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걸었다. 지팡이도 보행기도 없이 혼자 걸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나를 이대로 있게 해줘’
아련해지는 그 느낌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마음 따로, 몸 따로, 야속하게도 속절없이 나의 의식은 점점 또렷해졌다. 꿈을 꾼 거다. 혼자 걷는 꿈을.
2013년 3월 29일 금요일, 정확히 그날 전까지 나는 혼자 걸을 수 있었다. 뛸 수 없었고 걸음걸이가 남들과는 달랐지만 직장에도 다닐 수 있었고, 자상한 남편의 도움으로 아이들도 키워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다리는 점점 약해져갔다. ‘이러다가 60 세가 되기 전에 휠체어 신세를 질지도 모릅니다. 운동 열심히 하세요.’ 주치의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맘때쯤 나는 혼자 걷기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등산도 하고 싶고 골프도 치고 싶은 남편의 염원에 힘입어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수술을 통하여 안 되는 기능을 되찾은 후에 근육을 붙이면 될 일이었다.
스탠포드 대학 병원(Stanford Hospital)을 찾았다. 발, 발목 전문의는 6척 반이나 되는 큰 키에 파란 눈과 노란 곱슬머리를 가진 풍채 좋은 남자였는데, 나의 수술에 대해 무척 긍정적이었다. 몇 번의 논의 끝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 2013년 3월 29일 금요일이었다.
그 날이 왔다. 수술 전 간단한 처치를 했고, 내가 누운 침대를 밀고 수술방으로 들어 간 사람은 나를 마취할 의사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마취 후에 못 깨어나는 환자도 있다기에 겁이 많은 내가 물었다.
“나를 마취하고 갈 거예요? 아니면 수술 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내내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손에 늘어뜨려 들고 있던 묵주를 손바닥 안에 꼭 감싸 쥐고는 ‘하나, 둘, 셋…’ 내 의식은 꺼져갔다.
4 시간이 걸린 큰 수술이었다. 수술 후에 옮긴 입원실은 깨끗했고 침대는 신기했다. 내가 몸을 뒤척이면 매트리스가 이내 움직여 내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병원용으로 제작된 특수 침대였나 보다. 일방적으로 배달되는 병원 음식이 아니라 메뉴에서 선택하여 주문할 수 있는 꽤 잘 차려진 병원 음식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틀간의 입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일어서는데 수술한 다리가 터질 듯 고통스러웠다. 온몸의 피가 거기로 다 쏠리는 느낌이랄까…. 병원 측의 도움을 받아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 등받이를 최대한 눕히고, 아래로 내리면 터질 듯한 오른발은 대시보드(dashboard)에 올렸다. 누운 자세가 되어 차 선루프(sunroof)를 통해 바라 본 봄 하늘은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실려 가며 보았던 삭막하고 메마른 병원 복도 천장과는 너무나 달랐다. 곱디고운 봄 하늘을 보며 마취에서 잘 깨어나 다시 볼 수 있는 푸른 하늘에 감사했고 큰 수술을 이겨낸 나 자신에게도 감사했다.
‘수고 많았어. 정현아’
석고붕대를 떼어내고, 가죽을 기운 듯한 보기에도 끔찍한 실밥들을 풀어내고…. 일어나서 보행기에 의지해 조금씩 걸으면서부터 물리치료가 시작 되었다. 수술한 발의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며 물리치료사는 내 발을 이리저리 굽히고 마사지 했는데 참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다. 수술 후 좋아진 기능도 분명 있었지만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전에 없던 발목의 통증이었다. 의사는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바르는 크림을 처방해 주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좋아지려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려니 여겼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발의 통증도 힘들었지만 석고붕대를 하고 있는 동안 많은 시간을 누워 지냈기에 잃어버린 허리, 엉덩이, 다리근육을 다시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발목의 통증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대신, 수술 후 좋아졌던 기능도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때 잃은 근육을 아직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노력 중이다. 나이가 들어 조금만 운동을 과하게 하면 며칠은 아무 일도 못할 만큼 힘이 든다. 적정선을 찾아 적절하게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근데 그게 힘들다.
결과적으로, 하지 말았어야 할 수술을 했던 거다. 10 년의 세월을 삼켜버린 후회 막심한 그날의 그 사건. 자책하느라 맘까지 망가질 판이었다.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범했지만 어디 인생이 꽃길만 걸으며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도 내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느라 공을 들여 운동을 한다. 한 달 남짓 남은 3월 29일이 되면 수술 받은 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 2023년에는 꿈에서 본 나처럼 가볍게 그리고 폼 나게 혼자 걷고 싶다. 사람들은 자기 걸음이 얼마나 폼 나는지 모델이 아닌 다음에야 느끼지 못할 게다. 혼자 걷는다는 것, 그건 '무지 폼 나는 일' 맞다!