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2 데이트 기록
코스: 시올돈-라치몬트-다운타우너-한남동 옷가게들- 뮤지컬 위키드
나는 남자친구와 시올돈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주문할까? 하고 톡을 보냈더니 남자친구가 곧 도착한다고 했다. 창가에 앉은 나에게 양산을 걸어오는 남자친구가 보였다. 우리는 바로 웃으며 인사하고, 남자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살 빠졌네, 예쁘다 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저번 주 캐리비안 베이에 가서 찍힌 사진을 보고 살집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일주일동안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즐겨 보는 마르고 예쁜 인플루언서 블로거의 몸무게가 48kg이란 걸 최근에 알게 되었고, 저렇게 사진에 예쁘게 나오려면 훨씬 더 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내가 이 정도만 빼도 예뻐하는구나 싶어서 고맙기도 하고, 더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동안 3kg을 뺀 상황이었고 다이어트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고픔과 정면 승부를 하자는 생각 덕분이었다. 보통 배고프면 가벼운 음식을 먹거나 하면서 피하는데, 이번에는 배고플 때 그대로 굶고 참았다. 고통스러웠지만 정면 승부라는 생각은 나를 강인하게 해줬다. 그래서 잘 버티고 뺐다. 그렇게 뺀 모습을 남자친구가 예쁘다고 해주어서 고마웠다. 오늘 아침에 화장도 잘 했다.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골드 계열의 아이섀도를 바르고, 눈에 음영을 깊게 줘서 길어 보이게 만들었다. 아이라이너도 진하게 그려서 눈이 진해 보이게 했다. 입술은 밝은 체리 색깔이어서, 내가 보기에도 좋아 보였다. 흰 크롭티에 밝은 하늘색 청치마를 입은 내 모습은 꽤 청량해 보였다.
나는 치즈 돈까스를 주문했고 남자친구는 특등심이 없어서 등심 돈까스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 내가 남자친구 등심에 들어 있는 붉은 선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자친구가 비계와 살코기가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알려주었다. 비계가 있어서 부드럽다고 했다. 나는 치즈 돈까스를 한 입 먹었는데, 바삭바삭한 튀김 안에 살코기가 느껴지고 늘어나는 치즈도 굉장히 맛있었다. 잡내가 하나도 없었고 좋은 질의 고기가 느껴졌다. 나는 시올돈의 이 깔끔한 맛이 좋다. 저번에 먹었을 때도 무척 맛있었는데 이번에도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신선하고 좋은 고기를 사용하는 게 느껴져서 먹을 때 기분이 좋다. 치즈도 좋은 치즈인지, 향이 단정하고 고왔다. 돈까스 소스에 찍어 먹을 수도 있었고, 히말라야 소금, 와사비 소스, 이름모를 고추씨로 만든 것 같은 소스에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소스를 올려서 먹으니 더 고소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나는 남자친구와 돈까스 하나를 나눠 먹었다. 등심 돈까스에서는 두툼한 고기 맛이 제대로 났다.
우리는 맛있게 먹고 카공을 하러 라치몬트 카페로 갔다. 1층에 자리를 잡아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라치몬트에서 무화과 휘낭시에를 팔아서, 설마 내가 좋아하는 옥바의 것과 비슷한 것일까 하고 2개를 사봤는데 딱딱하고 맛없었다. 라치몬트에서는 매번 디저트를 실패한다. 그래도 우리가 주문한 미숫가루는 맛있었다. 오랜만에 여름에 미숫가루를 먹으니 좋았다. 든든하고 시원하고 달콤했다. 어릴 때 집에 미숫가루가 항상 있어서 우유에 타먹었던 게 생각났다. 미숫가루는 비율을 잘 맞춰야 한다. 꿀을 넣어도 되고 설탕을 넣어도 된다. 이모가 만들어 왔던 미숫가루가 참 맛있었는데. 언젠가 소풍 갔을 때 보온병에 담아오셨던 것 같다. 라치몬트의 미숫가루는 크림처럼 부드러웠다.
그리고 나는 소설을 쓰고 토지를 읽었다. 소설 미화원을 고치다가, 꽤 고치고는 집중이 안 되어서 해결책을 찾다가 한 번에 5개의 소설을 고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때 다른 소설을 고치면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마녀의 꽃집도 고치고, 흥덕에서도 고쳤다. 글이 아름답게 잘 써졌다. 좋았다. 점점 잘 써지는 것 같다. 남자친구가 빌려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도 문단별로 글을 쓰는 법을 배웠고, 토지를 읽으며 점점 소설이 갖는 힘을 느끼고 문학을 쓰는 법을 알게 된다. 계속 공부해나가는 게 좋다. 그런데 4시까지 토지를 읽고 소설을 고치려니 조금 지쳤다. 나는 보통 출근하기 전 오전에 간단하게 소설을 고치고 책을 읽어서 짧게만 일했는데 한나절을 고치고 있으려니까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지고 지루했다. 그래도 다음 번에는 좀 더 길게 집중력을 유지해 보고 싶다. 하루 종일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이 생겨야 직업으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무래도 취미 생활 정도이다. 은희경 소설가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글을 쓴다는데.. 나도 더 분발해야겠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로할 때는, 명상을 하면서 다독이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해보자.
그러고 우리는 뮤지컬 위키드를 보기 위해 한강진역 근처에 있는 블루스퀘어로 갔다. 조금 기다렸다가 티켓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오페라글래스를 받고 싶어했지만 수량이 30개 뿐이었고, 6시에 오픈해서 우리는 포기하고 밥을 먹으려고 나갔다. 남자친구가 피자와 햄버거를 좋아해서, 나는 음식점을 찾다가 한남 다운타우너를 발견했다. 맛있어 보여서 이곳에 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에 쇼룸, 옷가게, 소품 편집샵 등이 많아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남자친구가 먹고 나서 구경하자고 했다.
우리는 구불구불 길을 따라서 다운타우너에 갔고, 웨이팅 없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입구에 한남 3대 맛집이라고 적혀 있던 걸 남자친구에게 알려주었다. 기대가 되었다. 나는 아보카도 햄버거를 주문했고, 남자친구는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다. 세트로 주문했다. 컵을 받았는데 나는 갑자기 잘 안 먹는 파인애플 환타가 먹고 싶어서 그걸 받았다. 남자친구는 사이다를 좋아하는데 나랑 똑같은 음료를 받아서 신기했다. 내가 먹는 걸 같이 먹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햄버거가 나왔다. 정말 맛이 좋았다. 깨가 잔뜩 뿌려져서 겉부분이 바삭하고 속이 부드러운 빵, 진득한 패티, 그 사이에 끼어 있어서 부드럽게 어울리는 아보카도와 구운 양파, 베이컨, 토마토, 상추가 놀랍도록 잘 어울려서 맛이 참 좋았다. 수제 버거라는데 직접 구워서 만든 게 느껴졌고, 먹을 때마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감자튀김도 두꺼워서 바삭한 튀김 옷 사이 포슬한 감자 맛이 느껴졌다. 우리는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나와서 옷가게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세일 중인 아틀리에 나인에 들어갔다. 한남동스러운 깔끔한 디자인의 옷들이 있었다. 노란색의 치마는 고급스러워서 예뻐 보였다. 50%세일해서 5만원 정도였는데 살 계획이 없어서 내려놓았다. 전반적으로 한남동에서 옷 잘입는 2030대 여자들이 입을 옷 같았다. 그리고 나와서 힙한 느낌의 옷가게도 보았다. 다 파여 있고 밸런스도 맞지 않아서, 아주 옷 잘 입는 젊은 사람들이 입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악세서리 가게도 보았는데 잘 만들어진 목걸이들이 10만원이 넘었다. 십자가나 해골 목걸이 등이 있었다. 비즈 반지는 20000원 정도 했다. 검은 가방이 예뻐서 들어 보니 막상 너무 커서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반게리온이나 아키라 그림이 그려져 있는 오타쿠 감성의 옷가게를 보고 우리는 블루스퀘어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고 우리는 바로 들어갔다. 위키드 공연이 시작하고, 1부까지는 영화에서 본 내용을 압축해서 빠르게 넘어갔다. 중간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멈추기도 했지만, 다시 잘 시작했다. 다시 할 때 관객들이 박수를 크게 치면서 격려해 줘서 나도 기분 좋았다. 영화보다 훨씬 템포가 빨라서 지루하지가 않았고 무대장치들이 들어가고 나가고 하면서 무척 재미있었다. 그리고 1막이 끝날 무렵이 압권이었다. 엘파바가 하늘 위로 날아 오르고, 스테인드 글라스 불빛 같은 조명이 사방으로 교차하면서 엘파파는 빛에 감싸이고 초록색 노란색으로 빛나며 defying gravity를 부르고, 바닥은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너무 장관이었다.
2막은 더 재미있었다.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나와서 좋았고, 각본을 정말 재미있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 원작과도 놀랍도록 잘 맞았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의 노래 가사가 참 좋았고 울림이 있었다. 감동적이었고, 이렇게 좋은 우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명받았다. 그러면서 남자친구 생각을 했다. 내 짝꿍으로서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줄 것 같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더 좋아졌다. 짝꿍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항상 같이 다니고 붙어 다닐 수 있어서 즐겁다. 좋은 뮤지컬을 보고 좋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만 보고서는 아름다운 우정 같은 것보다는 이용하고 서로 속이는 것들만 봐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결국 그런 걸 다 진실한 우정으로 승화시키고 아름다운 마음을 그려내서 좋았다. 역시 작품이라는 건 희망과 꿈을 살려줘야 좋다. 위키드를 통해 마음이 곱게 정화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