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빛
판교 현대백화점 지하 3 층 C3구역에는 장애인용 주차공간이 7 군데 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수필반 수업을 위해 그 곳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 그런데 내 바로 앞에서 주행하던 차가 내가 세우려던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웠다. 언뜻 보기에 7 군데 주차 자리 중 그 자리 하나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내가 세울 자리는 없어 보였다. 좀 더 다가가서 보니 다행히도 그 옆에 주차공간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휴…”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멀리 세워도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걷는게 어려운 내겐 꽤 힘든 문제다.
내가 막 주차를 하려고 하는 순간 방금 세웠던 차에서 사람이 내렸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여자였는데 멀쩡한 걸음걸이다. 도대체 누가 보행 장애가 있어서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인가? 내려서 그 차 앞 유리를 보니 장애인 주차증은 있었다. 가족 중 누가 장애인이라서 주차증을 소유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행법에는, 보행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장애인 주차증이 있는 차에 타고 있을 경우에만 장애인 주차공간에 세울 수 있다. 사대육신이 멀쩡한 젊디젊은 여자가 장애인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는 똑바른 걸음걸이로 총총히 사라지는 자기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지. 보행 약자를 위해 마련해 둔 공간에 버젓이 차를 세우고 갈 정도면 양심에 털이 나도 보통 난 게 아닌 성싶다. 그 사람이 거기에 자기 차를 세워 둔 동안, 장애인이 주차할 공간이 없어 멀리 세우고 힘든 걸음으로 먼 길을 돌아갈 생각을 해 보시라. 주차장이 만원이라 장애인 자리 밖에 세울 곳이 없을 때 거기에 세우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그곳은 보행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곳이니, 지금은 비어 있는 자리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를 그들을 위해 그냥 비워두시기를. 건강한 육신으로 보행 약자의 작은 권리마저 빼앗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제발.
미국에서 살던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가게 바로 앞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운 순간, 내 차 앞에서 파란 눈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차 앞 유리에 썬팅을 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투명한 차 앞 유리를 사이에 두고 그 할아버지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젊은 동양인 여자가 장애인 표지를 걸어두고는 있는데, ‘네가 진짜 장애가 있는지 보여다오.’ 하고 째려보는 줄 알고 있었다. 그만큼 동양인이 장애인 주차카드를 오용하는 일이 많았기에, 그 할아버지로서는 자국의 규칙을 훼손하는 이들을 그냥 놔두고 싶지 않았을 게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얼른 차에서 내려 내가 걷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 일. 찌릿한 눈싸움을 그만두고 차에서 내려 몇 걸음을 걸었다. 뒤에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쏘리!” “아니에요. 할 일을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는 넘치는 정의감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지켜주고자 발걸음을 멈추고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있었던 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퇴직한 노인들이 나라가 제공한 제복을 입고 공무 차량을 타고 다니며 2인 1조가 되어 장애인주차구역에서 불법주차를 단속한다. 고마운 일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일을 하는 유튜버가 있다고 남편이 보여주었다. 그는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된 장애인 표지가 있는 차에서 과연 장애인이 내리는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데 가짜 장애인(?)이 꽤 있다. 가짜임을 들킨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당신이 뭔데 이런 일을 하느냐며 따지는 사람, 다시는 이러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봐 달라는 사람 등등.
이 세상에, 본받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하는 훌륭한 사람도 많을 터인데, 되고 싶지 않은 장애인이 뭐가 좋아서 장애인인 척을 하는지…. 작디작은 그 공간 하나와 당신의 소중한 다리를 바꾸실 분, 손드시면 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얼른 바꿔드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