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링글스와 녹차

2026年 2月 20日 금요일

by 김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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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쉬어도 전혀 쉬지 않은 것처럼 몸이 몹시 고단하고 피곤할 때가 있다.

내 휴식법이 잘못된 걸까나?



평소처럼 나는

새벽에 일어나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나서

거실을 뒹굴며 우리 집 강아지들과 놀다가 애니메이션도 잔뜩 보고 만화책을 뒤적거렸다. 그럼 시간은 언제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눈앞이 침침하고 허리는 할머니 등처럼 굽어 찌릿한 통증을 호소한다. 머릿속은 빈 깡통 소리만 요란하니, 쓸모없는 잡생각들만 무겁게 맴돌았다. "아... 피곤하다~"어쩐 일인지, 되려 쉬는 날이 일하던 날보다 더 고단해진다.


일을 할 때가 더 활기차지 않았니?



문득 거울 앞에 섰다.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거기 다 죽어가는 댁은 뉘신지?'

다크서클이 얼굴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 세상에.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니다.

푸석푸석, 머리칼도 맥없이 흐트러져있고, 어쩜 몸도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고단함과 노곤한 갈증만 같은 피로가 잔뜩 쌓였을 때는 잠을 빨리 이루려 해도 쉽지 않다.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리고, 헛헛한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와 금세 우울을 만든다. 게다가 윗집에서 쿵쾅거리는 층간소음으로 괴롭다면 머릿속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전쟁통에 어찌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결국 침대 위를 몹쓸모양으로 헤집어놓은 뒤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병째로 벌컥벌컥 마셨다. 어느 로마 시대의 옛 영화 같은 로망스가 아니다. 그저 아저씨 같은 내 모습이 참으로 처연하게 느껴졌다. 겨우 와인 취기에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곤히 잠들어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오늘로 순간이동해 버린 듯하다.

그러나 폭잠을 잔 덕분인지 평소보다 몸이 한결 가벼웠다.


그렇다. 오늘은 평소처럼

휴일을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므로 우선 메모지에 적었다.

영상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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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미뤄둔 본업 업무를 순조롭게 마쳤다.


그리곤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크고 작은 화분들도 베란다로 옮겨 물을 듬뿍 주는 일을 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책장 앞으로 다가가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소설이었다.



가장 편안한 자리로 다가가 누웠다. 그리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봄이 오려는지 따스한 오후 햇살이 풋풋한 생귤 내음을 뿜어내는 듯했다. 맛을 보지 않아도 그 감촉과 빛깔은 영락없는 상큼하고 달달한 생귤과 다름없었다.


그런 오후 햇살을 만끽하며 소설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와중 핸드폰 메시지 알림에 깜짝 놀라고, 우리 집 강아지의 애교에 베시시 웃어버렸다.


에잇, 이래서는 집중이 안 돼.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나자 이번에는 어쩐지 입이 심심해졌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대화 사이로 내 부엌 찬장에 넣어둔 프링글스가 떠올랐다. 그들의 대화에 나의 독백이 이어졌다.



"아무렴, 맛있지 맛있었지.
프링글스는 치즈가 존맛이지.."




이런... 프링글스가 머릿속을 점령했다. 벌떡 일어나 뭔가 홀린 듯 과자를 집어 온다. 아차, 목마름을 방지하려고 커피... 아니, 녹차를 마실까나. 최소한의 양심을 위해서.



물을 끓여 녹차 티백을 덩그러니 담갔다. 그리고 촐랑거리는 발걸음을 앞세워 다시 책을 펼쳤다.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다. 훨씬 더 이야기에 집중이 잘 된다. 입은 짭조름하고, 너무 과하다 싶을 때면 밍밍한 녹차가 입을 헹궈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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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앉은자리에서

프링글스 한 통을 다 헤치워버렸다.

그리고 식은 녹차가 담긴 찻잔을 마저 비웠다.



씁쓸하게도 이것이 나의 현실이다.

피식 얄궂은 웃음이 나왔다.



오늘 결국 즐거이 책을 읽었고,

영상을 보지 않던 휴식을 지켰다.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뭔가 슴슴한 하루였다.

자극적인 것은 프링글스의 강렬한 맛뿐.


소리를 켜지 않은 집안에는 오로지 졸졸 흐르는 작은 물 분수대의 물소리만 들렸다. 가끔 우리 집 강아지가 또각또각 걸을 때, 발톱이 마룻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처럼 무해한 하루

처음에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에 향긋한 녹차만큼이나 느긋한 여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슴슴하고 식어 맹탕과 다를 바가 없어 재미는 금세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이런 하루를 보내고 나니

눈은 편안했고,

마음은 오후 햇살처럼 잔잔하게 일렁였다.



이런 단조로운 휴식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졌다.


프링글스는 당분간 가끔씩만 먹기로 했다.

멀리하기에는 그 짜릿함을 포기할 수 없고,

설령 내 진짜 취향은 녹차의 슴슴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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