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풀잎은 땅을 뒤덮고, 어제 저녁부터 비 소식이 있더니 날이 흐렸다. 몇 방울 떨어질까 말까, 하였다. 하늘도 숨을 고르나 보다. 회색 실타래로 뒤덮인 얼굴을 하고, 멀뚱멀뚱 내려다본다. 언제나 빗방울을 터뜨릴까. 나는 엄마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 나무가 느티나무인가, 미루나무인가?”
엄마는 가로수를 보고서는 기쁘게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에 오래 전부터 있던 나무라고,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라 하셨다. 당산나무라도 되는 양, 많은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가로수가 눈에 들어오셨나 보다. 엄마는 지나치는 것들 사이에서 소중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그러고는 조금 더 걷다가 나에게 물어보셨다.
“봄에 꽃이 많이 필까, 여름에 꽃이 많이 필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봄에 많이 피는 것 같았다. 봄에 꽃을 본 기억은 많은데, 지금과 같은 여름에는 별로 본 기억이 없었다. 이렇게 푸른 잎사귀만 가득한데..
“봄에 많이 피지요.”
“아니야, 여름에 많이 핀단다. 정원을 가꾸는 친구가 있어. 여름에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꽃이 핀다고 하네.”
“그래요?”
“그래. 그런데 봄인 줄 알았지, 그건 왜 그럴까?”
“아, 겨울을 지나서요?”
“그래. 겨울을 지나서 봄에 꽃이 반가우니까 많이 보이는 거야. 여름에는 꽃이 더 많이 피는데도 눈에 잘 안 들어와서 그래. 신기하지.”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봄꽃이 그렇게 느껴져서 신기하구나,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들어갈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니 엄마 눈에 이제 나무도 보이고 꽃도 들어오고 하시나 보다. 그간 바쁘고 여유가 없게 삶을 살아내기만 하시느라, 꽃과 나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셨다. 어릴 때는 낙엽 줍기도 같이 하고, 쑥도 뜯고, 화전도 만들었는데. 언젠가 또 낡은 낙엽 하나를 주워오신 적이 있기는 하구나. 그렇게 엄마는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을 좋아하셨다. 오랫동안 이런 말을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오늘은 엄마 눈에 나무와 꽃이 들어오신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이 엄마에게도 눈에 꽃이 담기는 시간인가 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나보다.
겨울은 몇 개월만 버티면 지난다. 그런데 엄마의 겨울은 10년은 넘은 것 같다. 내가 아프고 나서 자꾸만 마음을 졸이셨다. 나에게 무섭고 엄하게도 하시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얼마나 나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싶으셨을까. 내가 아팠던 건 엄마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다. 그저 병에 걸린 것뿐이었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자꾸 생각해보아도, 사실 그런 것보다 이제 더 중요한 게 뭔지 안다. 아프게 되어서, 더 빨리 성숙해진 것. 아프게 되어서, 더 많은 삶을 알게 된 것. 아프게 되어서, 아프지 않은 삶에 감사하게 된 것.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겨울이 지나고 있나보다. 건강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숨과 같은 거라서 잃기 전까지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도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견뎌내면, 이런 시절도 오는구나 싶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 언제나 함께 했을지도 모르는 시절이 보이는 것이다.
봄과 여름이 오면 꽃이 피는데, 눈에 보이지 않았다. 꽃이 피어도 보이지를 않고, 겨울 추위에 서러운 눈만 가득했다. 어둠이 걷히고 눈에 들어오는 꽃과 나무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내 사람다운 감정과 함께 시리도록 아름답다. 눈에 가득 담겨서 행복하고, 이런 게 사람 사는 거구나 싶다. 마음만 조금 내었다면 언제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눈을 떠도 보지 못하는 게 있는 거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게 있는 거다. 이제는 마음의 눈을 뜨고, 매일 삶의 꽃을 발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