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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n 25. 2023

서현의 나날.

11화. 과거.(07)

“툭.”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소현은 짐이 가득한 가방을 소파에 던지며 아이들을 불렀다. “애들아. 엄마 왔다.” 하지만 도착한 집에는 고요했다. “어휴.. 또 어디를 간 거야.” 그녀는 피곤한 몸을 움직여 아이들의 방으로 향했다.


“이놈이 진짜!” 닫혀있는 방문을 열자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져있는 책들이 보였고 언제입었는지 알 수 없는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발로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밀며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들어오면 확실하게 말해야지! 정말 이게 뭐야!”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는 부지런히 팽개쳐진 책들은 방의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고 세탁이 필요한 옷가지는 세탁 바구니에 넣었다. “휴.. 이제야 조금 깔끔하네.”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며 나란히 놓여있는 책상을 바라봤다. 필요한 물건만 올려져 있는 깔끔한 책상과 돼지우리 같은 느낌을 주는 책상. 나란히 붙어있지만 두 개의 책상은 보는 사람에게 하여금 서로 다른 분위기를 안겨줬다.


“특히 승훈이는 혼나야 돼.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 자리 정리는 기본이라고. 이대로 성인이 되면 다른 지구인들에게 미움을 받을 거야.” 소현은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아들이 다른 지구인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질러진 책상 옆에는 필요한 것만 올려져 있는 깔끔한 책상이 보였다. “역시 유나 책상은 깨끗해.” 유나는 그녀의 자랑인 딸이었다. 무슨 일이든 대충 하는 아들과 다르게 정리 정돈은 물론이거니와 학교생활, 공부도 훌륭히 해냈다. 소현에게는 승훈도 소중한 아이였지만 무슨 일이든 알아서 똑 부러지게 해내는 딸 유나를 조금 더 아끼고 사랑했다. 유나도 이러한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단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문제없이 조용하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딸이지만, 그렇다고 딸에 대한 걱정이 없지는 않았다. 또래에 비해 너무 조용하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점과 자신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여느 아이들이 그러하듯 반항을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켰다. “뭐.. 유나는 알아서 하겠지.” 소현은 유나의 책상을 대충 훑어본 뒤 방을 나왔다.


“쾅!”


“다녀왔습니다!” 거실에서 홀로 저녁을 먹던 소현의 귀에 요란하게 닫히는 현관문 소리와 함께 승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잠시 이리 와 봐!” 소현은 방과 책상을 정리하지 않은 아들의 잘못을 알려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 저 바빠요. 나중에요.” 집에 도착한 승훈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엄마의 표정 보아하니 지금 대화를 나누면 끝이 없는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뭐가 바빠! 거짓말하지 말고 이리 와 봐!” 소현은 방으로 도망가려는 아들에게 소리치며 다가갔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을 확인한 승훈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거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여 조용히 바닥을 내려다봤다.


“너. 도대체 방을 정리하지 않는 이유가 뭐야?” 소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 없이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 앞으로는 정리할게요.” 승훈은 차분하게 말했다. “저번에도 정리하겠다고 말을 하더니 나아지는 점이 없잖아.” 소현은 고개를 숙인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알았어요. 다음에는 꼭 정리할게요!” 승훈은 답변을 하기 귀찮다는 듯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소현은 반성은커녕 짜증을 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걱정과 분노로 인해 언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데 나중에 다른 일들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겠어? 당장 1, 2년 뒤에 명문 ㅇㅇ 학교로 전할 갈 수도 있어. ㅇㅇ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너 거기에서도 이럴 거야?” 고개를 숙인 채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승훈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우리가 ㅇㅇ 학교에 어떻게 입학을 해요? 그럴 만한 돈이 어디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 덜렁거리고 미래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어 보이는 승훈이 현재 집안 사정에 대해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지금 너 생활 습관이나 고쳐.” 갑작스러운 아들의 객관적인 말에 놀란 소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런 엄마의 표정을 확인한 승훈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저는 지금 학교도 좋아요. 친구들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놀란 듯이 소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네가 다니는 학교의 분위기가 좋다고?” 승훈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네. 자유로워서 좋아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어요.”


평소 학교에서 지나치게 아이들을 방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 소현은 승훈의 말을 들은 뒤에 그 학교가 더욱 싫어졌다. “이렇게 아이들을 제멋대로 생활하게 풀어두니까. 책임감도 없고 게을러지지. 빨리 전학을 가야겠어.” 소현은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학교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고 지금부터 당장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둬. 그리고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의 청소상태를 확인할 테니까. 잘 정리해. 알았어?” 소현은 아들에게 통보를 하듯 말했다. “아니요.. 저 혼자 이용하는 방도 아니고..” 소현은 아들의 말을 끊고 말했다. “누나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잖아. 너만 잘 하면 깨끗한 방에서 지낼 수 있겠지?”


평소 자신을 누나와 비교하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던 승훈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진짜! 왜 맨날 누나하고 비교를 해요??” 소현은 목소리를 높이는 아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누나랑 비교를 해야지 그러면 누구하고 비교를 해?” 계속 누나와 비교를 하는 엄마에게 화가 난 승훈은 씩씩 거리며 말했다. “걔가 무슨. 뭐를 잘해? 아. 진짜!”


소현은 평소에 듣지 못한 아들의 말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버릇없는 아들의 행동을 바로잡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누나가 얼마나 잘하니? 공부도 잘해, 평소 행실도 바르..” 승훈은 인상을 쓰며 소현의 말을 끊고 말했다. “공부만 잘하지 다른 건 최악이야!” 소현은 아들을 노려보며 말을 하려는 순간 소파에 앉아있던 승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야! 어디 가!” 아들의 버릇없는 행동에 화가 난 소현은 부지런히 쫓아갔지만, 이미 현관문 밖으로 나간 뒤었다. “유나가 공부만 잘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소현은 아들이 떠난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며 생각에 빠졌다. 소현은 승훈이 누나에 대한 단순한 질투라고 생각을 하며 남긴 밥을 먹기 시작했다.


“탕탕. 쾅!” 또다시 오래된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밥을 먹던 소현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딸 다녀왔니?” 하지만 유나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소현은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는 딸에게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또래보다 성숙한 딸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무심한 딸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 해 일이 바빠서 딸의 입학식, 졸업식 등 축하가 필요한 때에 함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소현은 시간이 지나 유나 성장하면 이러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현 씨! 저쪽에 있는 손님 응대 좀 부탁드려요!” 오늘도 네발 로스터리는 많은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는 소현은 특유의 성실함과 차분함으로 능력을 인정받으며 로스터리 생활에 적응했다.


“지직.. 지직.. 최근 주변부에서는 미성년자 성매매가 기승입니다. B 기자의 집중 취재를 통해 심각한 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낡은 모니터에서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말세야.. 세상이 혼란하니 저런 일이 발생하지. 킁킁..” “저런 문제가 우리 시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느 시대에나 일어나는 문제지. 멍멍.”


이미 경제 상황이 좋지 않던 주변부는 최근 들어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주변부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간혹 보이는 우수한 지구인들은 이곳을 떠나 중심부로 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부는 슬럼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분명히 우리들 중에서도 미성년 지구인 성매매를 한 놈들도 있을 거야. 꿀꿀..”


“그럴지도 모르지. 어린 지구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놈들이 많으니까. 킁킁..”


음식을 나르던 소현은 잠시 동안 뉴스가 흘러나오는 낡은 모니터의 화면을 바라봤다. “이번에 미성년 지구인과 관계를 맺은 지구인들은 그런 적이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매수자 명단을 확보한 치안대는 이들의 이름과 성매매를 한 날짜, 시간 등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번에 체포된 범죄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한 수사와 법 집행이 필요하겠군요. 그런데 B 기자.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뉴스 진행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치안대 브리핑실에 있는 기자에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치안대가 성매매 현장을 급습하였을 때 발견된 명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명부를 작성한 지구인입니다.” 기자의 말을 듣던 진행자는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명부에 작성자 이름이 적혀있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인 것 같은데요?” 진행자의 말을 들은 기자는 여전히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명부에는 작성자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작성자가 성매매 피해자들과 같은 나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로스터리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기자의 목소리를 듣던 지구인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를 시작했다. “어찌 이런 일이.. 킁킁.” “말세야. 말세. 꿀꿀..”


“치안대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낡은 모니터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해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되었고 로스터리에 방문한 지구인들은 즐거운 가십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혀를 차고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정신없이 음식을 나르던 소현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자신을 집어삼킬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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