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언제 오는가

by 신하연

스웨덴인가, 어느 나라에서는 기온이 일정 온도로 일주일 이상 유지되어야 봄이든 가을이든 결정이 난다고 한다. 그 방식은 그 나라만의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절 맞이일 것이다. 몇월이 되면 어떤 계절이 아니라, 실제 과학적인 온도로 체감할 수 있을 때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뉴스에서 어떤 계절이 왔음을 안내하고, 사람들은 그제야 철에 맞는 옷을 꺼내입는다. 그렇게 하면 시원해졌다 싶어서 반팔이나 민소매를 입고 나갔다가 된통 찬바람에 당할 일이 적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계절 맞이를 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입추라는 절기를 통해서 가을을 맞는다. 나 역시 아빠에게서 전화를 받아, 입추가 지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입추가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단다하는 말에 실제로 저녁이 되면 꽤 쌀쌀한 바람을 느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아직 가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에게 가을은 아직도 높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 코스모스와 단풍으로 대변된다. 한번도 이런 가을다운 가을을 맞아본 적이 없으면 모를까. 내 어릴 적에 하늘이 어떻게 저렇게 높아요? 하고 동네에 있는 큰 산이 빨갛고 노랗게 물들은 모습을 보고 가을을 실감하던 나에게 이 높은 온도는 아직 여름이다. 입추가 왔다고는 하나,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고는 하나, 나에게 가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기후 변화가 심해져서 가을다운 가을을 맞지 못할 수도 있다지만, 그러면 나에게 가을은 없이 지날 뿐인 거지, 으레껏 시기가 되어 입추가 왔다고 온 사람들이 외쳐도 나에게 가을은 아닌 거다.


나의 가을에는 작고 통통한 몸을 수그리고 가장 예쁜 은행잎을 찾는 놀이를 했다. 내년에 입학할 초등학교에 가족과 가서 물이 마른 정원도 보고, 놀이터 구경도 했다. 그 초등학교가 어찌나 크던지, 한참을 걸어가야 정문에서 후문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내년에 네가 다닐 학교다, 하고 데려가 주신 부모님과 같이 걷던 초등학교. 그 당시에는 초등학생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하루 나이가 먹어가는 게 기대되는 일이었다.


좋은 고등학교와 명문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가장 설렜던 것 같다. 공부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서 들어간 학교보다, 그저 나이가 한 살 먹어서 입학할 수 있는 우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가 나는 지금에서도 더 크게 느껴진다. 얼마나 넓었는지. 한참을 걸어도 작은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다 돌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넓은 운동장, 내 마음도 넓어서 온 주변 사람들을 품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나 살 길만 찾고 있는 게, 내가 차가워진 건지 옹졸해진 건지, 아니면 여유가 사라져버린 건지. 아주 작은 말투와 표정에도 토라지고 나만 살겠다 버텨보는 게, 그 너른 운동장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아무리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보이던 운동장에, 가을 은행잎이 가득 펼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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