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몰을 보았다. 많이 보았지만, 내가 살아온 날의 수보다는 적게 보았다. 일몰을 보지 못하고 지나온 하루가 많다보니. 기억에 남는 일몰을 떠올리려 해 보니, 언젠가 보았던 것들이 합쳐지고 불분명하게 흐려진다. 그럼에도 선명해지는 것은 주홍의 선, 크레파스로 칠한 것이 아니라 빛으로 가득 감싸여 있는 주홍은 황홀하다. 끝자리는 노랗게 변하고, 또 어떤 자리는 붉어지고 하늘은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그 계열의 색채가 그토록 자연스럽게 타올랐다. 자연의 선인데도, 신이 일부러 빚은 것처럼 눈이 부시고 신성한 무언가의 탄생을 부르짖는 것처럼 영광스럽다. 빛으로 가득하고, 아주 먼 자리까지 주홍이 뻗어나갔다가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변화해간다. 그 변화를 시시각각 알기 어려운데 하염없이 보고 있다가 잠시만 눈을 돌리면 어둠이 감싸고 마는 노을. 그 노을이 그려진다. 언젠가 보았고, 사진도 찍었고, 자주 보았고 익숙해진다 하다가고 오랜만에 보면 감동을 받게 된다.
그 일몰을 어디선가 또 보았을까. 심장이 쑥 내려앉는 것 같은 공포에서, 외로움에서 보았다. 아무도 날 찾지 않고 혼자 남겨졌을 때의 기분이 오래 오래 날 두렵게 하지는 않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로 무서웠다. 아무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려고 하지 않고, 나는 외곬로 책에 빠져들었다. 무언가를 남들보다 더 잘하게 된다 하더라도, 외로운 건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공부해 보아도, 1등을 해도 외로운 기분이 가시질 않아서 어찌할 줄을 몰라서 더 공부하고 더 침잠했다. 아무리 멋있게 해보려고 해도, 멋있는 옷을 입고, 외모를 가꾸고, 보기에 싫지 않아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서툴러서 어울리지 못했다. 남을 욕하는 것도 아니고, 깎아내리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모든 것을 하는 아이들보다 인기가 없고 내 곁에 오려 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 틈에서 더 잘 어울리고, 밝고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내 곁에는 사람들이 오지 않고, 결국 내 문제가 무엇일까 하니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사람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치를 채는 일이 어려워서, 더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들은 적어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하고 책을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어려웠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고 해도, 나 역시도 놀고 싶었고 핸드폰을 하거나 나태하고 싶었다. 지루한 삶이 보내는 유혹이 컸다. 나와 싸움을 하면서 다독이면서 결과를 만들기는 했지마는, 외로움은 가시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나는 예전보다 더 눈에 띄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은 여전히 모르고, 외로운 건 나를 집어삼켰다. 노을은 분홍색에서 노란색, 주홍색으로 찬란한데 나의 외로움은 그와 반대되는 색은 다 가지고 있었다. 파랗고, 축축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색채의 외로움은 그 나름대로 색을 뿜어대며 나를 감쌌다. 그렇게 외로움이 내 심장을 안고 내려갈 때, 나는 또다른 색채의 일몰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