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긴개긴

by 김봄빛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매번 여름에 미국 방문을 계획했지만 지난해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다 자라 시집 장가 갈 나이의 성인이기에 남편과 내가 미국에 남겨두고 온 일들을 잘 처리해주고 있다. 다 큰 아이들을 믿고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거다.

2 년 만에 미국에서 만난 아이들은 더 독립적이 되어 있었다. 제법 어른인 척하며 우리부부를 살피고 돌보았다. 미국 온 지 이틀째, 나는 딸의 팔뚝에 새겨진 그림을 발견했다. 씻어내면 말끔히 사라지는 스티커인 줄 알았다.

“얘야, 네 팔뚝에 그게 뭐야. 어디 좀 보자.”

딸이 긴장한 표정으로 팔뚝을 내밀었을 때 난 심한 배신감 같은 걸 느꼈다. 맙소사! 그건 스티커가 아닌 진짜 문신이었다. 몇 번 문신을 하고 싶다고 했으나 엄마, 아빠의 승낙을 못 받은 딸아이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게다.

“너 어쩌자고 문신을 한 게야? 엄마, 아빠가 안 된다고 몇 번을 말 했잖니?”

“엄마. 미국에선 문신이 별난 게 아니에요. 난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못 하게 하니까 그냥 하기로 했어요. 여기는 미국이고, 난 성인이며, 이건 내 몸이에요.”

‘내 몸’이란다……. 이유는 또 어찌나 일목요연한지, 엄마가 한마디 하면 반박할 입장 정리를 해두고 있었나보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의 터럭 하나라도 감히 훼손해선 안 된다는 《효경(孝經)》 첫 장의 유명한 구절이다. 내가 이 말을 전하자 딸은 뭔 황당무계한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에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딸이 《효경》에 나오는 개념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자기는 21세기 미국에 살고 있고 문신을 한 건 자기 몸이라는데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나의 실망감인지 배신감인지 모를 씁쓸한 감정은 내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딸은 내게 많은 기쁨을 안겨준 아이다. 마음 씀씀이도 대견 했거니와 공부도 잘 해서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자식에 대한 행복감을 많이 선물해 해 주었다. 그러나 여러모로 나와는 많이 다르다. 외모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난 얌전하단 소리를 듣는 반면에 딸아이는 ‘톰보이(Tomboy)’다. 나는 반짝이고 여성스러운 팔찌를 좋아하는 반면 딸아이는 검은 가죽에 징이 박힌 팔찌를 좋아한다. 제 아빠도 그렇지 않은데 대체 누굴 닮은 걸까?

2 년 만에 방문한 미국은 내가 떠나기 전보다 더 자유분방한 듯했다. 실제로 문신을 한 젊은이들은 여기저기서 전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었고 분홍색, 주황색,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옷이며 화장도 각양각색이다. 미국이 더 달라진 건지 내가 지난 3 년간 더 ‘한국적’이 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막 취업을 하여 첫 달 월급을 받았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얘야, 네가 월급 받은 걸 엄마에게 맡기면 엄마가 통장을 만들어 잘 관리해 줄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알뜰살뜰한 엄마가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나는 기가 막히는 대답을 했다.

“내 돈이에요.”

“…”

용돈을 받아쓰던 신분에서 벗어나 내가 번 돈을 내가 관리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공손히 잘 설명할 일이지 다짜고짜 내 돈이라니…. 내 돈을 가져다 쓸 분도 아니고, 큰 딸이 취업하여 벌어온 돈에 적잖이 감격하셨을 엄마가 흐뭇한 맘으로 하신 말씀에 내가 한 대답의 꼬락서니하고는.... 못됐다. 못됐어. 참말로 못됐다!

딸의 대답 ‘내 몸이에요’나 나의 대답 ‘내 돈이에요’나, 막상막하요 도긴개긴이다. 내 엄마가 속으로 ‘너도 나중에 너 같은 딸 낳아보라’고 몰래 주술이라도 거신 건가, 어찌 나처럼 저리도 말본새 없는 딸을 낳았을고. 내가 딸의 말에 씁쓸함을 느꼈듯이 내 엄마도 그랬으리라. 엄마가 한마디 말씀도 없이 삭였을 그 감정을 지금은 내가 삭일 차례다. 잘 안 삭으면 엿기름이라도 욱여넣어볼밖에.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톰보이; 남성처럼 활달한 여자 아이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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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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