 보지 않고 한국의 것을 단색조로 잡은 무엇인가에 대해 날카로운 고찰을 보여줍니다.


단색조 회화 작품들을 감상해보겠습니다.


<허황-가변의식 84-A, 1984>
<상황-이동엽, 1972>
<점으로부터-이우환, 1973>

위 작품들을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단색조 경향의 작품들은 형상도 없고 서술성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적으로 이러한 화풍 다음에 어떤 것이 등장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1970후반-80 한국 극사실회화

한국 극사실회화는 단색조회화의 형상이 없고, 서술성이 없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이미지의 회복 차원으로 진행되었다. 특징으로는 형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평면적이다.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단색조 톤의 형상회화를 보여준다.



돌 고영훈: 자연과 문명의 소재를 만나게 해서 대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환영과 실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다."(박수진)


<돌-고영훈>



단색조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으로부터 뻗어 나왔다면, 극사실회화는 그런 단색조의 비서술성과 형상 없음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단색조의 톤을 유지하고, 형상이 있음에도 평면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하고자 하는 특성의 일부를 극복해 사실적인 형상과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이전의 면모를 답습해 발전시킨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극사실회화는 새로운 것에 대한 존재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반동을 통해 나온 것이 이전의 것과 유사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완전히 새롭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모든 것을 반대로 바꾼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새로운 것일 수 있을까요?



위의 <돌> 작품은 극사실회화 작품입니다. 돌은 자연을 상징하고, 뒤의 배경은 영문으로 된 책을 찢어 붙여 만든 것으로 문명을 의미합니다. 그 둘은 평면 공간에서 상당히 입체적인 모습으로 부착되어 있습니다. 돌과 책 중 어떤 것이 환영이고 실재일까요? 돌이 실재이고 책이 환영일까요? 그렇다면 실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환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돌이 실재라면 돌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책은 머릿속으로 이해해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당히 추상적인 내용물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돌이 실재이고 책이 환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실재적인 것과 환영인 것은 무엇이고 그 사이의 경계는 어떻게 될까요?


돌과 책은 부착되어 있습니다. 실재와 환영이 서로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돌의 그림자는 책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실재가 환영인 것을 가리면서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이 그림을 어떻게 보시나요?


이러한 이질감은 왠지 모르게 단색조 경향과 극사실회화의 관계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 실재이고 환영이라고 구분지을 수는 없겠지만, 반동적 관계인 둘은 서로에게 붙어 영향을 주고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리는 관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색조 경향은 민족성을 단순하게 드러냅니다. 그보다 조금 더 정교하면서도 단색조 경향의 영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극사실회화는 단색조 경향과 결코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실재로부터 환영이 나오고, 환영이 실재에 영향을 주는 것도 비슷하겠지요.





지금까지 단색조 경향과 극사실회화에 대한 탐구를 해보았습니다. 제가 쓴 글이 작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일 수는 없겠지만 글을 쓰며 작품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박수진,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국립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투어 유튜브


https://youtu.be/ge6pkMKIm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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