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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Oct 18. 2024

헤스페리데스 베이커리.

2화.

“하아.. 하아.. 아.. 죽겠다.” 있는 힘껏 달려 겨우 정각에 도착한 서현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베이커리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힘 있게 인사했다. 하지만 모두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각자의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일을 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탈의실로 향하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하고 쳤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서현 님. 오늘도 늦었군요.”


정장과 비슷한 모양의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네모난 테의 안경을 쓴 족제비 지구인 현철이 눈을 내리깔으며 그녀에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각에 출근 한 서현은 자신이 지각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두 눈으로 현철을 보며 “저는 지각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베이커리의 정직원이 아닌 그녀는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일찍 출근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서현의 사과를 받은 현철은 입꼬리를 올린 채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일을 하니까 정직원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한 뒤 그녀를 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서현 님. 다양한 고객님들이 방문하는 베이커리에 출근할 때는 외모를 단정히 하고 오세요. 좀.. 옷도 깨끗이 입고 화장도 좀 하고.. 쯧.” 현철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갔다. “하긴.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서 거주하는데 어쩔 수 없죠. 이해합니다.” 그는 한숨을 쉰 뒤 말을 이어 갔다. “생각을 좀 하면서 다니세요. 정직원이 되려면 자신에게 투자를 해야 돼요.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노력하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그가 말하는 동안 서현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헤스페리데스 베이커리는 중심부에 위치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베이커리 및 카페이다. 베이커리는 지상 3층 그리고 지하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식료품 저장고인 지하 2층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극소수의 경영진이 이용하는 3층과 곡선과 부드러움이 강조된 구 인류의 오래전 로코코 양식과 비슷하게 꾸며진 부유한 두발 지구인들을 위한 2층 그리고 주변부에 살거나 빈곤한 지구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1층 마지막으로 네발 지구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지하 1층이 존재했다.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서현은 1층과 지하 1층을 오가며 일을 했다. 다른 수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부유한 지구인들이 이용하는 2층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구인류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곳을 이용하는 그들은 순수함을 원했고 수인, 네발 지구인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아 했다. 그들이 말하는 순수함을 갖지 못한 이들은 2층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구인류의 모습을 가진 두발 지구인들 중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외모가 빼어나거나, 부유층의 인맥을 원하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서현은 베이커리의 정직원이 되고 일을 열심히 한다면 2층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항상 그녀는 마음속에 긍정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현 님. 서현 님!”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던 서현의 모습에 짜증이 난 현철은 소리를 질렀다. “네! 매니저님.” 그녀는 빨리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현철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렇게 바보처럼 멍하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아! 서현 님은 시키는 일만 하시니까 미리 지시할게요.” 그는 서현을 흘겨보며 빈정거렸다. “준비되면 가장 먼저 물걸레로 바닥 청소를 하세요. 다하면 보고 하세요.” 그는 서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1층 카운터로 향했다. 서현은 아무런 말 없이 그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휴.. 오늘도 말이 많네. 진짜 짜증 나.” 서현은 한숨을 쉬며 몸을 움직였다. “욕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빨리 일이나 하자.” 그녀는 1층 끝 쪽에 위치한 직원 전용 탈의실로 향했다. 직원 탈의실은 2층 VIP실과 비슷하게 곡선과 부드러움이 강조되 아름다웠다. 이는 “베이커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해야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라는 철학을 가진 베이커리 창립자 A의 믿음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하지만 지구인이 모여드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차별과 계급이 생겨났고 탈의실 안에서도 차별은 존재했다.


2층에서 일하는 지구인들은 캐비닛과 편의 시설을 이용하기 편한 구역을 이용했고 지하 1층과 1층에서 근무하는 지구인들은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힘든 어둡고 침침한 구역을 이용했다. 얼핏 보면 직원 탈의실 전체에 반짝이는 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도 어둠은 존재했다.


서현은 빛나는 중앙 홀을 지나 어두운 구역으로 향했다. 따뜻한 빛이 내리는 구역에는 이제 막 출근한 구인류 지구인들이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서현은 자신의 구역으로 향하며 그들의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곧이어 그들의 모습은 사라져갔고 천장에서 쏟아지던 빛이 약해지며 컴컴한 어둠이 그녀를 반겼다.


그녀와 같은 구역을 이용하는 지구인들은 이미 옷과 개인 물건 들을 어질러 둔 채 옷을 갈아입고 일을 하러 간 상태였다. 그녀는 본인 캐비닛 앞에 어질러져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옷가지와 물건들을 있는 힘껏 밀쳐버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 진짜! 도대체 왜 이렇게 남의 자리 앞에 쌓아두는 거야!” 그녀는 캐비닛 안쪽에 달려있는 작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비참함과 초라함을 느꼈다.


“딩동. 딩동.” 그녀가 유니폼을 입고 핀 모양의 업무용 알람을 켜자 짜증이 섞인 날카로운 현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현 님. 아직도 일을 시작하지 않았나요?” 서현은 빠르게 캐비닛을 닫고 알람핀을 블라우스에 끼며 말했다. “매니저님. 지금 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던 현철은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겁니까! 빨리 나오세요!”


“뚝”


알람에서 들리던 신경질적인 그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힘이 빠진 서현은 어지럽게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발로 밀어 길을 만들며 1층으로 이동했고 여전히 따뜻한 빛이 쏟아지는 중앙 홀에는 웃음과 여유가 넘쳐났다. 그녀는 그곳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상은 불공평해.” 서현은 낮은 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1층으로 뛰어갔다.


“줄을 서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


이미 1층 홀에 있는 서현의 동료들은 무질서하게 밀려들어오는 지구인들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1층은 무질서하고 시끌벅적했다. 일부 지구인들은 의자에 앉지 않고 작은 컵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잔을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 둔 뒤 밖으로 나가 버렸고 이들에 비해 조금 여유가 있는 듯한 지구인들은 의자에 앉아 소식지를 읽으며 음료를 마셨다. 이미 지구인으로 꽉 찬 1층은 청소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있는 서현은 현철의 눈에 띄지 않도록 살금살금 지하 1층으로 발걸음 했다.


“서현 씨. 어디 있어요?” 밀려오는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이 없는 현철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서현을 찾았다.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은 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 1층으로 뛰었다. “서현 씨! 서현! 아이씨!” 도망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한 현철은 짜증과 화가 난 목소리로 서현에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점점 멀어졌다.


“후우. 큰일 날 뻔했다.” 서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신 얼굴에서 촉촉하게 솟아난 땀을 닦았다. 서현은 손님이 적은 지하 1층의 청소를 시작했다. 그곳은 지상 1층과 다르게 의자와 테이블이 없고 간단한 음료를 만들 수 있는 공간과 계산대가 있을 뿐이다. 구석 바닥에는 저렴한 지푸라기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고 음료를 만들 수 있는바의 근처와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가까운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있었다. 이곳은 주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거나 네발 지구인들이 이용했지만 베이커리는 그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능력을 나누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먼저 서현은 부드러운 카펫의 먼지를 털어낸 뒤 진흙과 각종 오물이 묻어있는 구석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구석 바닥에 묻은 진흙과 오물은 악취를 풍기며 바닥에 말라붙었고 준비한 대걸레를 이용하여 힘을 줘 박박 문질렀다.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고 뽀송뽀송하던 털 들은 축축해졌고 입고 있던 유니폼도 땀에 흠뻑 젖어 축축했다.


“아. 힘들다. 몸 좀 풀어야지.”


서현은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린 순간  알람 핀에서 “딩동. 딩동.”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짧게 탄식을 하며 버튼을 눌렀다. “네. 서현입니다.” 알람 핀의 작은 스피커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삐익’ 소리와 함께 크게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아까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다른 곳으로 도망갑니까?”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현철에게 짜증이 났지만 서현은 숨을 고르며 차분히 대답하려 노력했다. “매니저님. 저는 고의적으로 손님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1층에 손님들이 너무 많이 계셔서 먼저 지하 1층을 청소를 했습니다.” 서현은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말했지만 현철은 이미 분노하여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욕을 해댔다.


“그런 핑계는 필요 없어요! 당장 올라와서 다른 사람들을 보조하세요!”


“매니저님 아직 청소가..”


“토 달지 말고 어서 오라고!”


현철은 그녀에게 거칠게 반말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서현은 작은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현철은 서현의 말을 듣지 않고 알람을 껐다. 그녀는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임시직으로 일하는 이상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임시직에서 정직원으로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담당 매니저의 추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에 힘이 빠졌지만 정직원이 되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억지로 웃었다.


“다 거쳐야 하는 경험이야! 웃자. 웃어.” 그녀는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하며 1층으로 올라갔다.


“거기! 잡담하지 말고 케이블 위로 의자를 올려!” 운동을 통해 다져진 근육을 가진 코뿔소 지구인 정직은 일을 하지 않고 수다를 떨고 있는 원숭이 지구인들에게 소리쳤다.


“거기! 잡담하지 말고 케이블 위로 의자를 올려! 우끼끼”


“거기! 잡담하지 말고 케이블 위로 의자를 올려! 우끼끼”


하지만 그들은 팔짱을 끼고 부자연스럽게 어깨를 펴며 정직을 흉내 내며 조롱했다. 멈추지 않고 일을 하는 정직은 거칠게 숨을 쉬며 그들을 노려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조롱과 장난은 더욱 심해졌다. “원숭이 새끼들이! 장난치지 말고 일을 하란 말이야!” 결국 그는 소리를 지르며 그들과 말싸움을 시작했다.


홀 중앙 정면에 위치한 바 형태의 공간에서는 고양이 수인들이 컵과 그릇을 씻고 음료의 재료를 준비하며 다음 손님들을 기다렸다. 바 앞의 고급스러운 테이블에서는 서빙과 안내를 담당하는 여우 지구인들이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지워진 화장을 고쳤다. 서현은 준비한 빗자루를 들고 바닥의 오물과 먼지를 쓸기 시작했다.


“서현아!”


청소를 하고 있는 서현의 귀에 입사 동기 은정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베이커리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은정과의 관계였다. “아. 진짜. 죽겠다.” 서현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은정에게 투덜거렸다. “또 현철이 뭐라고 했어? 하여튼 신경질적으로 생겨서. 진짜. 생긴 대로 한다니까?” 은정은 다정하게 서현과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휴. 그래도 우리가 참아야겠지? 정직원이 되기 위해서.” 서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응. 그래야지.” 은정은 서현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청소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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