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年 3月 11日 수요일
모처럼 다녀온 목욕탕 일정 후
달콤한 낮잠까지 자고 나면,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지난 피로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완벽하게 컨디션 회복한 상태이니.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천하무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간만에 꺼내 입은 롱스커트로 집안 곳곳 살랑이 다녔다.
그리고 아침에 돌보지 못한 화초에 물을 분무해 주었다.
이어 꼬질꼬질한 강아지들을 바라보다가 산책에 나선다.
살짝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적당히 상쾌했고,
오후의 햇빛은 따스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흥분한 나머지
오히려 나를 질질 끌고 다녔다.
마치 그들이 나를 산책시키는 것처럼.
그렇게 한참 동안 기세 좋게 숲 속 산책로를 휘젓고 나면 내게 다가와 안겼다. 후후, 집에 가자는 거구만.
항상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들이 먼저 욕실로 들어간다.
그러면 나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따라 들었다.
몽글몽글 애견 샴푸로
아이들의 때까지 깨끗이 씻겨냈다.
이로써 오늘 하려고 했던 할 일이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이후 책상에 앉아
뭔가 오늘의 이야기를 잔뜩 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체력 소진되어 버린 탓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강아지들의 흔적을 겨우 치우고 나서 조그마한 태블릿을 찾는다.
게다가 거대 귤쿠션을 꺼내 놓으면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한 최고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태블릿으로 틀었다.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을 보기로 했다.
휴양지가 아닌 시골 농가에서
휴가를 보내던 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잠시 머물렀던 시골 이야기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추억이 현실과 교차하며 두 가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대체로 큰 사건 없이 단조로운 시골에서의 날들과 수많은 감정이 오갔던 순간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
나도 내 어린 시절이 덩달아 생각이 났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떤 아이였을까. 나는...
당시의 내게 궁금해졌다.
"근데... 나는
그때의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 꼬맹이이던 시절에는
그저 부자가 되는 것만이 다였을지도.
아니야,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
뭐든 훨씬 근사한 사람이 되길 꿈꿨을 거야.
적어도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장래 희망이라는 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소망하던 모든 것을 이루어 낸 것이 어른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허나 수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만은 않았잖아.
그중에는 이루어 낸 것도 분명 있었네.
아... 또 실패한 것도 잔뜩이려나.
한창 자라고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러 보니 말이야.
꿈을 이룬다는 것은
여전히 저 멀리 하늘의 별만큼이나 멀고,
다가서기에는 험준하게 여겨지기만 하다.
그러니 말이야,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이루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새로운 세계를 꿈꾸기를
희망하는 걸 보면 말이다.
또한 무언가를 이루었다 해도
그것이 결코 완성이 아니었다.
그렇게 앞으로 살아갈 날을 내다보니까
더욱 까마득해졌다.
하아~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생각에 잠기며 낮에 먹고 남은 김밥을 모조리 해치웠다. 덩달아 치킨까지 배달시켜 한아름 뜯어먹던 나는 묵묵히 애니 속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계속 집중했다.
그녀의 시골 생활이 끝나고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멈추었다.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과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무엇을 깨닫고자 했을까.
굉장히 사랑스러운 만화 속에서
귀엽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마음에 쿡 박혔다.
괜스레 먹먹해진 기분에 오늘의 현재를 돌아본다.
어린 내가 꿈꾸던 근사한 어른이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주 조금이나마 어린 시절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자,
작은 결심 하나를 세우고 하루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