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모닝!

by 김봄빛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몸이 아니라 맘이 아파서였다. 남편과 나는 우리의 별난 아들 때문에 훈육 방법의 차이로 자주 의견 충돌이 있었다. 나는 내가 자란 방식을, 남편은 남편이 자란 방식을 고집하는 통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웬만한 건 내게 다 양보하는 남편이었지만 아이들 훈육에 대한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다소 강압적인 내게서 아들을 지켜주고 싶었을 게다.

전날 밤에 아들 문제로 한바탕 갈등이 있었고 말 안 듣는 아들이나, 아들을 싸고도는 남편이나 다 한통속 같아 넌더리가 났다. 이런 일을 겪을 때면 항상 나 혼자만 심각해졌다. 무심한 그들은 잘도 자는데 나만 신경이 곤두서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내가 좋아하는 도로인 US 680을 타고 차를 달리면 기분이 좀 좋아지려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어디쯤에서 꼭꼭 숨어버리고도 싶었다. US 680은 동쪽으로는 미션피크라는 산이 병풍 치듯 둘러서 있고 서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만의 남쪽 끝 부분이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경관을 지닌 남북으로 뻗은, 우리 동네 옆을 지나는 고속도로다. 그 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높다란 고가도로인 인터체인지를 지나야 하는데 그 위에 오르면 조금이나마 하늘과 더 가까워지고 내려다보이는 주위 풍광이 아름답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뒤척거린 내가 도망치듯 집을 나선 건 새벽 동틀 때가 다 되어서였다. 새벽이라 나의 곁을 달리는 차도 없었다. 세상은 솟아오를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젯밤 일과 아들에 대한 염려로 내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동네 길을 벗어나 인터체인지 고가도로에 올라 제일 높은 지점에 도달 했을 때였다. 한순간 내 숨이 멎었다.

동쪽을 둘러친 미션피크 산 위로 반쯤 떠오른 태양은, 내 주위의 온 세상을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남겨둔 채, 조금 높이 올라와 있는 고가도로 위의 ‘나에게만’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막 떠오르는 태양의 노르스름하고도 온화한 빛이었다. 내 차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자 고가도로 난간에 일렬로 내려 앉아 있던 100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새 떼가 내 차에서 가까운 곳부터 도미노처럼 차례로 날아올랐다. 곧 태양이 떠올라 온 세상을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비추겠지만, 그 순간엔 나만 홀로 조용하고 부드러운 햇빛을 받았고 새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군무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아무리 잘 연출된 광고의 한 장면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아름답고 경건하지는 못할 터. 감동의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만인의 하느님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1 대 1의 아주 개인적인 관계였고 가르침이었으며 사랑이고 위로였다.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상황으로 영혼이 아둔한 나를 또 한 번 일깨우셨다. 넌더리나는 숙제가 달갑게 풀어야 할 과제로 바뀌는 찰나였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못 풀 과제는 없었다.


다음 출구에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내 영혼의 키는 한 뼘 자라있었고 해는 어느 사이 제 모습을 다 드러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 앞치마를 둘렀다. 야채를 써는 나무 도마 소리가 경쾌하게 부엌 공기를 살랑이며 흔들어댔다. 잠자던 뒷마당의 견공도 깨어났다. 압력 밥솥의 추가 힘차게 돌며 김을 뿜어대고 된장찌개는 보글보글 정다운 노래를 불렀다. 곧 아이들과 남편이 단잠에서 깨어나 내가 차린 밥상에 둘러앉아 하루를 시작할 참이었다. 살아있음이요, 행복함이었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해석이란다. 새벽에 있었던 일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다. 가족은 다 자고 있었고 깨기 전에 돌아왔으니 그 일은 아무도 몰랐다. 하느님과 나만의 비밀스럽고 달콤한 밀담이었다. 아들이 있고 남편이 있으니 속도 썩고 하는 거 아닌가. 아무도 곁에 없으면 그게 내겐 더 힘든 일일 게다. 이미 밭이 있고 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삐죽삐죽 모난 뿔은 다듬으면 될 터. 그 과정이 힘들다고 투정 부릴 일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날 사랑하시듯 나도 아들을 사랑할 일이었다. 내가 고운 짓만 해서 그가 날 사랑하겠는가.

“굿 모닝, 엄마.”

“굿 모닝, 여보.”

가족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럼, 굿 모닝이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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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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