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왈츠 - 밀란 쿤데라

역겨움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5일간의 왈츠.

by 멧북


# 108. 질투란 그 강렬한 불빛으로 오직 한 존재만을 밝힐 뿐, 다른 모든 남자들은 완벽한 어둠 속에 밀어 넣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클리마 부인의 생각은 이 고통스러운 불빛의 방향 외 다른 방향으로는 갈 수 없었으며, 그의 남편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남자가 되었다.(p.33)


# 109. 숨 막힐 듯한 이런 사랑의 감각은 단지 한순간의 희미한 불빛에 불과했다. 그의 정신은 온통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카밀라 곁에 누워 있고, 자신이 그녀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딴 데 가 있었다.(p.39)


# 110. 아내에 대한 당신의 그 지나친 사랑은 당신의 냉담함을 상쇄해 주는 반대 극점이 아니라 바로 그 냉담함의 원천이에요.(p.51)


# 111.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게 하려 하지 말고 진짜 그녀를 사랑하려고 해 봐요. 그녀를 동정하려고 해 봐요. 비록 그녀가 당신을 속인다 할지라도 그 거짓말 속에서 당신에 대한 사랑의 한 형태를 보도록 노력하세요. 그랬을 때 그녀는 당신의 강한 호의에 못 이겨 당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녀 스스로 모든 조처를 취할 거라고 확신합니다.(p.57)


# 112. 만약 올가가 좀 더 어리석었더라면 그녀는 자신을 아주 예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똑똑한 여자아이였기에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못생겼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녀는 못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았으며, 아름다움에 대해 정상적인 기준을 가진 남자라면 누구나 그녀와 기꺼이 밤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가는 즐겨 자신을 두 인물로 분열시키기에, 관찰하는 그녀는 바로 이 순간 살아가는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녀가 이렇게 생겼든 저렇게 생겼든 무슨 상관인가? 왜 거울에 비친 모습 때문에 괴로워하나? 그녀는 남자들 눈에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단 말인가? 스스로 자신을 시장에 내놓는 하나의 상품처럼 말이다. 자기 외모에 초연해질 수는 없는가? 적어도 남자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초연해지는 그 정도는 말이다.(p.117)


# 113. 그런데 나도 인정하지만 복수란 세월보다 더 강해. (중략) 범죄자와 희생자 사이에 아무 차이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건 바로 모든 희망을 버리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아가씨, 그게 바로 지옥이라고 불리는 거야.(p.125)


# 114. 미학적 인종 차별은 거의 언제나 경험이 없다는 걸 드러내죠. 사랑이 주는 즐거움의 세계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그들이 보는 외양으로만 여자를 판단하죠. 그러나 여자를 진정으로 아는 이들은, 눈이란 여자가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 중 아주 미미한 부분밖에 보지 못한다는 걸 알죠.(p.159)

# 115. 감탄의 대상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그들 같은 인간들에게 애착을 갖고 집착하는 자로, 그들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p.174)


# 116. 질투의 고통은 그와 반대로 공간 속을 돌아다니지 않고, 마치 팽이처럼 단 한 점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분산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이(더 외롭고, 또한 더 성숙한 다른) 미래의 문을 열어 주었다면, 남편의 부정으로 받는 고통은 어떤 미래도 열어 주지 않았다. 부정을 저지른 육체라는 (중략) 단 하나의 이미지와 (중략) 단 하나의 비난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 그녀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질투에 사로잡혔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p.191)


# 117. 보란 듯이 내보이는 그녀들의 상스러움은 바로 자신은 이제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확신에서 나왔다. 그녀들은 여자들의 젊음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성적으로 아무 쓸모 없는 자기네 육체를 내보임으로써 여성의 벗은 모습을 모독하고 우롱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략) 왜냐하면 그들은 육체란 아름답건 추하건 결국에는 똑같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198~199)


# 118. 프란티셰크는 루제나보다 어렸다. (중략) 그가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발견할 것이고, 한 여자를 넘어서면 그 뒤에는 여전히 또 다른 여자들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단지 프란티셰크는 아직 세월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설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는 세계에서 살며, 움직이지 않는 일종의 영원 속에서, 늘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루제나가 그를 남자로 만들어 줌으로써, 그녀는 그의 머리 위로 펼쳐진 창공, 그에게 가능한 단 하나의 창공을 덮어 버리는 덮개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p.207)


# 119. 고통이 없음을 고통스러워해야 하는가? 슬프지 않음을 슬퍼해야 하는가?(p.210)


# 120. 질투는 심한 치통과 같다. 질투를 할 때는 아무것도, 앉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단지 왔다 갔다 할 뿐이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p.284)




# 108~120. 에필로그.


“인간에게 있어서 내가 언제나 가슴 깊이 역겹다고 생각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잔인함과 저속함, 그리고 어리석음이 어떻게 서정적인 가면으로 가려지는지 보는 겁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데도, 그녀는 상처받은 사랑에서 나온 감상적인 위업이나 되는 듯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거예요.(p.164)”


인간은 각자의 감정과 욕망을 선의로 포장한 채 살아간다. 누구는 순수함으로, 다른 이는 공허한 교양으로, 어떤 이는 점잖음과 자기 합리화로, 또 다른 이는 거짓된 아름다운 감정으로 말이다.


인간들은 때로는 웃고, 울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싶지만 그 이면에는 불륜, 살인, 사기 등 삶의 역겨운 부분들이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간들은 이런 추악함을 인지하면서도 일종의 유희 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며 살아간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감정, 행동은 하지 말아야 된다고 배우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 각자의 어두운 감정과 경험을 숨긴 채 살아간다. 결국 인간이라면 죄악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그것 자체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둠이 깊을 수록 아주 작은 빛은 선명해진다. 삶의 추잡한 면들이 어지럽게 뒤섞일 때, 우리는 그 틈새에서 빛을 발견하는 법이다.


광기와 이기심을 넘어 사랑을 갈구하는 클리마, 질투의 강을 건너 새로운 삶을 탐색하는 카밀라, 기괴한 방식으로 절망을 치료하는 슈크레타, 질식할 것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도약을 시도했던 루제나의 처절함, 클리마의 능숙한 기만과 대조되는 바보같을 정도로 투박하고 서툰 방식으로 사랑한 프란티셰크의 순애, 방황하던 자아를 이겨내고 자기 생의 감각을 깨워내기 시작한 올가의 풋풋함.


결국 삶은 뒤틀린 욕망과 사랑, 거짓의 총합이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희망과 신뢰를 찾으며 울고 웃는 것이라 생각했다.


P.S. 사실 쿤데라의 글은 냉소적이고 씁쓸함을 즐기며 시대적 맥락을 생각해야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삶을 냉소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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