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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Nov 25. 2023

서현의 나날.

41화. 과거. (37)

유리창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서현은 조금과 완전히 달라진 풍경을 감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 노력했다.


며칠 전 늦은 밤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학교에 다닐 거야. 등교 준비는 엄마가 해둘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서현은 놀라며 궁금한 점에 대해 여쭈어봤지만 엄마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엄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엄마는 사라지고 오직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가는 엄마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대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다 뭐예요?" 며칠 뒤 서현은 거실 의자와 탁상에 준비된 무채색의 고급스러운 원피스와 구 인류에서 사용하던 가죽 가방 그리고 고급 필기구를 보며 말했다. 놀라 큰 소리로 묻는 서현과 다르게 혜은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어서 옷 입고 학용품 챙겨. 역까지 데려다줄게."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서현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며 원피스를 입고 물건을 챙겼다. 그녀가 등교 준비를 마치자 혜은은 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둘러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서현은 허둥대며 엄마를 쫓아갔다.


1층에는 먼저 내려간 엄마와 '그'가 얘기를 나누며 서현을 바라봤다. "빨리 와." 여전히 엄마는 무표정하게 서현을 재촉했다. 얼굴은 찡그린 채 엄마 옆에 서 있는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고급 차량에 탑승했다. 서현은 고개를 좌, 우로 흔들며 그가 탄 차량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엄마가 서현을 불렀다. "서현아. 그 차가 아니라 이쪽에 있는 차에 타."


엄마의 말에 서현은 고개를 돌려 옆의 차를 봤다. 그 차량은 평범한 주변부 지구인이 평생 탑승하지 못할 만큼 훌륭했지만 '그'가 탄 차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차량이었다. 그 순간 서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마음속으로 그를 욕했지만, 전학을 시켜준 것을 봐서 예전처럼 투덜거리지 않고 차량에 탑승했다.


"엄마도 어서 오세요." 뒷 좌석에 앉은 서현은 엄마를 불렀지만 이미 엄마는 그가 탑승한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서현은 깊게 한숨을 깊게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은채 잠들었다.


"서현아. 서현아!"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잠에서 깨어난 서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도착했어요?" 그런 딸의 모습을 본 혜은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이동 차량에서 잠들지 마. 알았어?" 그녀는 딸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왜요?" 서현은 차량에서 내리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하지만 혜은은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어서 가. 잘 다녀와." 혜은은 많은 지구인들이 들어가는 출입문을 가리켰다. 서현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출입문으로 향했다.


입장을 기다리며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엄마는 '그'와 함께 떠난 뛰었다. "뭐가 급하셔서.." 서현은 섭섭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조금씩 출입문 안쪽으로 향했다. 입구에 다다르니 검표원이 서현을 훑어봤다. 특히 엄마가 원피스에 달아준 고급스러운 배지를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통과."


"열차가 떠나기 전에 탑승하세요." 처음 역에 방문한 서현은 열차에 탑승하지 못할 까봐 걱정하며 서둘렀다. 하지만 역은 넓고 화려했다. 끝없이 펼쳐진 출입구를 지나며 초조해진 서현은 허둥지둥 미리 작성한 번호와 일치하는 차량을 찾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서현은 화려한 역사 내부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곳의 지구인들은 느긋하고 우아하게 행동했다. 자신과 같이 허중지둥 거리는 지구인은 없었다. 순간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열감이 느껴졌다. "오늘 처음이니까. 괜찮아." 그녀는 열차를 찾는데 다시 집중하며 말했다.


그녀가 역사 내부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던 아치형 통로와 돔 형식의 구 인류 고대 문명의 건축물이 펼쳐졌다. 그녀는 직접 화려하고 웅장한 구 인류의 건축물과 문화를 경험할 수 없던 그녀에게 이곳은 중심부에 대한 환상을 더욱 심어줬다. "할 수 있어. 중심부에 갈 수 있어." 서현은 중심부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 다짐했다.

"저기다." 열차를 찾아 부지런히 걷던 서현의 눈에 짙은 검은색의 지붕과 짙은 녹색으로 칠해진 몸통의 열차가 눈에 들어왔다. "휴.. 드디어 찾았네."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서현은 한숨을 쉬며 열차를 자세히 살펴봤다. 검은색과 녹색이 섞인 듯한 바탕 위에 짙은 황금색의 식물이 멋들어지게 열차를 둘러쌌고 식물들 사이로 구 인류의 명언들이 황금색으로 새겨있었다.


"잠시만요." 가까운 곳에서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반짝이며 정신없이 열차를 감상하던 서현은 놀라며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무채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던 여성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뒤 열차에 올랐다. 서현의 눈에는 자기와 같은 열차를 이용하는 지구인에게 감탄하며 허둥지둥 열차에 올랐다.


"열심히 해야지. 할 수 있어." 서현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마음속으로 계속 같은 반복 했다.


"오늘 팀장님 출근 안 하셨어?" "응. 출근 안 하셨어. 어디 아프신가?" 그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던 소현이 보이지 않자 직원들은 당황스러워하며 영업 준비를 했다. "안녕하세요." 혜은은 사무실로 올라가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다수의 직원들은 그녀를 힐끗 본 뒤 일을 계속했다. 혜은은 예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런 말 없이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다만 매일 먼 곳에서라도 인사를 해주던 소현이 안 보여 걱정되었다.


"아. 이제 됐지? 서현이도 전학 가고 그 곰탱이도 처리했고." 서현을 데려다주고 로스터리 앞까지 함께 온 그들은 직원들의 눈을 피해 사무실에 따로 올라왔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윤식은 이런 방법을 고집했다. "팀장님을 처리하셨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혜은은 조금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 뭐. 나한테 그런 식으로 행동했으니까 내보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는 살짝 인상을 구긴 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팀장님은 로스터리에 꼭 필요한 직원이에요. 이 사실을 알면 다른 직원들도 그만둘 수 있어요." 혜은은 당황해하면서도 자신 때문에 해고당한 소현에 대한 미안함에 때문에 그녀를 옹호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뭐. 다른 직원 뽑으면 되겠지. 다시는 그 곰탱이에 대해 말하지 마." 혜은은 단호한 그의 모습에 조용히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힘들 때마다 도와주었고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딸을 위해 돌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더 걱정하고 아껴줬다.


그녀는 유일하게 꾸미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받아줬다.


그녀는..


혜은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한동안 그가 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정말 그녀는 혼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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