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과 나의 사막 - 천선란

이번에도 따뜻한 SF소설.

by 멧북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현대문학의 PIN 시리즈에 천선란 작가의 글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다렸던 책이다. 마음 같아서는 출간을 하자마자 구입하여 읽으려고 했으나 이미 읽고 있는 책과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많아 구매를 미뤘다. 이후 구매했던 책들을 완독하였고 드디어 작가의 책을 구매하였다.


‘랑과 나의 사막’


빠르게 책의 소개를 읽어보니 이번에도 SF 소설이었다. 전에도 밝혔듯이 나는 SF 장르의 글은 선호하지 않아 일부러 찾아 읽지 않는데 천선란 작가 같은 경우 지난번에 읽었던 ‘천 개의 파랑’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다.


이번에는 천선란 작가가 어떤 따듯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렇게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 01.

“인간의 감정은 효율을 따지면 안 된다.”


체계적,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매일 같이 생각했다. “감정은 효율을 따지면 안 된다.” 예전의 나는 곧잘 “불필요한 감정이다.” “정말 비효율적이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억지로 비효율적인 것이라며 외면했다. 그 결과.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대학생 때 편입 시험을 준비하다며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고 생각도 마음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에게 감정이란 귀찮고 자신을 나약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로봇’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실패했고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랑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제서야 이 사실을 깨닫고 감정을 받아들이며 옛날의 내가 그러했듯이 조심스럽고 느리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회복이 될까?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내 스타일대로 묵묵히 지속적으로 노력할 뿐이다.(2022년 12월 6일 독서 중 기록.)



# 02.

지카는 말한다. “인간이 바다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바다는 숨기지 않는다.”라는 말과 함께.


지카의 말이 옳다. 대체적으로 인간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본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본인이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영역이 무서운 것이다. 마치 인간들이 바다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 미지의 영역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본능을 이겨내려고 끝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급변하는 지금 우리의 시대에 말이다.


바다는 숨기는 것이 없다. 미지의 세계도 숨기는 것이 없다. 그저 우리가 모를 뿐이다.



# 03.

지카처럼 희망을 쫓아 행동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랑처럼 현실에 적응하는 삶을 살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살 것인가?


나는 부정하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듯싶다.


예전에는 단순히 삶을 성공과 실패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든 다양한 삶의 선택 중에 한 가지 일뿐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눈을 감을 때까지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러고 싶다.



# 04.

시체를 들것에 실어 이동하는 일곱 명의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본인이 힘들면 의지할 존재를 찾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때로는 의지하려는 존재를 희생시키더라도 말이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싶다.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성적인 존재가 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고 비이성적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불쾌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존재이다.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에게 비이성적인 모습이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불가능한 것을 해내기도 한다.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 05.

랑이 버려진 고고를 발견한 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작동을 하게 만든 것. 고고가 ‘넓은 오지랖’이라고 표현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멋진 부분이 아닐까? 이런 긍정적인 오지랖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다독이며 힘든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 06.

결국 인류는 외계의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는 주장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보편적으로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한다. 그런데 인류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쇠퇴했다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외계인이 오면 잘해주자”라는 랑의 센스 있는 얘기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 07.

트랙터에 몸을 던지던 팔이 없는 로봇은 고고를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본다. 고고는 다른 로봇이 팔이 없기 때문에 만져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로봇은 얼굴을 들이밀고 뺨을 붙인다. 결국 팔로 만지지 않았을 뿐이지 고고를 만졌다. 버진이 말했듯이 방식이나 모습은 다르지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간혹 내 기준으로 어떤 일을 타인이 못할 것이라 단정 지을 때가 많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나의 잘못된 편견 때문일 때가 많고 타인이 나와 다른 방법으로 일을 해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버진의 말처럼 방식이나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 08.

고고는 알아이아이에게 자신의 한 쪽 팔을 주고 알아이아이가 기다리는 카일에 대한 얘기도 하지 않는다. 비밀이란 절망을 숨겨주는 막이라는 말을 한 랑을 떠올리며.


로봇인 고고가 이타적인 선택, 로봇이라면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나는 이 부분이 인상 깊게 남았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 철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 09.

고고는 힘든 상황에서 소소하고 따뜻했던 랑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삶을 살아갈 때 화려하고 거창한 추억보다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소소하고 따뜻했던 추억이 더 큰 위로와 힘을 준다.


개인적으로 거창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삶보다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이들과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 10.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때로 감정은 오해를 일으키고 다툼을 유발하지만 반대로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타인에게 흘러가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나에게 흘러들어오기도 한다. 감정은 끝없이 흐르고 교류하며 오해와 치유를 안겨준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이전보다 성숙해지며 매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랑이 죽은 뒤 고고는 방황을 했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랑이 죽음 직후에 고고는 명백하게 로봇이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글의 끝의 고고는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고는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고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랑을 만나기 위해 뛰어든다. 만약 고고가 랑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고고의 선택은 헛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고고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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