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간격

by 김봄빛

악몽에서 깨어나 불안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일 없단다. 다음엔 딸 차례였다.

“딸, 엄마야. 잘 지내니? 별일 없지?”

“예. 엄마. 엄마도 잘 지내시죠?”

한국에서 지금의 내 생활은 꽤 만족스럽지만 미국에 두고 온 자식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편치 않다.

“항상 조심하고, 요 며칠간은 더 신경 쓰렴. 엄마가 악몽을 꿔서 걱정이 돼.”

“네. 엄마. 조심할게요. 어제 앤드류 엄마가 전화를 해서 내게 조심하라고 했어요. 똑 같은 말을 이틀 연거푸 듣네요”

앤드류는 키가 190cm가 다 되어 가는 귀공자 모습을 한 딸의 대학 친구다. 오래전부터 몇몇이 잘 어울려 다니고 자주 그의 집에 가서 놀더니 앤드류의 엄마와 내 딸은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단다. 제 엄마 나이의 아줌마랑 친구가 되다니 참 ‘미국적’이다.

“앤드류 엄마가 네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스물여덟 살인 앤드류 누나가 며칠 전에 죽었대요.”

“어머나!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졌대?”

“자세한 건 차마 못 물어봤어요. 꽃도 보내고 조만간 만나볼 거예요.”

“그래. 그게 좋겠다. 앤드류도 만나서 잘 위로해주렴. 앤드류와 걔네 엄마에게 내 위로의 말도 함께 전해줘.”


10 년 전쯤 아들의 친구가 죽은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5 학년 때부터 같은 팀으로 로보틱스 게임을 함께 하며 지냈던 친구였다. 내 남편은 그 팀의 코치를 자원했고 다른 부모들의 조력도 만만치 않았다.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까지 휴일은 물론이고 매일 저녁 만나서 연습에 매진했다. 아이들은 잘 해주었고 대회에 나가서는 굵직한 상들도 거머쥐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도 제프가 아픈 아이란 건 알고 있었다. 희귀병을 앓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사망할 건 예견된 일이라고 했다. 제프의 엄마 레이첼은 나보다 5 살 정도 위의 조그만 체구의 아줌마였다. 사업으로 온 세계를 돌며 바쁜 남편 때문에 아픈 제프와 제프의 형 뒷바라지는 늘 레이첼의 몫이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된 어느 겨울 날, 우리는 제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 가족이 검은 옷을 챙겨 입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흰 국화 한 송이를 들고 관이 있는 장례식장 앞쪽으로 다가갈 때 내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관 속에 누워있는 제프는 검은 턱시도에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가슴 위에 놓인 한 손에는 작고 빨간 장난감 차를 쥔 채 잠을 자듯 평화로워 보였다. 매장지는 장례식장 바로 옆이었다. 그의 친구 6 명이 늠름한 모습으로 관을 매고 장례식장을 빠져 나왔다. 이미 파놓은 무덤구덩이에 관을 내려놓을 때 화려한 금속의 관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아들의 관 위로 국화꽃을 던져 넣던 레이첼의 작은 손은 파르르 떨렸다.

그날 밤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파리한 모습으로 장례식 내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고 있던 레이첼의 모습이 내 맘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레이첼이 그녀의 집에서 15분 거리인 제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밤새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승과 저승의 간격은 참으로 가깝고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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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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