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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Aug 25. 2023

서현의 나날.

28화. 과거. (24)

"요즘 공부는 어때?" 혜은은 음식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 그냥. 그래요. 걱정하지 마세요." 입맛이 없는지 서현은 음식을 깨작이며 말했다. "그래. 혹시 너무 힘들면 쉬어가면서 해. 급할 것도 없고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혜은은 최대한 밝고 씩씩하게 딸에게 말했다.


"네." 서현은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 최대한 힘차게 말했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의 식사가 끝난 뒤 모녀는 각자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혜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서현아. 중심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도울게."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놀란 서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엄마를 바라봤다.


"그렇게 쳐다보면 엄마가 민망하잖아." 혜은은 놀란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해요. 놀라서 그랬어요." 조금 전까지 밝았던 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녀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혜은은 딸이 이런 말과 행동을 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서현아. 엄마는 걱정하지 마. 괜찮아." 혜은은 진지하게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을 것 같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딸에게 거듭 말했다.


힘들지 않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서현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그런 딸의 표정에 당황한 혜은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휴. 괜히 말했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해. 지금처럼 학교도 꾸준히 다니고 그러면 괜찮아. 다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현재로서는 더 이상 딸에게 할 말이 없는 혜은은 급하게 말을 마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네." 급하게 자리를 뜨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서현은 조용히 빈 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오늘은 내가 할게. 푹 쉬어." 혜은은 웃으며 말했다. "네." 서현은 빈 그릇을 엄마에게 전달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 걸까?" 평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에게 항상 해주셨던 엄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모습에 궁금함과 배신감을 느끼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지.." 침대에 누워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삐빅. 삐빅." 오늘도 어김없이 업무용 알람이 울렸다. "삐빅. 삐빅." 혜은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네. 사장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윤식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크크. 드디어 받았네." 한동안 그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알람을 통해 들려왔다. 혜은은 지금이라도 알람을 꺼버리고 싶었지만 서현의 중심부 대학 입학을 위해 참았다.


"혜은 씨! 여기 좀 도와줘!" 멀리서 그녀의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일이 많아서요." 혜은은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던 그는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쳇. 그깟 일이 뭐라고." 혜은은 그의 예의 없는 말에 화가 났지만 예전과 다르게 참았다. "일이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혜은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말한 뒤 알람을 끊었다. "진작 그러지. 어차피 이럴 것을." 윤식은 컴컴한 방에 홀로 앉아 음흉하게 웃었다.


"오늘 무슨 걱정 있어?" 짧은 휴식 시간에 동료가 혜은에게 물었다. "아니요. 별일 없어요. 왜요?" 혜은은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평소하고 다르게 업무 중에 알람도 받고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동료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줘. 최대한 도울게." 친절한 동료의 말에 감사하면서도 그녀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아팠다. "네.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씀드릴게요. 감사해요." 혜은은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여기 좀 도와줘!" 홀에서 혜은과 동료들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갑니다." 그녀와 동료들은 큰 소리로 대답하며 홀로 뛰어갔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일을 마친 그녀와 동료들은 얘기를 하며 탈의실로 향했다. "저기.." "어휴. 저 놈 또 왔네." 동료들의 수군거림에 탈의실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평소보다 멋을 부린 윤식이 벽에 기대어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고 욕을 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그는 혜은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녀와 함께 있던 동료들은 둘을 번갈아 보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혜은 씨. 무슨 일이야?" "저 놈은 정말 아니야!" 탈의실에 들어온 동료들은 혜은을 붙잡고 얘기했다. "그런 사이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혜은은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그녀의 동료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한동안 얘기를 했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는 소현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혜은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조용히 바라봤다.


"걱정 마세요. 그런 관계 아니에요." 동료들의 걱정에 일일이 답변하며 옷을 갈아입은 혜은은 탈의실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혜은 씨. 잠시만요." 그녀가 나가려는 순간 소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팀장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현을 바라봤다. "잠깐이면 돼요." 그녀는 탈의실에서 나가려는 혜은을 아무도 없는 구석으로 불렀다.


"이런 말을 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소현은 조금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사장하고 어울렸던 지구인 중 끝이 좋았던 지구인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러웠지만 혜은의 얼굴을 흔들림 없이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서현이 미래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더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요." 혜은은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진심을 담아 얘기하는 소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혜은에게는 조언보다는 충고로 느껴졌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차분하게 답변했다.


"... 그래요. 혹시라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거나 너무 힘들면 말해줘요." 소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항상 감사합니다." 혜은은 그녀에게 인사를 한 뒤 탈의실을 나섰다.


"왜 이렇게 늦었어?" 윤식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 오늘은 늦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며 짧게 해 주세요." 여전히 차가운 혜은의 말에 그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연락을 받았으면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 아니었어?" 혜은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락은 받겠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좋아. 그래. 보는 눈들도 있을 테니까." 그는 혜은의 옆을 지나가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앞으로 홀에서 서빙 업무에서 빼줄게. 이제 나하고 사귀니까 서빙하는 것은 좀 그렇지." 그는 혜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손길에 소름이 돋았지만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아내리며 말했다. "업무 조정이야 사장님 마음이지만 홀이 조금 덜 바쁠 때 변경해 주세요." 윤식은 혜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이번 행사가 끝나면 얘기하지."


"감사합니다." 혜은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그를 뒤로하고 좁은 통로를 지나갔다. 통로 안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해 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그의 저열한 말장난에 욕설을 뱉고 싶었지만 그녀는 딸을 생각하며 잠시 멈춰 돌아서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윤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만족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좁은 통로를 벗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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