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을 보고
★★★☆
선과 악, 복수와 희망 사이에서 배트맨의 끈적한 첫걸음
끈적하다. 보통의 히어로 영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영화관 좌석이 끈적한 늪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무려 세 시간동안. 세 시간동안 영화는 아주 느릿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그 끈적함을 즐길 것이고, 누군가는 답답해 못 견딜 것이다. 이 작품이 "잘 만들어졌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재미있다"고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영화는 탐정 배트맨의 수사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며 진행된다. 게임에서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퀘스트가 주어지듯이, 연속된 리들러의 수수께끼를 따라간다. 그러나 단순한 나열은 아니다. 사건이 엮이고, 쌓이면서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가 형성된다. 한층 한층 쌓여가는 긴장감이 압도적이다. 느리지만 빠르다. 여유롭지만 급해진다. 결국, 즐기기 나름이다.
배트맨은 스스로를 '복수'라고 부른다. 직접 악을 처단하는 것이 정의이고, 불살(不殺) 원칙을 지키지만 있는 힘껏 사람들을 두들겨 팬다. 리들러는 악이지만, 그가 죽인 부패 공무원들도 악이다. 본인만이 선이고, 본인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에 금이 간다. 선이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비밀은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알프레드의 해명은 선과 악은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악을 대변하는 자경단원마저 스스로를 "복수"라고 칭하는 것을 보며, 브루스 웨인은 결국 복수가 아닌 희망을 선택한다.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내적 갈등이 훌륭하게 풀어낸다. 3부작의 첫 장이니만큼 캐릭터들의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짐 고든과 리들러는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치만 캣 우머, 펭귄 등은 아쉽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생각하고 눈 감아줄 만 하다.
촬영은 정말 좋다. 아웃포커싱과 역광 실루엣 구도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배트맨의 묵직함을 보여주는 코스튬 디자인과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그걸 완성시키는 음악은 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눈과 귀과 즐겁다.
중간부에서 지루한 순간이 있지만, 이 정도면 3시간을 잘 이끌어나갔다. 충분히 속편을 기대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