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의 역사 - 타키투스

과거의 혼란을 통한 자기 성찰.

by 멧북


본격적으로 독서하기 전 저자에 대해 정리했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푸블리우스는 이름, 코르넬리우스는 씨족성, 타키투스는 가족성이다.


그의 가족성은 보면 갈리아의 트란스파다나와 나르보넨시스에서만 확인되는 희귀한 성씨였다. 또한 당시 유명 인사였던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와 혼인을 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법무관, 집정관, 아시아 속주의 총독 등 고위직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다. 이런 이력을 통해 그가 상당한 상류층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타키투스는 야만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뒤집어, 게르마니아인의 몇몇 덕목을 진심으로 찬미한다. 물론 북쪽의 야만족에게는 여전히 적대적이며, 그래서 그들에 대한 로마의 승리와 제국 변경의 확장에 대한 타키투스의 태도는 늘 호의적이다.(p.29)"


그의 저서가 지금까지 인정받는 이유는 적대적이고 야만인이라 생각했던 세력에게서 로마인들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갔다. 또한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두며 문헌, 공문서와 같은 사료를 대체로 비판적으로 다뤘다. 이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면서도 최대한 객관성과 진실성을 추구하려 노력했다.


"타키투스는 왜 타자성의 문제를 그처럼 예리하게 제기하는 것일까? 근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체로 타자에 대한 관찰은, 한 제국의 식민지가 논란거리가 되면서 제국이 삐걱거릴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영제국의 역사는 대표적인 경우다. 타키투스의 시대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중략) 제국이 획득한 세계의 범위는 국내 정치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중략) 이제 제국이 그 중심에만 서서 파악할 수 없는 방대한 조직이 되었으며, 항상 로마인과 비로마인이 공생하는 변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명운이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p.31~32)"


그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 주변 세계의 정세와 정치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통해 당시 로마인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역사가이자 작가였다.




# 제1 권.

"갈바는 (중략) 오늘날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그의 낡은 강직함과 지나친 엄격함이 그를 파멸시켰던 것이다.(p.81)"


혼란스러운 시대에 갈바는 너무 우유부단하면서도 원칙과 시대에 맞지 않는 과거의 규율을 강요했다. 그 결과 그 누구도 진정으로 그를 따르지 않았고 적대적인 세력은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중 오토라는 인물은 개인의 윤리적, 도덕적 결함을 숨기고 갈바에 대한 증오심, 그의 후계자 피소에 대한 질투로 인해 로마가 더욱 혼란스럽기를 바랐다.


"과도기가 위대한 시도를 하기에 적합하며, 무모함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더 해로울 때는 멈칫거리면 안 된다.(p.84)"


오토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시대를 읽는 능력 그리고 담대함과 교활함을 가진 자였다. 그는 불만이 누적된 병사들에게 많은 호의를 베푼다.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규율을 강조했던 갈바와 반대 행보를 보이면서 은근슬쩍 병사들에게 갈바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퍼트렸다.


나는 오토를 보며 사치와 향락 그리고 부도덕한 인물이 시대를 읽는 능력과 담대함을 함께 가진 자가 권력을 잡는다면 현실이 더욱 처참해진다고 생각했다. 또한 정확한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며 은근히 타인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멀리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집안은 유서 깊은 명망가에다 상당한 재력을 갖고 있었다. 갈바 (중략) 범용한 인물로, 미덕을 갖추었다기보다는 결함이 없는 쪽이었다. (중략) 평판에 무심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다. 타인의 돈을 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돈을 절약하고 (중략) 부정직한 자들의 경우에도 죄를 저지를 때까지는 묵인했다. 그의 고귀한 출신성분과 공포가 만연한 시대 풍조 때문에, 그의 무력함이 현명함으로 불리었던 것이다.(p.106)"


결국 갈바와 그의 후계자 피소는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이후 품위와 명예를 잊은지 오래된 군인들은 서로 앞다퉈 피 묻은 자신의 손을 흔들며 자랑했고, 그날 포상을 신청한 서류가 120개 이상 접수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행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가를 치렀다. 후에 권력을 잡은 비텔리우스가 포상을 받은 이들을 모두 조사하여 처형했기 때문이다.


결국 옳지 못한 행동은 당장의 작은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길게 보면 비극적인 최후를 부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 갈바는 정치가로서 부족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가진 것들에 비해 검소했고 젊은 시절부터 노년기까지 뛰어난 공직자였다. 하지만 그는 결단력과 냉철함이 필요한 '황제'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경쟁자들을 제치고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망 있는 가문의 출신이라는 점과 혼란스러운 환경 때문이었다. 이런 요소가 그의 무력함을 현명함으로 둔갑시켰다.


나는 그의 개인적인 미덕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평소에 자아성찰을 했더라면, 자신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비참한 최후가 아닌 평온한 죽음을 누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지금과 같이 큰 변화의 물결이 밀려들어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오토의 야만적이고 비열한 행동이 대중과 속주의 군인들에게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었다. 갈바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공적을 쌓아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것보다는 오토와 같이 단기간에 돈과 거짓 호의로 군대를 매수하여, 힘으로 황제가 되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권력은 폭력으로 쟁취할 수 있다는 "네 황제의 해"가 시작되었다.


한편, 반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례를 떠올려보면 미국의 조지 워싱턴이 떠올랐다. 그는 군 통수권을 자진 반납했고 세 번째 임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선례를 덕분에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부정한 정치적 행위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며 올바른 선례를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통해 "선례"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 제2 권.


갈바를 처참히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오토의 치세도 얼마 가지 못했다. 오토와 동료, 부하들의 오만과 탐욕 때문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의해 다른 사람의 최근의 행운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바로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겼던 자에게 절제할 것을 요구했다."(p.163)


대중들은 겉으로 오토와 그의 동료들을 찬양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옛 조상들의 고귀함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눈에 들어온 자가 바로 비텔리우스였다.


"갈바를 살해한 것이 오토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더해주었던 반면, 아무도 비텔리우스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쾌락을 추구하는 탐욕스럼 비텔리우스는 단지 자기 자신만을 욕되게 한다고 여겨졌지만. 사치스럽고 잔인하며 대담한 오토는 공화국에 더욱 위험한 인물로 생각되었다."(p.173)


사람들은 자신에게 큰 불편과 위협이 없다고 판단한 것들에 대해서는 경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오토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가볍게 여겼던 듯싶다. 갈바를 시해하고 황제가 된 순간 어느 정도 겸손하고 절제하는 등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 오토와 비텔리우스는 내전을 치른다. 처음에는 누가 승리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팽팽했지만, 오토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불신을 받는 지휘관들만 남겨놓은 채 본인은 후방으로 철수한 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서서히 승리의 기운은 비텔리우스에게 향한다.


"오토는 두 가지의 대담한 행동에 의해, 즉 하나의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과 또 다른 영예로운 행동에 의해 후손들에게서 불명예만큼이나 큰 명성을 얻었다."(p.190)


결국 오토는 비텔리우스에게 밀려나 조금씩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비열하게 항전을 포기하고 자결한다.


난 그의 이런 행동을 비겁한 행동이자,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희생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패배의 오점을 남기기 싫어서 도망간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황제로서 진정한 명예란 오점을 남기더라도 부하들을 살려내고 자신의 명분을 지켜내는 것인데 자신의 우아한 퇴장을 위해 부하들의 항전 의지마저 꺾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비열하게 항전을 포기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이후 권력을 잡은 비텔리우스는 오토보다 더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했고 사치와 식도락의 노예였다.


그는 더 이상 자신에게 대적할 세력이 없다고 오판하여 온갖 사치와 잔인함, 욕망, 강탈에 몰두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조금만 틈을 보여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법이다. 결국 엘리트들과 대중들은 동방의 베스파시아누스를 발견하고 찬양하기 시작한다.


비텔리우스는 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미 동방의 속주들이 충성을 맹세했다며 현실을 외면한다.


"당신이 제권을 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시간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제권으로 도피해야 합니다. (중략)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사람이 매우 고결해 보입니다."(p.209)


평소 신중하고 근면했던 그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동료들과 라이벌의 진실한 설득을 받아들여 결국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주변 상황에 의해 "해야만 한다"면 지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주변 환경에 의해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운명에는 결연히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칭찬으로, 일이 느린 사람들에게는 강제하기보다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극했다. 그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장점을 부각 하기보다 단점을 감추어 주었다. 이런 그의 사람 관리 능력은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으로 이어졌다.


나는 오토가 위기 앞에서 자존심을 택했고, 비텔리우스는 회피를 택했으며, 베스파시아누스는 책임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베스파시아누스 비텔리우스 그리고 갈바, 오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한 리더였다고 정리했다.


그렇게 로마에는 다시 내전이 시작되었다.




# 제3권.


크레모나를 지키던 베텔리우스의 군인들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지위와 신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적군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쏟아질 것을 알고 있는 지휘관들은 감금했던 죄인들을 사면하고 비텔리우스의 입상을 제거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베스파시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과 가진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미천한 지위 덕택에 잃을 것이 없었던 일반 병사들은 여전히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를 통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것인데, 그때 잃을 것이 없다는 듯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만약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라면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큰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삶이 힘든 분들을 많이 만나왔지만 여전히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아마도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는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확실한 점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꿈 없도 없고 지나치게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하며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확실한 내 삶의 기준 중 하나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많이 다르더라도 절대 경멸하거나 하대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안 된다는 점도 다시 한번 기록했다.


결국 크레모나는 베스파시아누스 군에게 점령당했다. 이때 지휘관이었던 프리무스는 승자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정복된 자들에 대해 자비롭게, 크레모나에 대해서는 중립적으로 연설(p.265) 했지만 일반 병사들은 추악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4일 동안 서로 죽이고 약탈하며 도시를 파괴했다.


결국 286년 동안 눈부시게 번성했던 도시는 단 며칠 만에 메피티스 신전만 남긴 채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야만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현실을 외면한 채 방탕한 생활에 물든 비텔리우스도 점차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내부 결속의 필요성을 느끼고 원로원을 향해 연설을 한다. 원로원 의원들은 그의 앞에서 온갖 찬양을 던졌지만 진심이 아닌 거짓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베스파시아누스를 언급하는 것을 회피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은 비텔리우스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패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이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난 그들의 처세술에 감탄했다.


동시에 비텔리우스는 신뢰하는 부하들에게 베스파시아누스의 반란을 저지하라고 병력 등 다양한 지원을 했지만 그의 부하들 역시 게으르고 타락한 자들이 많았다. 결국 사람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더불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비텔리우스는 천박한 질투심 때문에 충성심이 깊고 능력이 뛰어났던 부하를 독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정말 못난 인간의 전형이다.




# 비텔리우스의 최후와 대중의 민낯


"비텔리우스는 (중략) 검은색 의복을 입고 (중략) 팔라티누스 궁전에서 내려온다. (중략) 로마 황제가 (중략) 제권을 포기하기 위해 대중 속을 수도를 걸어서 통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중략) 비텔리우스는 (중략) 마침내 울음으로 말을 못하게 되자, (중략) 검을 뽑아 곁에 있던 집정관 카이킬리우스 심플렉스에게 준다. 집정관이 칼을 받기를 거부하고 (중략) 대중이 항의하는 함성을 지르자 (중략) 비텔리우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팔라티누스 궁전으로 돌아왔다."(p.298~299)


비텔리우스는 그동안 누려온 혜택과 방탕함을 잃고 싶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죽음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결사항전을 외치는 부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친베스파시아누스파와 제권을 넘기라는 온건파들의 의견에 따라 제권을 그에게 넘기기로 결정한다.


비텔리우스는 그에게 제권을 넘기기 위해 궁전에서 내려가던 도중 대중들과 마주친다. 사실 대중들은 그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세상의 주인인 로마 황제가 본인의 안위를 위해 비굴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모습에 분노한다. 대중의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미 타락한 그들에게도 당시 전 인류의 지배자인 로마인이라는 자존심이 남아있던 것일까? 아니면 본인들이 평생 동안 누릴 수 없는 방탕과 사치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에 분노했던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모르겠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대중은 분노하여 물리적 폭력을 행하려는 분위기에 비텔리우스는 궁전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외면했던 그의 최후는 자신의 삶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비참함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말년을 보며 나이와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 본인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책임과 의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역시. 답답하고 힘들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개인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무시한 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성을 잃은 대중과 일반 병사들은 비텔리우스가 제권을 넘기는 결정을 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비누스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표출한다.


만인의 적이 된 사비누스는 지난 35년간 로마에 봉사하고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결국 사비누스는 일반 병사들과 대중들에게 끌려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잔혹하게 처형되었고 시체마저 유린 당했다. 참고로 당시 비텔리우스는 병사들과 대중들에게 그러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군중은 싸우는 병사들 옆에 구경꾼 (중략) 함성과 갈채로 이편저편을 격려하곤 했다. (중략) 전리품의 많은 부분을 획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병사들이 유혈과 학살에 몰두하는 동안 전리품은 군중에게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가 무시무시하고 가증스러운 광경이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전투와 부상이 속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중목욕탕과 술집이 붐볐다. (중략) 사람들은 (중략) 공공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p.314~315)


결국 시간은 흘러 베스파시아누스파의 군인들이 도시에 들이닥친다. 잃을 것이 없는 비텔리우스파의 군인들과 승리를 얻어야 하는 베스파시아누스파의 군인들은 잔혹한 전투를 벌인다. 대중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검투사 경기를 관람하듯 행동했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도망가던 군인들을 붙잡아 다시 살육의 현장으로 던지기도, 직접 살해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순간이 가장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 순간이었을 것이다.


"천성의 경박함에 의해 그리고 공포의 본질이 그러하듯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현재의 상황이 최악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텔리우스는 버려진 황량한 팔라티누스 궁전으로 돌아온다."(p.316)


비텔리우스는 황후의 집에 숨어있다가 동생에게 도주할 생각이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 최악의 선택을 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발생하지 않는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에 휩싸여 현재 상황을 최악으로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을 텐데.


"비텔리우스가 (중략) 질질 끌려가고 있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비텔리우스는 무수히 맞고 쓰러진다. 대중은 살아있는 비텔리우스에게 아첨하던 때의 그것과 동일한 천박함으로 살해된 비텔리우스를 공격하고 있었다."(p.316)


비텔리우스는 자신의 근면이 아닌, 전적으로 부친의 명성으로 부와 권력을 획득했다. 거기에 더하여 그에게 제위를 제공했던 사람들은 그를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단순함과 후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었고 이러한 기질은 무차별적인 낭비와 사치로 이어졌다.


그에게 가장 뼈아픈 부분은 우정과 신뢰를 '성격의 일관됨'으로서가 아니라, 선물의 크기로 유지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본인의 인덕과 그릇의 크기보다 많은 친구, 동료를 '매입'한 처지가 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결국 성격의 일관됨. 난 이것을 '진실함'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상대를 진실하게 대했음에도 맞지 않다면, 그 사람과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뒤 자연스럽게 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나의 인덕과 그릇 크기에 어울리는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비텔리우스는 훌륭한 반면교사의 대상이었다.




# 에필로그.


고대 로마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통해 인간들의 근원적인 욕망과 시대와 상황에 맞는 처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고 자신에 대한 끝없는 성찰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 겸손, 절제를 보인 이들은 혼란스러운 야만의 시대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며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대조적인 인물들의 생각, 감정, 결정들을 읽으며 현재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떠한 인간으로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혼란이 예상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내 것을 나누며 살자. 반짝 강렬하게 빛나는 사람보다는 언제나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였다.


겸손, 절제, 타인에 대한 이해, 배려, 연민. 부디 내가 잊지 않고 삶을 지속하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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