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과 다양성에 대하여
정욕(正欲) - 바른 욕망
성욕(性慾) - 성적인 욕망
정욕은 과잉과 부족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치면 더 이상 바른 욕망이 될 수 없다.
성욕 또한 과잉과 부족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사회에서 정해진 올바른 성욕을 따르지 않으면 삶이 뒤틀려 버린다.
히로키는 '바름'과 '정의' '상식'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의 궤적에서 벗어난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들을 옹호하는 아내와 사이가 틀어진다. 얼핏 보면 그의 주장이 지극히 정상적이며 옳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기준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그가 '정욕'의 과잉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욕이 과하면 올바르게 살아가는 거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바른 욕망'이라는 것이 정말 올바르다고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정욕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 아니었던가? 과거의 정욕이 지금은 아닌 경우도 많고 현재의 정욕이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절대적인 기준을 갖춘 정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잉과 부족 사이에서 흔들리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쓰기와 요시미치 그리고 다이야는 우리가 말하는 '존중해야 하는 다양성'에 포함될 수 없는. 물을 통해 성욕을 느끼는 이상 성욕자들이다. 이들의 성욕은 타인에게 고통을 주거나 공격성을 보이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성욕이 아니기 때문에 움츠러들고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잘못된 성욕을 가진 이들은 정욕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인식해야 되는 것일까? 그런 뒤 사회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배척해야 될까?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이라도 최소한의 이유. 그들이 그런 욕망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수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으로서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어렴풋이 나는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분노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욕망은 다양하다. 그중 저자는 정욕과 성욕을 통해 '다양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고 생각했다.(내가 알고 있기로 일본에서 정욕과 성욕은 발음이 같으며 '(正) 바를 정'을 사용하는 '정욕(正欲)' 이라는 단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가 제목을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급하게 다양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이전에 '인간의 욕망'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다양성에 대한 궁금증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