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삶, 위로를 달리는 아름다운 주행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를 보고

by bang
36e754027bdbe5dbf9f8b4c7458168acc4cbb1b2.jpeg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
상처와 삶, 위로를 달리는 아름다운 주행


참으로 깊은 영화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끼리가 사실은 초원에서 가장 강력하듯,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지닌 무게감과 힘은 사뭇 놀랍다. 화려한 기교나 눈을 사로잡는 꾸밈은 없지만, 본질적인 이야기를 쌓는데 집중한다. 이 정공법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무너지지 않는 울림을 제공한다.

느리지만, 꾸준하다. 각본과 연출은 물론이고 음악, 촬영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특히, 카세트테이프와 자동차 바퀴가 교차되는 장면, 가후쿠와 마사키가 함께 차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본질은 '공유'라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공유하는지에 집중하다 보면, 그들의 관계 속에 숨겨져 있던 고민들이 보인다.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 오토와 모든 걸 공유한다. 부부로서의 삶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딸을 향한 마음을 나눈다. 다카쓰키는 이 부부가 둘 다 "너무 세세해서 전달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공유한다고 이야기한다. 오토는 테이프 속 목소리로 가후쿠의 운전에 동행하고, 정사 이후 펼쳐지는 오토의 즉흥적인 스토리는 이를 공유하는 가후쿠에 의해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들이 공유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오토의 혼외관계이다. 가후쿠는 혼외관계를 목격하고도, 방관한다. 이를 공유하는 순간 무너져버릴 것들이 두려워, 공유를 거부한다.

미사키는 가후쿠와 차량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그러나 오토와는 달리, 동등하지 않은 위치에서 차량을 공유한다. 미사키는 운전을 하고, 가후쿠는 뒷자리에서 미사키를 지켜보는 상하관계가 형성된다. 대화보다는 테이프 속 오토의 목소리가 차량을 채우고, 둘은 공유보다는 단순한 고용/피고용인 또는 동승 관계로 지낸다. 이러한 관계는 둘이 대화가 시작되며 바뀐다. 뒷좌석에서 미사키를 내려다보던 가후쿠는 어느 순간 조수석으로 이동하고, 테이프 속 오토의 목소리보다는 둘의 대화가 차를 채운다. 이후 그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게 되고, 같은 상처를 함께 극복하고자 여행을 떠나는 관계가 된다.

다카쓰키 고지는 오토를 사랑했다. 혼외관계를 맺고도 그는 가후쿠에게 나타난다. 초반부에는 가후쿠가 연출하는 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업무적 공유만이 존재하지만,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접근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오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다카쓰키는 '그녀를 사랑했다'라고 고백한다. 가후쿠는 모르던 이야기의 결말도 이야기해준다. 가후쿠조차 공유하지 못한 것마저 공유한 다카쓰키를 보며 가후쿠의 감정은 요동친다.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과 공유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이외에도 윤수와 유나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모두가 각각의 아픔, 사랑, 과거를 공유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본질은 '공유'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아픔이 있다. 그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가후쿠는 오토를 잃었고, 마사키는 어머니(혹은 그녀의 다중인격)를 잃었다. 유나는 목소리를 잃었고, 다카쓰키는 화를 참지 못하고 본인의 커리어를 잃는다. 그러나 모두 살아간다. 가후쿠는 자신이 사랑하는 무대에서, 마사키는 운전석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모두 그 아픔을 극복한다. 가후쿠와 마사키는 산사태가 일어난 집 터에서, 비로소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는다. 유나는 윤수의 사랑으로 장애라는 상처를 치유받고, 공유되지 않는 언어이지만 무대에서 가후쿠를 위로하기에 이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상처받고, 그럼에도 살아가며, 그 상처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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