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TO - MAGAZINE B ISSUE NO.67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by 멧북


# 01. 교토에 대한 인상.


역사에서 나오자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실내에 앉아 멍하니 비 내리는 풍경을 관찰하기 좋아하지만 우산을 쓰고 비 내리는 거리를 걷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딘가 고즈넉해 보이는 도시 풍경 덕분에 평온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이곳저곳을 관찰할수록 마음이 더욱 차분해졌다. 분명 사람도 많고 자동차가 끝없이 다님에도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미리 세웠던 계획을 무시하고 계속 걷고 싶었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또 다른 감정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이런 오묘한 감정이 교토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개인의 생각이 뒤섞여 카오스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도시가 도쿄라면, 교토는 공통된 가치에 개인의 생각을 더한 조화의 도시입니다. (중략) 길거리의 벤치나 간판, 음식점에서 내온 식기 하나하나에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중략) 가모강을 바라보거나 강줄기를 따라 걷고 뛰는 일마저도 색달라 보이는 건 교토가 자연과 공존하며 세월의 변화에 속도를 맞추는 도시이기 때문이다.(p.13)”


책의 “IMPRESSION”에서 언급한 이런 교토의 특징이 첫 방문이었던 내게 평온하면서도 오묘한 감정을 안겨줬을 것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 그리고 폐쇄적이지만 오랜 시간 이어온 전통을 통해 느껴지는 독특함.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섞인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도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토의 매력이다.




# 02. Observers.


교토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교토에서 동양문화가 단단히 자리 잡은 이유는 민간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토의 행정적인 뒷받침이 중요했다. 문화산업의 발전과 유지의 주도적 역할은 민간이지만 그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시스템,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은 국가 행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너무 큰일이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이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부분은 국가는 지원자의 역할에만 충실해야지 된다고 생각했다. 잘못하다가는 문화가 정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 정도로 깊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록은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책임감을 느끼며 아주 작은 질문과 요청에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설명하는 교토의 전문가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가 때때로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을 단순한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요소라고 생각했다.




# 03. Overview.


교토는 일본의 전통을 창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고대 교토는 한반도의 도래인이 정착하며 도시 구조를 확립했다. 이후 794년. 간무왕이 나라에서 교토로 천도하면서 주요 거점으로 부상했다.


당시 교토는 중국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을 본 떠 설계했다. 그 결과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시가지는 지금도 거리 구조가 크게 변하지 않아서 교차로 이름만 알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이후 400년간 번영을 이루는데 이 시기를 ‘헤이안 시대’라고 부른다.(대표적인 문화 작품에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가 있다.)


헤이안 시대가 끝나고 무사(사무라이)들의 시대가 도래한 뒤 수많은 내전으로 인해 중세 교토는 대부분 파괴된다. 지금의 도쿄는 근세(히데요시와 이에야스 시대)에 개조된 모습이다. 시대가 안정되어 갔지만 교토의 시련은 지속되었다. 특히 17세기에 몇 차례의 대화재와 정치적 수도의 지휘를 에도(도쿄)에 빼앗겼다. 그뿐만 아니라 메이지 유신 이후로 천왕마저 도쿄로 떠난다. 상징마저 도쿄에 내어준 것이다.


하지만 교토 사람들은 낙담하지 않고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사람들은 교토를 관광이 전부인 도시로 많이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관광 못지않게 전자부품 계통의 제조업의 비율도 높다.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 분위기와 다른 부분이라 익숙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 결과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




# 04. 로컬 그리고 음식.


전통을 강조하는 도시답게 음식 분야에서도 옛 것을 유지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음식 같은 경우 본인들의 지역에서 자란 각종 채소를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고 옛 맛을 유지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일본 내에서도 인정받는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절임 반찬인 츠케모노가 굉장히 유명하다. 다만 나는 그다지 절임 반찬을 좋아하지 않아서 먹지 않지만 말이다.




# 05. 때때로 느껴지는 답답함.


“교토시 우쿄구 하나조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우쿄구 사가로 이사한 나는 출신 지역을 말할 때 교토시라고 말하기 꺼려진다. 행정구역상 틀림없는 교토시 출신인데도,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라추쿠(794년 간무왕이 교토 천도를 결정할 때 수도를 헤이안쿄라 불렀는데, 당시 헤이안쿄에 포함된 지역)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교토시 외에 다른 시군을 포함하는 개념인 교토부 출신이라고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p.32)”


“교토대학 건축학과 재학 시절 (중략) 명문가인 스기모토가의 집도 내 연구 리스트에 포함돼 있어서 (중략) 9대 당주인 고 스기모토 히데타로와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조금은 다른 내 억양을 듣고 출신지를 물었다. (중략) 그는 그 말에 이어 ‘그리운 이야기네. 옛날엔 그 지역 사람들이 우리 집에 종종 퇴비를 푸러 와주곤 했지.’라고 대답했다. (중략) 언뜻 감사의 뜻이 포함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중략) 이미지는 분뇨를 모아 밭에 뿌려 농사를 짓는 것밖에 없었다. 즉 나는 (중략) 라쿠가이 출신이란 이유로 멸시를 당한 것이다.(p.32)”


나는 잠시 머무르는 관광객으로서 교토를 좋아하지만, 실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폐쇄성과 차별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답답함과 황당함을 느꼈다. 그곳의 거주자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면서도 이러한 폐쇄성이 교토적 매력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06. 게이코(게이샤)와 교토 마치야에 대한 간략한 정리.


교토의 폰토초 거리는 5대 게이코(게이샤) 거리 중 하나이다.(교토에서는 게이샤를 게이코라고 부른다.) 마이코는 어린 게이코 수련생을 뜻하며 오키야는 마이코가 지내는 집을 의미한다.


오차야는 게이코가 공연하는 고급 요정이며 이곳은 검은 패널로 알 수 있다. 폰토초의 게이코의 첫 공연은 18시에 시작되며, 하루에 총 3차례 진행된다.


최근에는 게이코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교토에서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 부분을 정리하며 예전에 우리나라 기생의 계층과 일본 게이샤의 계층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 여성들의 처절했던 삶 또한 떠올랐다. 예전에 관련 책들을 장바구니에 추가해놨는데 찾아봐야겠다.


교토 마치야는 주거와 상업이 결합된 형태의 교토의 전통가옥이다. 다른 지역과 다른 독자적 건축양식과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얇은 나무 격자, 항아리 정원(츠보니와)같은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 특징이다.


현대에는 주로 글로벌 기업들이 교토에 진출할 때 마치야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토 특유의 분위기와 철학을 본인들의 브랜드에 반영하려는 노력 중 하나이다.




# 07. 에필로그.


나는 교토를 떠올리면 동시에 떠오르는 도시가 있다. 바로 경주다. 최근 인기와 상관없이 어린 시절 꿈이 사학자와 문화재 발굴 전문가였던 탓에 좋아하는 도시였다.


농담으로 길을 걷다가 땅을 파보면 신라시대 유물이 나와서 교통도 제조업도 발전할 수 없었고 가까운 곳에 포항과 울산이 있어서 발전에서 밀려난 비운의 도시. 하지만 나 같은 괴짜에게는 꿈과 같은 도시였다.


잠시 추억에 잠겼다가 생각이 교토와 경주의 차이로 뻗어나갔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교토 같은 경우 ‘교토시’에 고부가가치 산업이 몰려 있지만 그를 지원해 주는 역할을 ‘교토부’ 역할도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들의 본사는 교토시에 있지만, 공장 및 대규모 물류 시설은 문화재로 인한 규제가 덜한 외곽 지역, 즉 교토부에 위치하거나 근접해 있는 식이다.


그런데 경주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교토부와 같이 경주부가 있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해 봤지만 포항과 울산이라는 거대한 제조업 도시가 있는데 애초에 불가능한 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더구나 울산은 광역시이다. 경상남도에서도 분리된 독자적인 자치단체인데.. 규모 자체가 다르다.) 우리 경주는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하며 갑자기 경주시 주 수입원 비율이 궁금해서 찾아봤다. 24년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23년 자료를 발견해서 제미나이 도움을 받아 분석해 봤다.


그 결과 내 생각과 다르게 서비스업(관광, 도소매, 교육 등)과 제조업의 비율이 비슷했다. 다만 이는 생산액에서 제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할 뿐이고 사업체 수와 고용 측면에서는 서비스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마디로 생산액 측면에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비슷한 비중이지만, 일자리 측면에서는 서비스업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경주가 교토와 같은 규모의 도시는 될 수 없지만, 서비스업에 대한 개발과 전통을 지켜나가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한 도시가 되지 않을까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매거진 B를 읽다가 이런 생각을 왜 하는지 알 수 없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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