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을 할 때 이미지로 한다. 구체적으로 정경을 떠올리고, 그러다가 막히는 부분을 다시 그려보고는 한다. 눈을 감고 세밀하게 떠올리면 더 정확하게 무언가가 떠오르는데, 그게 맞는지에 확신은 없다. 적어도 내 기억 속 풍경에 어떤 것이 계속 채워지기는 한다. 이게 실제가 아니라도 좋다. 실제 눈으로 본 것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에서 미화라는 것도 있고, 내가 기억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렇게 기억하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기억을 하는 건 나에게 그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머릿속으로 그리는데 선명하게 바로 떠올라 채워지는 이미지도 있지만, 뿌옇고 부정확한 것도 있다. 그런데도 시간을 들이면 좀 더 명확하게 채색이 되고 장면이 분별있게 그려진다. 그렇게 빈 부분들에 뭔가를 채워가는 게, 손으로 하지 않는다 뿐이지 어째서 그림 그리는 것과 크게 다를까. 나의 머릿속에서 채워져 가는 것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손으로 그림으로 뽑아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자꾸 나는 글을 적고, 그걸 언어로 남기고 싶어한다. 그런 욕구가 나에게 있다. 내가 사랑하는 기억들을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고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자꾸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는 태반이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온다. 그게 소설이라 해도, 허구라 해도, 내가 살아온 삶 어딘가에서 연관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또 나만의 기억이 아니라도 현실이라는 어떠한 것을 글로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언제는 내가 경험한 것만 글로 적고 싶단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글은 제한이 되었다. 사실만을 적으려 하니 심심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읽게 된 박경리 작가의 토지. 그 작품은 글로서 현실을 뛰어었다. 실제 삶, 우리 농민, 우리 역사의 삶을 그대로 담고서 흘러가는 이야기. 너무 아름다웠고 이게 바로 소설이 가진 힘이라는 걸 느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문학 안으로 들어갈 힘을 얻었다.
요즘은 글을 쓰기보다는 잠시 쉬고 있다. 마음에 드는 글을 하나 썼기 때문에 쉬고 있다. 또다른 글을 쓸 힘을 얻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토지는 꾸준히 읽고 있지만, 한 번에 한권만 읽는다는 나의 원칙이 오늘부로 깨졌다. 다른 책이랑 번갈아 가며 읽으니 훨씬 집중이 유지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기에, 나는 이제 한 번에 여러 책을 읽을 것이다.
그야 그렇고, 서론이 길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짧은 에세이는 나의 기억 중 청계천 거닐기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그려 보겠다. 눈을 감고 내가 원하는 대로, 떠오른다. 실제 기억과 틀린 게 많을 것이라, 그것만은 감안하고 그냥 감상해 주시면 좋겠다.
청계천이 흐른다. 공기 중으로 시원한 소리가 퍼진다. 거문고 한 줄기가 파아, 끊어지듯이 세차게 움직이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운다. 상쾌한 소리 때문에 갈증이 인다. 저 물 속에 들어가서 온 몸을 가눠봤으면. 부드러운 발걸음 옆으로 물살이 동그랗게 일어났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은색 물결이다. 어둠이 스며 들어 있고, 보려고 하면 사라진다. 아련한 달무리 같다. 물결은 평평하고 너른 바윗돌 위를 꾸물꾸물 움직인다. 아주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둔하고 묵직하지도 않아서 까치 움직임처럼 눈에 익다. 어둠이 흐르는 물, 밤의 청계천을 거닐고 있다.
아버지는 연한 남색 티를 입고, 머리가 빡빡이인 어린 남동생을 어깨에 올려 걸어간다. 그 뒷모습이 앞장 서고, 엄마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글씨가 써 있는 벽을 가리킨다. 큰 돌을 세워 만든 청계천 벽 사이에 어린 소녀와 선인장 그림, 동화에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그 그림이 그려진 판은 노란색으로 빛을 발해 글씨를 읽을 수 있다.
"빛은 어떻게 생겼어요? 태양처럼?"
소녀가 묻자 선인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음 그림으로 걸어가자, 선인장이 자신의 몸을 부풀리고 있다. 선인장은 원래 자신이 작았다고 한다. 그런데 빛을 받았더니 자꾸자꾸 커졌다고 했다. 빛은 그렇게 항상 어딘가 안에 들어있어서 절대 볼 수가 없고, 무언가를 키워준다고 했다. 소녀 안에 들어 있는 용기와 희망, 그런 게 보이지 않아도 커지게 하는 게 빛이라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의 빛은 가족이라고 답한다. 여동생은 짧은 단발머리를 흔들리면서, 그 글을 읽어주는 엄마를 보고 웃는다. 흰 피부에 조막만한 눈, 밝은 볼을 가졌다. 눈에는 이기심이나 욕심 같은 걸 모르고, 세상에서 커가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가득 들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이 기억이 좋았던 이유는 다 적었다. 가족이 함께 밤의 청계천을 거닐며 조명을 보던 것이 좋았다. 오히려 적고 나니 좋은 이유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뭔가 다르게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일부러 글에 멋을 부렸을 수도 있고. 그런데도 적고 나니 아쉬움은 적어지는 것 같다. 한 번쯤은 남기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청계천을 거닐던 때를, 소중한 어린 시절을 무언가 다른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어떤 형태로 변했다는 것이 충분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