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보고
★★★★
시대를 담거나 시대를 초월하거나, 동시에 하거나
'불후의 명작'이라는 말에서 보이듯, 명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어느 시대에 보아도 좋아야 명작이다. 동시에 작품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이다. 다시 말해서, 명작은 특정 시대적 배경이나 정신을 담고 있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유발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가 '현재'의 시대적 배경을 담으면서 명작이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개봉하는 시점의 시대상을 그려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불가능하다. 특정한 아이디어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에서 장면을 찍는 데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거다.
그런데 우연히, 정말 우연히 영화가 현재의 시대상을 담게 된다면 어떨까.
이 영화는 그런 작품이다. "어느 미치광이 대통령이 나라를 분열시키고 내전을 벌인다"는 플롯, 그닥 생소하지는 않다. 우연히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과 겹친다.
분명히 하고픈 건 이 영화가 정치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 메시지나 정치계의 갈등을 전하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정치가 이 영화의 배경을 제공하는 것은 맞지만,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종군 기자가 보여주는 저널리즘 정신이다. 정치보다 더 날카로운 펜, 총보다 강력한 카메라 셔터를 그린 영화다.
공보정훈장교라는 내 배경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총 대신 카메라'를 붙들고 훈련에 나서는 사람들이었기에, 전쟁통에도 뉴스, 저널리즘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일 수 있다. 게다가 그 경력을 살려 홍보 분야에서 일하면서 저널리즘의 장場에서 매일 살아가기에 이런 감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정치를 빼놓고 이 영화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이 영화에서 결코 정치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
이 작품은 배경 묘사가 너무 훌륭하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힘을 합쳐 연합군을 이룬다는 설정(우리나라로 치면 영-호남 연합군쯤 되는 거니까)도 재미있고, 리와 제시가 처음 만나는 테러 현장에서의 설정들도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영화의 일부 전개를 책임지는 스틸컷들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특히 제시의 흑백 사진들은 퓰리처 상을 받아야 할 정도다.
사운드도 빼놓을 수 없다. 군에서 사격을 배울 때, '발사되는지 모를 정도로'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라고 가르친다. 이 영화의 사격이 그렇다. 발사되는지 모를 정도로 방심하고 있을 때, 격발 소리가 관객을 놀라게 한다. 기믹으로써 놀라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전쟁 현장에서 총소리를 듣는 듯 놀라게 한다.
다만,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자동차 바꿔 타기 장면의 아쉬움이 크다.
그 뒤에 시퀀스는 가히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가 강한 시퀀스 중 하나이다. 그 시퀀스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 바꿔 타기 장면을 말 그대로 '끼워 넣은' 것 같다. 문제는 끼워 맞춘 것 같다는 의도가 훤히 보여 더 별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막판의 워싱턴 DC 시가전은 가히 압도적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흐려질 정도로 현실적이고 엄청난 몰입감을 자랑한다. 멘붕에 빠져있던 리의 각성도 캐릭터성과 일치하는 듯하다.
아, 전투하니 생각나는 중간 게릴라전도 너무나 좋았다; 특히 BGM이 너무 좋다(De La Soul - Say No Go).
또 백악관에 침투하고 나서의 시퀀스는 하나의 종합 예술 같다. 군인들의 동선, 종군기자의 동선, 카메라의 동선이 혼연일체가 되어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에서 펜 기자가 비로소 영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살려달라"는 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았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