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은 내가 국기봉에 올라가서 시원하게 동네를 내려다보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파른 산을 재빠르게 올라갔다. 수직으로 서 있는 바위에 찰싹 몸을 붙이고 발을 내딛었다. 그러면 또 발을 내뻗을 공간이 나오고, 나는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내가 동물적인 민첩함으로 그렇게 산을 탈 때, 나는 관악산을 사랑했다. 재간을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다람쥐처럼 가볍기도 해서, 산은 나의 친구였고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이 올라가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비밀스러운 자연의 공간.
내가 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있었다. 너른 바위에 누워 있으면 자연 속에 담겨 있으면서도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곳, 절의 목탁 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리는 곳이다. 그곳에는 꽃밭도 있어서 봄이면 벌과 나비가 있고 여러 색깔의 꽃들이 피어 있다. 어릴 적에 읽었던 빨간머리 앤이나 하이디,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소년 소녀들이 놀 것 같은 공간이다. 나무에도 올라 높은 곳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산의 그 공간을 특히 좋아했다.
그러던 나는 산을 언젠가부터 무서워하게 되었다. 어릴 때보다 둔해져서인지, 절벽 가까워 보이는 바위를 지날 때는 몸이 벌벌 떨린다. 떨어져 죽을 것만 같다. 혹은 나와 친한 사람들을 내가 좋아하는 산의 공간에 소개해주고 함께 가 보고 나니, 깨달은 것이다. 산은 나만의 소중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아무나 오가는 곳이다. 그렇게 산의 나만의 것이라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친한 사람들과 오를 때 산이 싫기는커녕 더 반가웠건만, 이제는 산이 그저 자연 속에 돌덩이로 가득한 힘든 오르막이 되었다.
결국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다. 산은 힘이 드는 곳으로 바뀌었다. 덥고 모기가 있고,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길. 예전에는 천연색으로 빛나던 하늘과 한적한 구름, 그리고 흔들리는 나뭇잎까지 바람의 소리를 떠안았는데. 자연의 말을 언제부터 잊었는지.
점점 때가 묻듯이 현실이 나를 뒤덮었다. 때의 이름은 사회였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연에서 쉬던 건 잊어버렸다. 사람들하고 어울릴수록, 자연은 온데간데 없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은 듣고 싶다. 집에 있어도 들리는 까치 소리가 더 자욱하게 퍼지는 산에서, 그 남색 꼬리를 보고 까치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싶다. 저벅 저벅 걸어가면서 풍기는 풀의 냄새도 맡고 싶다. 아카시아 향의 이름을 알던 때도, 진달래꽃을 함박 입에 집어넣고 나는 습습한 기운도, 무당벌레 움직임까지 그리워진다.
산은 언제든 기다렸을 텐데, 아니 기다림 없이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생각이 없이 흐름에 맡기고 그 자리를 지켰을 텐데. 나는 상념이 많아 산을 그리워하는 자리마저 걱정으로 채워 버리고 어느새 현실 속에서 꿈만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