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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l 15. 2024

한국 병합 - 모리 마유코

혼란스러웠던 시대의 고종과 대한제국의 궤적


단상(斷想)

2024.07.10. 동네 투썸플레이스에서.  

대한제국 성립 이후 러일전쟁이 개전하기까지 1897년부터 1904년의 시기, 한반도의 외국 세력은 일본과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었던 국가는 없었다. 그 때문에 대한 제국은 각국 세력의 균형을 내다보면서 독자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했다. 대한 제국 성립 직후에는 입헌 군주제로의 방향도 가능성이 있었다. (중략) 고종은 전제 국가를 지향하고 있었다.(p.168)


단상.(1)(斷想)  

대한 제국의 성립에 대한 자료를 읽다 보면 항상 아쉽고 리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고종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시대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고 권력욕을 포기하지 못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단상.(2)(斷想)  

 저자는 말한다. 대한제국 성립 이후 러일전쟁이 개전하기까지 한반도의 외국 세력은 일본과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었던 국가는 없었기 때문에 대한 제국은 각국 세력의 균형을 내다보면서 독자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했다고 말이다. 예전에 근현대사 부분을 공부할 때 러일전쟁, 한일의정서, 포츠머스 조약을 중심으로 공부를 해서 그런지 러일전쟁 개전하기 전의 시기는 잘 모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 더 자료를 찾아보려고 한다.  




서평



# 01. 고종에 대하여.


19세기 조선은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런 시기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었다. 그는 온갖 부정부패의 중심인 비변사를 혁파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어린 고종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성인이 된 고종은 친정(親政)을 하며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대립하였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물러나게 되고 고종은 진정한 왕이 된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와 오랜 시간 동안 망가져온 조선이 놓여있었다.


고종이 친정(親政)을 한 뒤에도 조선의 사정은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외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실력행사를 하며 조선을 압박했다. 특히 일본은 조선의 모든 분야에 간섭하며 조선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노력했다.


고종은 이를 이용하기 위해 노력도 했고 동시에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그러던 중 고종이 일본을 증오하고 불신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을미사변이다. 그는 을미사변으로 인해 아내를 잃고 본인은 두려움에 떨며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쳤다. 아마도 고종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에 많이 의지하게 된다.


이후 그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개혁, 개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민권 운동 및 개혁적인 활동을 하는 독립협회를 지지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모두 빼앗아간다고 생각하여 해산시켜 버린 뒤 전제군주제 국가인 대한 제국을 건국한다.


하지만 세상은 고종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일본의 강압에 의해 아들 순종에게 왕위를 넘긴다.


고종은 잘 알고 있었다. 대한 제국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개방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방법을 고집했고 자신의 권력욕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 결국 대한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고 있어도 방법이 잘못된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더욱이 자신의 욕망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고 현재보다 더 나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 02. 일진회 등 친일 단체에 대하여.


책을 읽다 보면 익숙한 친일 단체들이 언급된다. 특히 '일진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한국사를 공부할 때 일진회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단체로 기억한다. 단순히 악행을 저지른 친일 단체 정도로만 알고 넘어갔다.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없었고 매국노 집단이었을 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일진회는 적극적으로 일본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대한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한다. 다만 구성원들 사이의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용구는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이중제국과 같은 <정치적 합방 국가>(정합방)을 구상하여 대한 제국의 자율적인 내정을 희망했다고 한다. 반면 송병준은 황제의 통치권 자체를 천황에게 양도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친일 단체인 것은 확실하나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친일 행위가 매국이 아닌 진정으로 대한 제국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또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잘못된 방법을 활용하다 결국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뒤 강제해산을 당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들 아닌가?



# 03.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생각.


이토는 초대 통감으로 대한 제국에 머물며 순종의 남북 순행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는 "통감부에 의한 대한 제국의 보호국화는 한국인을 위한 정책으로 한국인에게 감사를 받을 것(p.299)"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각지의 의병 활동과 민중의 항일 행동을 보고 병합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꿨다(p.299)"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보호국화' 자체도 식민지 체계 중 하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외교권을 박탈하고 보호국화를 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사람이 존재할까? 보호국 화가 한국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다.


그에 대한 자료를 조금 더 찾아봤다. 그가 초대 통감이 되었을 때, 일본에서 그의 영향력은 다른 파벌에게 밀려나 한일병합을 반대할 힘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상황이었다.


즉 대한 제국의 의병 활동과 항일 행동을 보고 병합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한일병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는 한일병합을 반대할 힘과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토는 한일병합을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급진적인 병합을 반대했을 뿐이다. 결코 그는 한국인을 위하는 친한파가 아니었다. 그는 온건한 제국주의자일 뿐이었다.



# 04. 마무리하며.


이 책은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구매하게 되었다. 구매를 한 뒤 책의 목차를 확인하면서 한국병합과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인 학자의 시각이 궁금하면서도 혹시 심각하게 왜곡된 기록이 있지 않을까라는 불안함이 공존했다.


다행히 책의 내용에 언급되는 역사적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대부분 일치하였다. 또한 감정적인 요소 없이 최대한 한, 일 양측의 사료(史料)를 기반으로 작성한 대한 제국에 대한 일본인의 시각을 알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고 더 나아가 종장에서 한국 병합을 둘러싼 논쟁을 역사학과 국제법의 시각에서 서술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 책은 대한 제국의 역사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일본인의 시각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책 말미의 저자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사실에 대한 이해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이 성립한다. 다만 그와 같은 가운데서도 대한 제국의 사료에서 추출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지배에 합의하지 않았고 환영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편 작은 부분까지 순차적으로 서술되는 일본 사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고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병합이 아니었을까?"(p.35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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