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거들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by 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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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은 거들뿐


훌륭한 원작을 가진 영화는 오히려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영화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원작을 사랑하던 이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새로운 이들을 만족시키려다 보면 어느새 산으로 향하기 일쑤다. 그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변주가 중요한 이유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인물과 스토리에서 능수능란한 선택과 집중을 발휘하며 이 난제를 수월하게 해결한다.


영화는 현재보다 과거에 집중한다. 강백호와 서태웅의 현재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를 영화는 송태섭의 과거로 옮긴다. 소개되지 않았던 그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송태섭과 팀원의 관계를 하나하나 다루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플래시백을 통해 송태섭의 과거를 다루고, 현재로 돌아와 코트에서 채치수가 패스를 받으면 이번에는 채치수의 과거를 다루는 식이다. 초점을 맞춘 인물이 6번 정도 바뀌고, 그 속에서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지나친 시·공간 배경 전환은 지루할 법도 하지만 어느 하나 놓치지 않는다. 팀원들의 비중이 잘 조절되어 있으면서도 모두에게 이입이 된다. 주변부 인물들도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무대를 양보한다. 패스가 오가듯 유려하게 진행된다. 현재의 배경을 그 유명한 북산-산왕 경기로 한정한 덕이다.


뛰어난 과거 설명만큼이나 현재 묘사도 압도적이다. 인물들이 등장하는 인트로 시퀀스부터 만화책으로 슬램덩크를 읽던 향수를 떠올리게 하더니, 절정 장면은 채색이 빠진 만화책처럼 연출된다. 과거를 차근차근 다루며 농구 플레이 시퀀스를 조금씩만 보여주더니, 갈증에 미칠 것 같을 때 아낌없이 베푼다.


슬램덩크는 결국 농구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농구가 아닌, 팀원들의 성장기를 다룬다. 원작은 거들뿐, 새로운 이야기가 마음껏 펼쳐지도록 양보한다. 산왕의 압박 수비에 당하기만 하던 송태섭이 결국 그들을 뚫어내듯, 원작이 주는 압박감을 기필코 뚫어내며 새로운 쾌감을 선사한다. 지나친 배경 전환이 아쉽기는 했지만, 원작을 알든 모르든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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