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신중함을 이내 뒤덮는 아흔아홉 가지 성급함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를 보고

by bang
20220724220359_1UM2e0FSby.jpg


★★★
한 가지 신중함을 이내 뒤덮는 아흔아홉 가지 성급함



영원한 블랙 팬서 채드윅 보스만의 명복을 빈다.


채드윅 보스만이었기에 가능한 시리즈인 만큼, 그를 향한 헌사로 영화가 시작된다. 인상적이다. 오프닝 시퀀스의 촬영과 소품, 의상은 많은 노력이 들어간 장면으로 보인다. 근데 너무 성급하게 지나간다. 번지르르한 겉에 감명받고, 그 속을 들여다볼 때쯤 끝이 난다. '벌써?'라는 물음에 영화는 "just move on"이라며 나아가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성급한데, 내내 겁겁하다. 아틀란티스의 첫 등장은 인상적이지만, 이내 등장하는 리리 윌리엄스는 대강 쓴 스토리의 전형이다. '짠'하고 등장한 천재 소녀 이야기는 PC라는 목적을 채우기 위한 값싼 수단일 뿐이다. 이 소녀가 없어도 스토리에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미국의 기술로 비브라늄을 찾고, 이를 지상 국가와 해저 국가의 갈등으로 풀어내도 충분하다. 그 속에서 와칸다의 역할을 고민했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물론 인상적인 인물도 많다. 오빠와 어머니를 잃으며 성장하는 슈리의 모습은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신중함이다. 누군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성급한 등장이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특히 슈리의 성장을 이끄는 라몬다 여왕은 트찰라의 공백을 여유 있게 채우면서도 영화의 중심을 지킨다. 아름다운 희생으로 슈리의 성장이 멋지게 마무리될 듯했지만,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거다. 잘 성장하던 슈리는 블랙 팬서가 되자마자 복수에 눈이 멀어 성급하게 전쟁을 결정한다. '잠깐, 갑자기?' 고민할 틈도 없이 액션 시퀀스가 이어진다. 바다 위 싸움은 신선하고 몇몇 장면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사실 아쿠아맨의 바닷속 싸움이 더 인상적이었다.


반대편의 네이머는 간만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빌런이다. 속도감과 화려함으로 눈을 사로잡으면서도, 한 작품만에 소비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이 비록 일차원적이고 공감되지는 않지만, 빌런은 보기 좋으면 최소한의 몫은 했다고 생각한다. 꽤나 만족스러웠고 기대되는 빌런이다.


슈리와 라몬다 여왕, 네이머를 끝으로 영화의 인상적인 캐릭터는 끝이다. 와칸다 전문가 로스 요원은 역할 없이 비중만 차지한다. 첩보를 제공해주지도, 지상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도 않다가 체포되고 뜬금없이 구조된다. 도라 밀라제의 아네카와 아요는 들러리에 불과하다가 갑자기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PC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오코예의 이야기는 2% 부족하고, 특히 이어지는 코스튬 디자인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인피니티 사가>의 끝 이후 보이는 마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각 효과다. 다행히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의 시각 효과는 전편보다는 낫다. 문제는 디자인이다. 아이언 하트, 미드나잇 앤젤(디자인과 네이밍에 충격을 받아 이름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의 코스튬은 어렸을 때 본 <스파이 키즈> 수준이다. 심각하다.


서사와 액션만이라도 제대로 챙긴 히어로 영화는 중간은 간다. 영웅의 등장과 성장에 공감할 수 있고, 그들이 싸우는 모습이 멋있기만 하면 된다. 이 영화는 둘 다 못 챙기고 말았다. 슈리의 2% 부족한 성장과 아이언 하트의 뜬금없는 등장, 괜찮긴 하지만 멋지지는 않은 액션까지 아쉬움의 연속이다. 이 영화를 끝으로 마블 영화에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주조해내듯 양산하는 영화는 결코 인상적일 수 없다. 어느새인가 마블은 중간조차 못 가는 제작사가 되어버렸다. 진심으로 "와칸다 포에버"를 바라지만, 글쎄다. 영화처럼 성급한 실망이 아니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무리 작고 하찮을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우리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