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는 척하는 나의 기록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의 노후는 나의 남편이었다.
많이 벌지는 못해도
적당히 생활에 도움을 주며
가정과 가족에 더 신경 쓰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적어도 키운 공으로
남편과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5년 동안의 충실한 전업주부의 삶은
가장의 무게에 눌린 지금 나의 생활에
매일매일 아쉬움과 후회만 남겼고
겉으로는
열심히 살 거야
남은 가족을 위해 뭐든지 할 거야
늦지 않았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말들은 하루를 버티기 위한 주문에 더 가까웠고
난 이혼녀지만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더 좋아!
남편 없으니 얼마나 편한데?
라며 내가 먼저 나를 설득하고 있다.
나의 사회적 체면을 위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의 일부였다.
뭐가 좋아...
50의 가까운 나이에
평생 같이 할 배우자에게 배신당했으며
한부모가정이라는 겪지 않아도 될 타이틀을
아이들에게 줬는데.
좋긴 뭐가 좋아.
나에게 별다른 관심도 없던 타인들까지도
“요즘 이혼이 뭐 별거야?. 주변에 엄청 많더라.”라며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색안경도 쓰지 않는,
생각이 트인 사람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마지막에는 정말 묻고 싶었던 말들을 꺼낸다
"근데 왜 이혼했어?"
이런 말들에 나 역시 쿨한 척
이미 수십 번쯤 연습해 둔
진짜 이유를 비켜간 이야기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아야 하는
무거웠던 나의 이야기는
그들의 안주거리와
가벼운 뒷담화가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속이고
남들 시선에 부딪히고
이런 것들이 좋을 리가 없다.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머릿속에는 오직 돈 생각뿐이고
이 나이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든다.
꿈이나 자아실현 같은 말들은
지금의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지고,
선택의 기준은 단 하나,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글 쓰는 이 공간에서조차
괜찮다, 잘하고 있다는 말로
진짜 마음을 비켜간 문장들을 고르고 있다.
그래야 남들이 보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혼 후 서사가 완성되어 간다고 생각했으니까.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그 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남아있는 가족들을 책임지고
나의 노후까지 준비하려니
모든 게 버거워 숨이 막힌다.
난 아직도, 하나도 괜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