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학교 폭력, 왕따 문제는 교육 전공을 한 나에게 계속해서 화두였다. 학교 폭력은 왜 생기며 따돌림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덮어둔지 오래였으나 잊지는 않았다. 교육 현장에 와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 사회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에 대해 나는 스스로 고찰을 해보았다. 도대체 왜 싫어하는 것이며, 괴롭히는 건 왜 하는 건지. 물론 표면적으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오가지는 않지만, 따돌림은 이뤄지고 있으며 조롱과 비웃음도 오간다. 그 아이의 성격을 분석하고 난 후에 해결점을 모색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을 씀에 있어 편파적이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은 인정하고, 비판도 달게 받겠다.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 집안, 부모님, 돈 그리고 자신의 성적, 할 수 있는 모든 걸 자랑하려고 한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주위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다른 친구에게 눈짓을 보낸다. 그 아이는 종교가 있는 아이에게 종교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실제 물리적으로 부딪친 적이 있다. 그 아이와 부딪친 다른 아이는 주위에서 평판이 좋고, 인정받으며 차분하다는 평가를 듣는 아이이다. 사실 선생님 입장에서도 그 아이가 눈치없이 행동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괴롭다고 호소한다. 아이들은 실제로 그 아이를 싫어하지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위압을 주는 아이는 없다. 다른 아이들은 사회성이 좋아서 함께 다니고, 그 아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아이는 학교폭력을 당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 곁에 오지 않고, 아이도 다른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아이는 가끔 소리를 지르고 문을 쾅 닫으며 분노를 표현한다. 선생님에게 찾아와 조롱을 당했으니 조롱한 아이의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라는 말을 한다.
여기까지가 상황을 최대한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이 아이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인정받고 싶어한다. 감정도 신체도 연약하지만 그걸 감추기 위해서 분노와 화를 분출하고, 다른 아이들은 당황한다. 당연히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 아이는 이걸 자처하지 않았다. 이 아이의 마음은 친구가 많았으면 싶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싶고, 잘 지내고 싶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조롱 당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게 이 아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이 아이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아이가 “사회를 모른다” 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치중해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이 아이가 불편한 것이다. 청소년기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린 시절처럼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떼를 쓰고 감정을 분출하는 행동을 계속하기 때문에 주위 아이들은 이 아이를 떨떠름하게 생각한다. 그 중 힘이 센 아이는 이 아이를 조롱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천방지축으로 구는 이 아이를 공포로라도 억제하려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다. 이 행동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도를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는, 힘이 강하다. 힘이 강하다는 것은 자체적인 규칙이 있다는 뜻이다. 그 규칙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며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러한 규칙을 알고 있다.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의도를 관철시키려면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 치밀하게 연구하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고, 서로와 상호작용하고 함께 지낸다. 이런 규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도태되면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감정으로 구성된 방에 빠져 산다. 자신의 우울, 분노, 격정, 슬픔에 휩싸이느라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느라 더 예의없게 행동하고, 사회의 룰을 자신도 모르게 파괴하고 다닌다. 룰을 알고 체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런 자는 이방인이며, 축출하는 게 편한 존재이다. 아이들 사회에서 왕따는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며, 암묵적인 따돌림은 계속된다. 여기서 언어와 물리적 폭력이 가해지면 실제 학교 폭력으로 번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치밀하고 똑똑하다.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표정과 눈짓만으로도 읽어내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도 구분할 줄 알고, 처신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이건 고도의 사회적인 지능과 연결된다. 사회적 지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아이들 사이에서 중심에 있는 사람은 이런 지능이 발달한 아이다. 사회적 지능은 공부를 잘 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왜냐하면 공부는 언어로 된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며, 이 능력이 높다고 대인관계 속에서 눈치를 살피는 능력도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적다.
따라서 아이들 사이에서 도태되고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사회적 지능이 낮은 아이이다. 어른들 사회보다 청소년기에 왕따가 더 문제시 되는 이유는, 아이들은 어른보다 인내심이 적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힘도 적다. 아이들은 완전히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지능이 낮고 부족한 사람을 포용할 생각이 거의 없다. 스스로가 우월해지고 그걸로 인정받는 게 대부분의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갖는 욕구이기에, 그리고 우리 교육제도는 줄세우기 식이기 때문에 부족하고 도태되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또 어른의 경우는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삶을 영위하기에 아이들 때만큼 사회적으로 어울릴 필요가 적기도 하다. 그리고 학교나 공동 공간에 모여서 함께 있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 사회에서 도태되는 경우에는 고립의 길로 접어든다. 실은 이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청소년기에 사회성을 기르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능력을 함양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문제 없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지만, 청소년기에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가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인 지능은 어떻게 발달시켜야 하는가? 스스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부터가 첫 시작이다. 대부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위에서 하는 말을 흘려듣기 때문에, 귀만 열어놓아도 첫 시작이 좋다. 한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하거나, 말만 하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으며, 적절하게 소통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대화를 하고 함께 지내면서 표정을 읽는 연습을 하고, 저의를 파악해가는 게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는 스스로의 행동도 가다듬어야 한다. 자신을 관찰하며 의도를 구성하고 계획성 있는 사고를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 분출을 하며 살지 않고, 의도적으로 말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 자신의 말을 검열하고 어떻게 들릴지 파장과 영향을 고려해보는 게 필요하다. 순간의 감정에 취해 말을 마구잡이로 내뱉는 경향이 있다면 차라리 입을 무겁게 하고 상황에 적절한 말부터 연습해보는 게 좋다. 그리고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즐겁게 할 일에 몰입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으로서 무게감이 생긴다. 이렇게 중심이 잡히고 나면, 자신감 있게 사회 속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