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PM 08시에서 10시가 좋아요.
며칠 동안 날씨가 추워졌다. 고개를 숙인 채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빠른 걸음으로 퇴근하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언제 산책을 했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날씨와 상관없이 자주 산책하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발생한 뒤 날씨가 추우면 산책하지 않았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다가 예전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 떠올랐다. ‘밤을 걷는 밤’ 글쓴이는 유희열인데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그는 어떤 느낌으로 산책을 할까 궁금했다.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조용한 곳을 혼자 걸으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때로는 소중한 사람들과 북적북적한 곳에서 즐겁게 걷는다. 밝은 낮에도 어두운 밤에도. 그중에서도 밤 8시~10시 사이에 걷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너무 어두운 밤도 아니고 너무 밝은 오후도 아닌 그 시간이 좋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 행복하게 웃으며 걷고 있는 연인들, 즐겁게 큰 소리로 웃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산책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발산하는 행복 때문이라 생각한다. 행복과 웃음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울의 여러 곳을 다니며 자신의 추억을 얘기한다. 그의 추억을 읽다 보니 내 추억도 떠올랐다. 20대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장소였는데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는 피하고 싶은 장소도 있고 반대로 20대에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매우 좋아하는 장소가 된 곳도 있다. 장소라는 것은 나이를 비롯하여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바뀐다.
20대에는 활기차고 시끄러운 곳에 자주 갔다. 그런 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삶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친구들과 어울리더라도 이전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만나고 간혹 활기 넘치는 곳에서 만나게 되더라도 오래 있지 않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 조용하고 차분한 장소를 찾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가 많이 바뀌었다. 시끄럽고 젊음이 넘치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주제인 경우가 많다. 저자의 말처럼 더 이상 시시하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난 것 같다. 조금 슬프면서도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생각도 한다.
저자가 방문했던 곳 중에 홍대, 합정, 선유도에 대한 기억이 많다. 나 역시 이 장소들은 자주 다녔고 합정은 지금도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홍대 같은 경우 대학생 때 자주 방문했다. 그때 당시에는 홍대입구역의 분위기가 좋았다. 출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시끌 시끌한 분위기, 어딜 가도 끝없이 보이는 멋진 사람들. 그곳에 있으면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인데 말이다.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홍대를 방문하는 날이 많이 줄었다. 이때부터 사람이 많고 활기찬 곳보다는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하였다. 코로나가 발생한 뒤로는 아예 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간혹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 떠오른다. 대학생 때 느꼈던 그 감정.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감정 말이다. 지금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선유도 또한 기억에 남는 곳이다. 물론 유쾌한 장소는 아니다. 이곳도 대학 친구들과 자주 갔던 곳이 었는데 특히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좋아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은 날에도 그 사람이 가자고 하면 꼭 따라갔다. 하지만 그 사람과는 좋은 친구로 남았다. 그때 이후로는 가지 않는 곳이다. 가끔 대학 친구들과 지난 얘기를 하면 선유도가 튀어나온다. 반드시 나온다. 그만큼 자주 갔으니 말이다. 선유도의 풍경, 분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에게 유쾌한 장소는 아니다.
합정은 최근에도 자주 방문하는 장소다.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규모가 제법 큰 교보문고가 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뿐만 아니라 알라딘 중고서점도 있고 작은 서점들도 생각보다 많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카페, 맛있는 라멘 가게들 그리고 동네처럼 친숙한 곳이 아니면서도 홍대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곳도 아니다. 나에게 딱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책에는 저자가 산책한 다양한 장소에 대한 소개도 있다. 개인적으로 강북, 강남 지역은 전시회, 공연 관람 때문에 방문하는 장소들이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목동이나 합정만큼 자주 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모르는 지역들인데 저자가 소개해준 곳들은 한 번쯤 가보고 싶다.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부담 없고 편안한 에세이를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