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초록의 길 위에 첫발을 내딛는다. 싱그럽게 올라오는 풀잎 향기가 맨발을 타고 올라온다. 조금 더운 듯한 저녁이다. 어둠을 갈라 내려오는 빛 사이로 오은철이 Green road를 연주하고 있다. 음은 점점 내려가는데, 오히려 한 겹씩 피곤을 벗어가는 듯 가벼워진다. 잔디가 발에 스칠 때처럼 간지럽기도 하다.
“당신의 Green road는 무엇인가요? 제가 만들어 드려도 될까요?”
그가 연주를 하며 말을 건넨다.
도시의 사람들은 지쳐 있다. 자연 속으로 선뜻 들어가기에는 문명의 힘에 기대 있어서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잔뜩 입고 있는 도시의 것을 쉽게 벗어던질 수 없다. 좋은 옷도, 향수도, 스마트폰도 우리의 일상에는 너무 중요한 것들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것들은 사회적인 지위를 드러내며, 좋은 이미지로 보이게 해 주고 사람들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급급하게 해야 할 의무와 경쟁들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 앞만 보고 나아가게 하는 음울한 원동력이다. 멈추는 순간 고장이 나버릴까봐 자유와 멀어진 채로 의무만 짊어지고 있다.
오은철이 다시 말한다. Green road로 잠시 떠나보시겠습니까?
그가 줄 수 있는 상쾌함은 분명히 일시적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유지되는 것만이 진실이라면, 이 세상 대부분은 거짓에 속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거짓 속에 사는 건 아니다. 변화의 과정에 있다. 모든 것은 서서히 변하고, 그 변화를 풍부하게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삶에 가깝다.
이때도 진실은 무색하지 않다. 오래 간직되는 것들은 귀하다. 우리가 잠시나마 콘서트를 보면서 일상 생활에서 전환을 할 수 있다면 충분하고, 그로 인해 여운이 남고 삶에 좋은 기억이 된다면 그것은 가치 있다.
Green road를 함께 걸어보자.
관객석에 앉아서 그가 우리를 위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한 사람이 준비한 선물같은 시간이 나의 시계를 멈추고, 초록빛 향을 음미하게 한다.
이 연주와 감동은 영원할 수 없다. 콘서트장을 나가면 덧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을 헤집어 더듬다 보면, 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흔적은 초록 향을 머금고, 우리 삶에 여유로운 길을 내어줄 것이다.
그의 연주로 한 모금의 휴식이 만들어졌다. 이 휴식이 감미롭다. 우리도 사회에서 일상을 연주하러 갈 힘을 얻는다.
오은철은 히사이시 조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연주했다. 숲속의 낡은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그 연주에 꽃무리가 흔들린다. 조명이 연주에 너울거리듯 그를 비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로 연결되고,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선하다. 치히로가 넓은 바닷길 위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가오나시도 함께 서 있는 하늘 같은 풍경 속에서 먼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보인다.
붉은 조명으로 바뀌면서 조커가 연주되었다. 광기의 걸음이다. 빛나는 광채가 발자국을 남기면서 불안감을 높여주고 오은철의 손은 분노한 것 같다. 무엇에 분노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더욱 광적이다.
그 다음에 배치된 곡이 Sea of Love라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곡이라서 대비가 심하다. 가녀리고 속삭이는 듯한 연주와 행복한 표정이다.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곳이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하울의 올드 보이가 연주되었다. 익숙한 테마 두 개를 엮어서 오차 한 번도 없이 온몸으로 속주했다. 화려한 연주는 지금부터라고 자신감을 내뿜는 것 같다.
1막이 내려갔다.
2막이 올랐다.
영화 코코의 주제곡 Remember me가 연주되었다. 대니구의 흥겨운 바이올린 연주도 함께하였다. 라이언킹 ost인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연주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서로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호흡을 기다렸다.
그 다음 곡은 English man in new york이었다. 색소폰, 바이올린, 피아노, 밴드까지 가세해 관객석을 들썩였다. Canon fantasy에서는 변주가 각양각색으로 이뤄졌다. 색소폰의 열정적인 마무리까지 지켜본 관객들은 완전히 흥분했다.
Hey jude에서는 크랙실버의 보컬 빈센트가 등장했다. 초반부에는 평소보다 힘을 아꼈지만 곧 마음껏 그의 기량을 뿜어댔다. 지금까지의 분위기에 새로운 느낌을 더했다.
크랙실버의 기타리스트도 등장해 함께 그들의 곡 Home sweet home과 miracle을 연주하였다.
love와 앵콜곡 love letter, 커튼콜 곡까지 Green road를 오은철과 함께 걸었다. 그의 연주는 파도 같았다. 거세게 휩쓸기도 하고, 멈추지 않고 밀어내는 힘이 있었다. 흰 파도 알갱이가 부서지는 것처럼 그의 창의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여유로웠고, 모든 것이 계획 아래서 철저하게 움직였다. 치밀한 준비로 완성된 예술성으로 인해 좋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가 몰고 간 피아노의 여운이 청량하게 남아 있다. 예술적인 휴식을 보내고, 아름다운 변화를 겪으며 더욱 풍부해지는 삶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