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22번째 인터뷰이는 현재 영상편집자로 일하고 계시는 물개공주 님입니다.
1. 인물소개
2. 승무원을 꿈꾸었습니다.
3. 오늘 여기의 나 : 영상편집자가 되다!
4. 삶에 대한 평가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6. 기타질문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8. 마침
이름(별명) : 물개공주
나이 : 29세
성별 : 여성
학력 : 학사 / 항공서비스과
경제력 : 밥 먹을 때 고민하지 않을 정도. 혼자 살기 나쁘지 않지만 2인 가구 이상 되면 힘들어질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97년생 여자, 물개공주입니다.
대학은 항공서비스과를 나왔고요, 지금은 영상편집자 일을 하고 있어요.
(영상편집자로서의 경제력은 어느 정도 인가요?)
그냥 평범한 2030 수준인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먹여 살리고 밥 먹을 때 고민하지 않을 정도?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2인 가구 이상 되면 힘들어질 것 같다.
저는 아침에 출근을 합니다. 일을 하죠. 11시 40분이 밥 시간이고요. 점심 맛있게 먹고 1시부터 이제 또 일을 하고 7시 퇴근이에요. 10시 출근이니까. 7시에 퇴근을 해서 집에 갑니다. 그러고 나서 외주 일이 있으면 외주 영상편집을 하고, 없으면 밥을 먹고 씻고 유튜브를 봐요. 아니면은 최근에는 런닝을 합니다.
최근에 마라톤 대회도 나갔어요.[뿌듯]
(아주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시군요!)
사실 살을 빼려고 시작했는데 살이 잘 빠지진 않고 식욕만 늘어서 그게 걱정이에요.[웃음] 그래도 좀 더 건강해졌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승무원이 꿈이었어요.
(어째서 승무원을 꿈꾸게 되셨나요?)
그때는 (승무원이) 너무 예뻐 보였어요. 그리고 여행 다니는 게 너무 좋았어요.
어릴 적의 저에겐 승무원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돈도 벌다니 럭키비키잖아!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천안에서 강남으로 학원 다니면서 그렇게 대입을 준비했어요. 한 2~3년 정도 강남으로 계속 매주 왔다 갔다 하면서 준비를 했고 운이 좋게 항공서비스과에 합격을 했어요.
합격을 해서 너무 좋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현실이 보이더라고요.
항공과가 예쁜 애들이 일단 많으니까 기가 많이 죽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 말랐지만 교수님들이 저한테 ‘너는 살만 빼면 된다.’는 말을 되게 많이 하셨고, 외적인 걸 많이 보니까 ‘내가 자질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아요.
지도 교수님이 학교에 있는 카페 사장님한테 ‘얘한테는 라떼 팔지 말고 아메리카노만 팔아라.’ 그런 말도 하시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대학 졸업할 때쯤에 취업을 하잖아요. 제가 서류까지는 어떻게 다 통과하는데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 직업이랑 안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항사 쪽은 외적인 조건을 거의 안 본다는데, 외항사는 생각해 보신 적 없나요?)
그때는 국내 항공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한테 한국 벗어나서 사는 건 좀 무리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그냥 그렇게 하다가 백수로 지냈어요.
(졸업 후 계속 실패를 하니까 좌절이 좀 컸던 거군요.)
한 6개월 1년 정도 백수로 계속 지내면서 알바를 좀 많이 하면서 지냈는데 그때가 진짜 제 인생에서 제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 같아요. 왜냐하면, 제 주변 제일 친한 대학교 때 친구들이 다 (승무원이) 된 거예요.
(다 됐는데 나만 안되면 더 슬프죠.)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물개공주랑 친하게 지내면 합격한다.
그때 너무 마음의 상처가 됐어요.
난 진짜 안 되나 보다. 다른 친구들은 키도 크고 더 날씬하고 더 예쁜데 나는 코 때문에 안 되는 거 아닐까? 내 얼굴이 동그래서 안 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하면서 되게 우울하게 지냈어요.
그러던 중에 저를 무척 예뻐하시던 교수님께서 저에게 지상직을 추천해주신 거예요. 이런 직무도 있으니 한번 도전해 봐라.
바로 ‘네, 알겠습니다’ 했어요. 왜냐면은 그 근처라도 가고 싶었거든요. 항공기에서 일하는 승무원이 되고 싶었지만 그 직업을 못 하니까. 그 근처에서라도 있고 싶다.
(얼마나 간절했을지.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다 지난 얘기라서.[웃음]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항공기 승무원 안 하기를) 너무 잘했다 생각하는데 아무튼 지상직은 또 바로 붙더라고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다보니까 오히려 항공기 승무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비행기 타는 게 늘 꿈이었는데, 그걸 원하지 않게 되신 건가요?)
네.
저는 넓은 데서 일을 하는데 항공기를 타면 좁은 데서 계속 갇혀 있어야 되기도 하고.
또 일하면서 배우거나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아니라 나를 소모시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좋아해서 비자 관련된 규정 업데이트되는 걸 공부하는 것도 좋았어요. 지상직에 대한 매력을 너무 느낀 거예요.
(지상직의 매력을 조금 더 소개해주신다면?)
공항은 항상 적정 온도가 유지된다는 점! [웃음]
(일하는 환경이) 쾌적해요. 온도 습도 모두 완벽했어요. 조금 어두운 거 빼고는 너무 좋았고. 깨끗하고, 또 사람들이 항상 웃고 있어요.
공항에 오는 사람들은 여행을 가려고 온 거다 보니까 다들 기분이 좋은 상태로 저를 만나요.
또 저는 굉장히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인데, 미친 듯이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딱 집에서 와서 쓰러져 잘 때도 좋았어요.
그냥 그렇게 일을 하는 게 너무 좋았고. 당시 같이 일하던 동기들도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조금 웃긴 얘기인데 일반 승객들이 입국할 때 대기 줄이 엄청 길잖아요. 근데 직원들은 직원 전용 통로로 간단 말이에요. 그때 너무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나는 저렇게 안 기다려도 되니까 너무 좋다. 물론 일하러 가는 거긴 하지만 뭔가 괜히 특혜를 받는 기분이고. 넓은 공항에서 빨리 집에 갈 수 있는 나만의 루트를 개발하는 것도 혼자 방탈출 하는 것 같고.
저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즐겁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일을 그만두신 건가요?)
코로나 때문에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경영이 악화되다보니 무급 휴가가 계속 됐어요.
직접적으로 퇴사하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어요. 근데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무급 상태였어요. 알바는 해도 되는데 4대 보험 잡히는 일은 하지 마라, 이런 식이었고.
(당시 여행 관련 업계의 상황이 정말 안 좋았죠.)
그쵸. 일을 하는데 비행기 편수가 점점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는 거예요.
회사 스케줄이 보통 엑셀로 나오는데 진짜 촘촘해서 그냥은 보이질 않아요. 확대를 계속 해야 내 스케줄이 보였는데 그 칸이 점점 더 넓어져서 나중에는 확대하지 않아도 한눈에 딱 보이는 거예요.
전광판에 가득 차 있던 플라잇 스케줄도 하나둘 캔슬 되더니 없어져요.
원래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전쟁이 나도 공항은 굴러간다. 누군가는 타고 내려야하니까.
그래서 저는 공항을 안전한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녔는데, 그렇지 않았다. 전염병 한 번에 내 직업이 없어졌다.
(결국엔 한 두어 달 그냥 무급 휴직으로 있다가 다른 길을 찾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마지막 출근 달에 직원들을 조별로 나누어서 첫 번째 달은 A조가 일하고 두 번째 달은 B조가 일하고 이런 식으로 로테이션으로 근무를 돌려줬어요.
저희가 출근해서 하는 일은 그냥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기였거든요. 스케줄이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버티자였는데 소파에 앉아있다가 진로에 대해서 얘기를 나온 거예요.
앞으로 우리 어떡하지, 이거 진짜 금방 안 끝날 것 같다.
그렇게 얘기 하다가 제가 마인드맵 그렸어요.
제 이름을 가운데 쓰고 저에 대해서 적어봤는데 그중에 제가 하고 싶은 게 레터링 케이크 배우는 거랑 영상 편집 등 뭐가 많았어요.
그중에서 내 성향이랑 잘 맞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을 했죠.
제가 평소에도 유튜브를 되게 많이 보거든요. 저 유튜브 5천 시간 넘게 봤어요.
그렇게 생각하다가 영상 쪽이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해보고 싶다! 해서 그냥 무작정 그날 사직서 그냥 썼어요.
(엄청난 추진력인데요?!)
근데 제가 되게 안정적인 성향이거든요. 그래서 회사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불러주겠다는 한 줄을 남겨놓고 퇴사를 했습니다.
고향에 와서 놀았어요.
저는 제 20대 초반에는 술 먹은 기억도 거의 없고 친구를 만난 기억도 없어요.
취직하고 나서는 일 집 일 집 동기들 만나고 집 가서 자고 일 갔다가 와서 자고.
그런 삶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도 이제 친구를 좀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는 친구들은 다 그 시기에 연락이 다시 닿아서 인연이 이어진 친구들 밖에 없어요. 제가 일이 바쁘니까 먼저 연락을 끊다시피 됐는데, 제가 퇴사하고 다시 연락했을 때 받아줘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있고, 그게 고맙죠.
저는 그 친구들 덕분에 힘을 얻어서 컴퓨터를 사게 됩니다.
(영상편집을 위한 컴퓨터였나요?)
맞아요. 그걸 사서 일단 독학으로 영상편집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유튜브 보면서 막 해보다가 이거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을 좀 전문적인 곳에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제가 좋아하는 게임 스트리머가 편집자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심지어 이 과정을 수료하면 이 스트리머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이 스트리머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제가 유튜브에 쓴 5천 시간 중 1천 시간은 그 분 영상 보느라 쓴 시간이에요.
나 정말 저 사람 만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저 사람 편집자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그분이 운영하는 아카데미 교육을 수강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코로나가 더 심해져서 그 수료식을 현장에서 안 한대요.
(세상에. 수료할 때 스트리머를 못 만났군요!)
네. 유튜버를 못 만났어요.
근데 거기서 소중한 인연을 하나 얻게 됩니다. 제가 편집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분이에요.
당시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오프라인으로 상담을 1회 할 수 있었어요.
제 진로상담이나 편집할 때 궁금한 거라던가 그런 걸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딱 1번 있었는데, 제가 그때 정말 간절했거든요. 제 전공으로 여행사를 갈 수도 없고. 그냥 관광 항공 이쪽이 다 그냥 (코로나 때문에 망해서) 진퇴양난이었으니까. 나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 절박하다, 해서 제가 그날 질문지를 엄청 적어갔어요.
근데 그분이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셨고, 제가 그분한테 이제 과외를 받게 돼요.
당시에는 아카데미에서 들을 수 있는 수업 마스터 코스까지 다 들어버렸거든요. 심화 과정까지 다 듣고 더 이상 들을 강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분한테 과외를 받게 됩니다. 그때 되게 많은 가르침 받았어요.
그렇게 해서 이제 좀 어딘가 지원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영상편집자로서 처음으로 취업시장에 발을 들이밀게 된 거군요.)
네. 하지만 여러 곳에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어요.
떨어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제가 아직 초보라 작업 속도도 되게 더디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아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또 한번 2차 고비가 와요.
항상 직업이 바뀔 때는 고민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더라고요.
(포기할지 말지, 그 기로에 섰던 거군요.)
근데 그때 당시 아는 분이 바(bar)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 바 사장님이 주류 관련 콘텐츠로 유튜브를 시작하신다는 거예요. 제가 그걸 정말 헐값에 도와드렸어요.
그때 금전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퇴사를 한 지 거의 2년째 되던 시기인데, 영상 편집도 헐값에 해주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아직은 초보니까 요령도 없어서 진짜 그래픽 하나하나 다 만들고 그러느라 작업에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그러니까 일을 하고 살면 살수록 마이너스인 거예요. 제 인생이.
그래서 안 되겠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겠다. 해서 또 이곳저곳 찔러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까지 3~4군데 붙었어요. 힘들긴 했지만 주류 콘텐츠 유튜브 편집을 한 게 제 포트폴리오가 된 거였죠.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취직하신 거군요.)
네. 근데 제가 지금 회사에 취직한지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유명한 방송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합격했다고.
(유명 방송사면 좋은 커리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현재의 회사를 다니고 계신 이유가 있나요?)
저도 고민을 했죠. 돈도 많이 주고 복지도 좋고, 나한테 좋은 커리어가 될 수 있으니까.
근데 대기업은 제가 당장 편집을 못 잡아요. 그러니까 밑에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해야 해요. 제가 편집을 하려면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넘게 막내 생활을 해야 되니까 저는 그때 그게 너무 싫었어요.
당시에는 제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고, 나는 나이가 있으니까 빨리 편집을 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회사를 다니자.
(잘한 것 같아요?)
네. 저는 후회 안 해요. 저는 여기서 많이 배웠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
만일 거기(방송국) 다녔으면 저는 신경쇠약으로 이미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것 같아요. 큰 회사일수록 또 텃세도 심하고 하니까.
크게 불만은 없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은 느낌? 그냥 딱 중간 정도.
(딱히 행복과 불행을 가르지 않고 그냥 평범하고 무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제 인생 모토가 그거예요. 길게 굴곡 없이 쭉 가는 거.[웃음]
(그렇다면 목표한 대로 가늘고 굴곡 없게 지내고 있는 거네요!)
제가 상상하는 걸 되게 좋아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내가 관찰 카메라 같은 거를 달고 <나혼자 산다>처럼 남들한테 내 생활을 공개했을 때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생각해 봤는데, 그냥 평범하다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엔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요.
그래서 뭐 시청률은 많이 안 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평소에[웃음]
남들의 평가, 알 바인가 싶어요.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구요.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니까요.
(딱히 타인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옛날에는 사람들한테 되게 관심이 많았거든요. 저 사람은 뭐하지? 무슨 생각하지?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는데, 요새는 그것보다는 제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좀 더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고 또 그러려고 노력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이 딱히 궁금하지 않은 거군요.)
네. 또 그냥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느낌이에요.
(지금 물개공주님의 일기를 모두에게 이야기해주고 계시는데 그건 괜찮으신가요?)
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괜찮아요.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남들한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거에 가까운 거 같아요.
제 인생 최종 목표는 자다가 죽는 거거든요.
(호상을 꿈꾸고 계시네요.)
네. 그래서 가늘고 길게 건강하게 안 아프고 쭉 이렇게 똑같은 형태로 살다가 진짜 호상(을 맞이하고 싶다)
(인터뷰를 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질문했을 때 죽음을 얘기하신 분은 처음이에요.)
진짜요? 네 다들 그 생각하고 살 줄 알았는데.
어떻게 죽을지를 정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은 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렇게 호상을 누리기까지 일단 어떻게 살아야 될진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굉장히 성공하고 화려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게 아니거든요.
소박하고 지금처럼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면서, 그니까 멘탈도 건강하고 몸도 건강해야겠죠? 그래서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런닝도 시도해 보는 거고요.
제 멘탈과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호상을 하려면 덕을 많이 쌓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덕도 많이 쌓고 그러다가 되게 예쁘게 죽는 삶을 꿈꾸고 있어요.
(물개공준님의 웰다잉을 향한 삶을 응원합니다!)
후회한 거는 대학을 항공과로 간 것.
(그렇지만 지상직으로 일을 할 때 너무 즐거웠다고 하셨잖아요.)
지상직은 굳이 그 과를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너무 그 꿈에 사로잡혀서 거기 갇혀 있었던 건 아닌가.
그리고 그 과를 가고 그 직업을 준비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때는 어렸을 때니까 가치관이 흔들리기 되게 쉽잖아요. 그래서 외적인 게 다라고 생각했어요. 예쁜 옷 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되게 나이답지 않은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아서 저는 그때가 제일 후회스러워요.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대학생활 하고 했으면 어땠을까?
(꽃다운 시간을 너무 허튼 것에 좀 허비한 느낌인 거군요.)
네. 직업적인거랑 외적인 거에 꽂혀가지고 그렇게만 살았던 거.
학교에서 아예 술을 못 마시게 했어요. 그니까 술 게임 같은 것도 전혀 모르고.
또 보통 대학생들은 자기가 시간표를 짜고 수업을 듣는데, 저희는 조교님이 아예 스케줄 다 짜줬어요. 반도 아예 A반 B반 C반 나뉘어 있고, 1학년 A반은 이 수업만 들어야 돼. B반은 이 수업만 이렇게 들어야 돼. 이런 것까지 다 통제를 하던 그런 곳이었어서.
대학 생활에 대한 자유로움, 성인이 된 것에 대한 뭐 이런 거 느껴본 적도 없고 재미있는 기억도 없고.
(억압되고 잘못된 가치관을 나에게 심어준 시간이었기 때문에 내가 이 과가 아니라 다른 과를 갔었으면 하는 후회가 내 인생에 가장 크게 남는다 라는 것이군요.)
네.
퇴사하기 직전에 저에 대해서 적어본 거, 그게 제일 잘한 것 같아요.
(퇴사하기 전에 내가 나에 대해서 지금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이 정말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때 확실하게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를 정한 게 또 그 시기였어요.
네. 저에 대해서 그때라도 파악했던 게 지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고 싶어요.
(왜 하고 싶으신가요?)
결혼은 그냥 하고 싶어요.
저는 안정적인 삶을 꿈꾸기 때문에 (결혼이 제 삶에) 안정을 한 스푼 더 해 줄 것 같아요.
아기도 갖고 싶습니다.
(어째서인가요?)
귀여워서?[웃음]
(근데 안정적인 삶을 꿈꾸신다고 했는데 오히려 결혼과 출산은 굉장히 불안정적이지 않나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안정적인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
이 세상에 저의 편이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잖아요.
저는 결혼한다고 인생이 망한다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내 편이 생기고 끈끈한 울타리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그게 되게 좋다고 생각하고, 또 아이가 인생의 걸림돌이 되고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제 인생의 목표가 성공하고 화려하게 사는 삶이 아니라 되게 평범하게, 가늘고 길게 사는 거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저는 동생이 2명 있거든요. 그렇게 복닥복닥하게 사는 게 되게 좋았어요.
(또 어쩌면 영상 편집이라는 일이 회사를 나온다고 해서 못하는 일이 아니니까 경력 단절과 같은 두려움도 적을 거 같습니다.)
맞아요. 이 직업 선택한 이유 중에는 그것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물개공주 님께서 더 조금 더 출산이나 결혼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셨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맞아요. 그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어쨌든 (영상편집은) 재택으로라도 할 수 있으니까 아기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저는 사실 이 직업에 대한 크게 미련이 없나 봐요. 영상 편집으로 내가 뭐 업계 탑을 찍어야겠다 이런 생각도 없고.
그냥 지나가는 직업 중에 하나다?
직업을 한번 바꿔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거부감이 없어요. 직업을 바꾸는 거에 대해서.
저는 이해가 돼요. 저도 하루에도 수백 번 마음이 바뀌어요. 결혼하고 싶다, 애기도 낳고 싶다 생각하다가 어느 날은 결혼 굳이 해야하나, 애기 굳이 낳아야하나 이 생각 계속하거든요.
또 남들이 다 하는 얘기 있잖아요. 집값 비싸고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내 통장 내 월급은 그대로고.
그런 이유에 서지 않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상처를 받기 싫어서.
왜냐하면 결혼을 한다 해도 또 이혼할 수도 있잖아요. 아무래도 (관계를 통해 입을 수 있는 상처로부터) 좀 자기를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애초에 결혼같은 걸 안 하겠다는 생각을 하나?
잘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든 안하든) 존중 합니다.
혹시 유튜브 하고 싶으신 분들.
연락 연락주시면 편집 싸게 해드리겠습니다!
(능력있는 편집자가 필요하신 분들은 저 김비실을 통해 연락 주시면 연결을 해드리겠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고요. 정말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