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반 정도 늦게 극장에 들어가도 놓칠 건 음악뿐

<영웅>을 보고

by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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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 반 정도 늦게 극장에 들어가도 놓칠 건 음악뿐

나는 라면에 대파만 조금 추가하는 것이 좋다. 양파, 계란, 치즈, 베이컨까지 추가한 라면은 잡탕이지 라면이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종종 장르를 혼합한 잡탕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이 있다. 이런 영화는 배우의 연기가 아무리 훌륭하고 음악이 심금을 울려도 소용이 없다. 영화 자체에서 감동을 느끼기 어려워서이다. 안타깝게도 <영웅>은 그런 영화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도 참 좋지만, 그래봤자 잡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머다. 시도 때도 없이 개그 코드를 남발한다. 웃기기라도 하면 모르겠다만, 안 웃긴다. 웃기기 위해 옷도 벗고 능청스러운 연기도 하는데, 진짜 안 웃긴다. 영화의 정서에 공감하려면 제작자가 의도한 정서에 몰입하거나, 관객 나름의 감정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안 웃긴 유머 남발로 인해 많은 장면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울고 있는데 전혀 공감이 안되거나, 인물들은 신나게 춤추는데 전혀 안 신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톤 앤 매너'가 일관성 없이 흘러갈 "만두" 하다.

일관성을 깨는 데에는 편집도 한 몫한다. 라이브 녹음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넘버 중에는 원 테이크 장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야기와 의미 없는 카메라 무빙이 곁들여진 원 테이크가 너무 많다. 설희의 열차 위 노래 장면, 이토 히로부미의 만찬 노래 장면 등에서, 카메라는 의미 없이 배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이게 원 테이크라면, 왜 제작자들이 그토록 멋진 원 테이크 시퀀스를 찍고자 노력하겠는가. 정말이지 이런 원 테이크면 나도 찍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본적인 연출의 섬세함이 참 아쉽다. 영화는 청각 매체가 아니다. 그러니까 넘버에서도 연기가 필요하다. 영화 속 넘버 장면을 보면, 연기가 부재하다.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은 서로를 웃으며 바라보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주먹을 불끈 쥐는 정도의 연기에 그친다. 특별히 촬영에서의 매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위해 넘버를 희생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안중근의 거사라는 큰 줄기를 바탕으로 작은 줄기들이 뻗어 나오는데, 영화 내내 작은 줄기들이 큰 줄기보다 강조된다. 작은 줄기에서 매력이 느껴지면 좋은데, 진주-동하의 사랑 이야기는 설득력 없는 운명론적인 사랑에 불과하고 설희의 이야기도 어색한 CG와 의미 없는 원 테이크로 몰입이 안된다.


'한 시간 반 정도 늦게 들어가도'라고 쓴 이유는 마지막 후반부는 참 괜찮게 보았기 때문이다. 잡탕에서 쓸데없는 재료들을 드러낸 듯하다. 거사 이후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 조마리아의 이야기로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영화가 훨씬 깔끔, 담백해진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정성화 배우와 나문희 배우의 열연에 몰입이 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영화적 몰입인지, 역사적 몰입인지는 의문이긴 하다.


이 영화가 실패한 영화냐 묻는다면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최초로 뮤지컬을 극장에서 필름으로 옮겨왔다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과도한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며 원작의 매력을 유지했다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냐 묻는다면 강하게 부정한다. 평면적이고 과도하게 집약된 2시간이 견디기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감동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영화, 정도로 요약될 정도의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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